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자의 비유
 

원숭이가 타자를 친다고 하자. 이 때 원숭이가 셰익스피어가 쓴 한 편의 시를 그대로 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원숭이가 얼마나 많이 타자를 쳐야 그런 시를 똑 같이 칠 수 있을까?

 

논의의 편의를 위해 타자 치는 원숭이 대신 컴퓨터의 예를 들어 보겠다. 컴퓨터가 난수(random number)를 만들어내서 십진수 숫자를 하나씩 모니터에 출력한다고 하자. 1000개의 숫자를 출력한다. 이 때 이 숫자열이 π의 처음 1000자리 숫자열과 똑같을 확률은 얼마인가?

 

π =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

 

그 확률은 1/(10의 1000제곱)이다. 따라서 그 컴퓨터가 10의 1000제곱 번 정도는 시도를 해 봐야 한 번 정도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은 전 우주에 있는 모든 컴퓨터가 우주가 망할 때까지 해 봐도 성공할 가망성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희박한 확률이다.

 

창조론자에 따르면, 진화가 돌연변이라는 우연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는데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런 우연으로 인간과 같이 복잡하고 정교한 생물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따라서 신이 개입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에 의해 인간이 만들어질 확률은 쓰레기장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저절로 보잉747기가 만들어질 가망성보다 더 희박하다고 주장한 어떤 과학자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진화론자의 비유
 

진화론자는 그런 비유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진화는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에 의해 일어나는데(genetic drift를 비롯한 온갖 복잡한 사정은 무시하기로 하자) 위의 비유는 돌연변이의 측면만 부각하고 자연 선택의 측면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진화의 우연적 측면이며 자연 선택은 진화의 필연적 측면이다. 만약 진화가 우연에 의해서만 일어난다면 인간과 같은 복잡한 생명이 진화하는 것은 확률적으로 볼 때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간이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진화에 필연적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진화론자는 비유를 수정한다. Richard Dawkins를 비롯한 여러 진화 생물학자가 수정판 타자 치는 원숭이 비유를 제시했다. 여기에서는 다시 한 번 Pi를 향한 컴퓨터의 도전이라는 비유로 바꾸어 소개하겠다.

 

첫 번째 시도에서 컴퓨터는 위에서와 똑같이 1000자리 숫자열을 출력한다. 위의 비유에서 컴퓨터는 두 번째 시도를 하기 전에 그 1000자리 숫자열을 몽땅 지워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컴퓨터는 그 1000자리 숫자열을 잘 기억하고 있다.

 

두 번째 시도에서 컴퓨터는 기억하고 있던 그 1000자리 숫자를 그대로 출력한다. 하지만 이 컴퓨터는 실수라는 것을 한다. 기억하고 있던 1000자리 숫자 중 임의의 자리의 숫자 하나를 다른 임의의 숫자로 잘못 출력하는 것이다(이것이 돌연변이에 해당한다). 똑 같은 일을 10만 번 한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1000자리 숫자 대신 10 자리의 예를 들겠다. 그리고 10만 번 대신 5번만 하겠다.

 

8745385127 : 이것이 첫 번째 시도에서 컴퓨터가 만들어낸 난수 숫자열이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예컨대 다음과 같은 숫자열들을 만들어낸다. 10자리 숫자 중 한 곳만 바뀌었음에 주목하자.

8745385129

8746385127

8745380127

8747385127

3745385127

 

그런 후에 컴퓨터는 π의 숫자열과 자신이 만들어낸 10만 개의 숫자열을 비교한다. 그 중에 π의 숫자열에 가장 가까운 것을 선택하여(이것이 자연 선택에 해당한다) 기억한다.

 

세 번째 시도도 두 번째 시도와 똑 같다. 똑 같은 시도가 계속 반복된다. 두 번째 시도에서 만들어진 10만 개가 하나의 세대이며 세 번째 시도에서 만들어진 10만 개는 그 자식 세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시도는 손자 세대다.

 

이런 식으로 시도하다 보면 숫자열은 점점 π와 닮아갈 것이다. 그리고 1000 세대 남짓 만에 π의 1000자리 숫자열과 똑 같은 숫자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게 될 것이다. 개체수로 따지면 1000 * 10만 = 1억 마리 정도가 필요했다.

 

돌연변이라는 우연만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자연 선택이라는 필연적 과정까지 추가하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비유를 제시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진화론자의 비유에 대한 불만
 

진화론자가 지적했듯이 창조론자의 비유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하지만 진화론자의 비유에도 만만치 않은 문제가 있다.

 

진화론자의 비유에서 컴퓨터는 이미 π를 알고 있다. “π의 숫자열에 가장 가까운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선 π의 숫자열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자연 선택에 대한 비유라기보다는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의 한 분파에 대한 비유에 가깝다. 지적 설계론자 중에는 진화가 일어났다는 점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진화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지적인 존재가 진화의 길을 안내했다고 주장한다. 난수만 발생시킬 줄 아는 컴퓨터는 π를 전혀 모르고 있는데 π를 알고 있는 어떤 지적 존재가 계속해서 π에 가까운 숫자열을 선택해주는 것이다. 신에 의한 인위선택(신위선택?)인 것이다.

 

 

 

 

 

자연 선택의 힘을 입증할 수 있는가?
 

어설픈 창조론자는 진화의 우연적 측면만 부각해서 정교한 구조가 진화할 수 없다고 우길 것이다. 이것은 “진화에는 자연 선택이라는 필연적 과정도 있다”는 반박으로 쉽게 무찌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생각이 깊은 창조론자는 다른 식으로 문제제기 할 것이다. 자연 선택이라는 필연적 과정을 인정한다고 해도 자연 선택의 설계 능력을 의심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눈과 같은 정교한 메커니즘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자연 선택이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위에서 소개한 비유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왜냐하면 π의 값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재 상태의 인간의 눈의 설계도를 누군가 알고 있어서 그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도록 인도했다는 식의 지적 설계론에 대한 비유는 될 수 있어도 눈먼 시계공인 자연 선택에 대한 비유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진화 생물학자는 자연 선택에 그런 망각한 설계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 그들의 논리는 매우 소박하며 다음과 같다:

 

전제 1: 인간의 눈과 같은 정교한 구조가 존재한다.

전제 2: 지구가 만들어진 45억년 전쯤에는 지구에 생물이 없었다는 점이 명백하다.

전제 3: 신은 없다. 또한 외계인이 지구 생명체의 진화를 안내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전제 4: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알려진 것은 신이나 외계인 말고는 자연 선택 밖에 없다.

결론: 따라서 눈의 정교한 구조는 자연 선택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이 논리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잘 먹힌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 창조론자에게는 이 논증을 써 먹을 수 없다. 왜냐하면 전제 3이 “신은 없다”이기 때문이다.

 

창조론자는 자연 선택의 능력이 인간의 눈과 같은 정교한 구조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 위에서 소개한 창조론자의 비유는 자연 선택이라는 필연적 과정을 무시했기 때문에 진화의 무능력에 대한 논증이 아니다. 하지만 진화론자도 자연 선택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 또한 위에서 소개한 진화론자의 비유는 목적지(π)에 대한 지식이 이미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자연 선택의 능력에 대한 논증이 아니다. 자연 선택의 힘을 둘러싼 논쟁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09-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