어제부터 몸이 많이 가란 앉는다. 감기일까? 어쩌면 신종플루일까? 많은 일들이 우리를 불안하게하고 두렵게 한다.


고대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이 우리를 위협했다.  많은 병들과 많은 사고들,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의 대처는 미비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보다 덜 불안했음에 틀림없다.

"중세의 죽음"은 그들에게 두려움이 아니었다고 한다. 죽음이 진정 두려울 때는 객사로 인하여 신부님의 도움없이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었고 죽금 그 자체는 오히려 축복으로 받아들이곤 했었다.

불안과 두려움은 시간성으로 인해 더 강해진다. 고대인들은 계절과 순환을 주기로 살아갔지만 우리는 날짜단위와  시간 단위로 살아간다.

우리의 삶은 한없이 잘게 쪼개어지고, 그 쪼개진 단위 내에서 반복된다. 그 장구한 반복이 우리의 삶을 현실에 매어두지 못하고 끝없이 미래로, 그리고 과거로 옮겨 다니게 만든다.

칼릴 지브란은 노래한다.


 - 그대가 내일의 필요라 생각하여 걱정하고 간직하고 지키는 것들, 그런 것들 이외에 그대가 가진 것이란 어떤 것일까?
    그런데 내일은, 성지로 가는 순례자를 따라가다가 자취도 없는 모래땅에 뼈를 묻는, 지나친 불안으로 떠는 개에게 내일이 가져올 것은 무엇일까?
    필요하다는 사실, 이외에도 내일의 필요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대 우물이 가득 찼을 때도 목마을까 걱정이라면, 이는 누를 길 없는 목마름 아니겠는가? -

                    by 칼릴 지브란, 예언자, '준다는 것에 대하여' 중에서

더 많은 물질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이 불안해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과 우리자신의 물질을 우리 자신의 평안을 위하여 통제하지 못한다. 

루저의 란은 어쩌면 우리가 얼마나 불안해 하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들이 위너를 배우자로 찾고자 한 것은 위너와 만나지 못하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키큰 사람이 위너라는 그녀의 말이 단순한 취향이라고?
과연 그럴까? 키 큰 사람이 더 빨리 승진하고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는 연구결과가 이미 나와있다. 그녀가 말한 '외모는 경쟁력'이라는 것은 단순한 의상선전의 카피가 아니다. 실제로 그런 것이다. 실제로 그럴 정도로 현대 사회는 피상적인 가치에 집착하는 사회다.

그녀가, 혹은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많은 이들이  그런 현상을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문제삼을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현상 이면에는 어쩌면 우리가 사실 내면적으로는 더욱 빈곤해졌고, 그래서 더욱 외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는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그녀들은 모두 아름답다. 과거와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우리들은 아름다와졌고 멋있어 졌다. 그러나 그럴 수록 우리들의 불안감은 크져만 간다. 어떤 아름다움도 시간 속에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불안감으로 그들은 모래 땅 속에 뼈를 묻으며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대신할 안전장치를 마련 하는 것 아닐까? 그녀들, 그들이 찾는 위너는 모래땅 속에 얼마나 많은 뼈를 묻어 두었는가, 혹은 묻을 수 있는 가로 가름되는 것이니까.

박성광은 외친다. 고소영, 장동건, 일등끼리 사귀는 더러운 세상.

그러나 일등끼리 사귈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불안감을 박성광은 알고 있을까?

우리들은 더 많이 부유해졌고 더 많이 아름다워 졌다. 그러나 한 겹만 벗겨보면 우리들은 더 많이 빈곤하고 더 추해진 것같다.
위너와 루저? 윈-루즈 게임을 하는 모든 이들은 본질적으로 루저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래서 그것은 그토록 윈-루즈게임을 바라는
것이다. 모두가 루저가 될 때 그것이 위너가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