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6일 시드니에서 영화 “두 개의 문”을 상영하기로 한 후 계속 황당한 일의 연속이다. 준비를 하기 위해서 한국에 갔을 때였다. 9월 22일 오후 3시쯤 ‘두 개의 문’이 상영되는 광화문 인디페이스 극장 커피숍에서 10월 26일 있을 시드니 상영을 위하여 두 감독, 제작 PD, 배급책임자와 회의를 하고 있는데 문 쪽을 향해서 앉아 있던 홍일란 감독이 갑자기 “어? 김문수씨가 오네?‘하는 것이었다. 문을 등지고 앉자 있던 내가 뒤를 돌아다보았더니 김문수 지사가 수행원들과 함께 들어와서 2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서 ”어이! 김문수 씨! 김문수 !“ 하면서 그를 쫒아갔다. 다행이도 김 지사나 수행원들도 내가 무례하게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그냥 올라갔다. 내가 닥아가서 김 지사의 어깨를 ’툭‘ 치니까 그는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순간적으로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기야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94년 내 출판기념회에서였으니 갑자기 나타난 나를 알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손을 잡고 ”나 지성수 목사요.“라고 하니까 그제야 알아차리고 ”아니? 어떻게 된 일이요?“ 하더니 정치인답게 명함부터 꺼내 밀었다. 순간적으로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내가 호주로 갈 때 당신 추천서 받아 갔었지 않아? 이리 와 봐요.“ 하고 김 지사를 일행들이 있는 자리로 데리고 왔다.


김 지사와 내가 닥아서자 일어선 일행들을 소개하려고 김 지사에게 ”두 개의 문 알지요?“ 했더니 김 지사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하는 듯이 ”문은 여러 개 있잖아요?“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가 그 영화가 상영되는 곳에 와서 감독들을 대면하고 있지만 영화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나는 "아니? 대선 후보가 ‘두 개의 문’을 모른단 말야?“ 하고 했지만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내가 알고 있었던 김 문수가 아니었던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것은 20 년에 갑자기 나타나서 독립영화 이야기를 불쑥 꺼낸 내가 비정상이지 그가 비정상이 아닐 것이다. 더 이상 이야기 할 것이 없다고 판단이 되어서 ”만났으니 사진이나 하나 찍읍시다.“ 하고 홍 감독에게 핸드폰으로 사진 한 장 찍어 달라고 해서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한국의 권력층인 김 지사가 ‘두 개의 문’의 존재 자체를 모르듯이 한국에서 오랜 세월을 철거민들과 함께 하던 빈민운동가 출신인 내가 ‘두개의 문’에 대하여 관심이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시드니에서 이 영화를 상영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거시기한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희한한 재판인 용산참사에 대한 재판에서 검사의 역할을 했던 강 수산나라는 여검사가 시드니 영사관에 파견을 나와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기소해서 형을 받게 만든, 그것도 억울하게 생각될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더욱이 자신의 음성이 나오는 영화가 상영된다는 것이 유쾌할 리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영화 상영을 위하여 한국에서 영화감독, 유가족 대표들이 오고 상영 후 관객들과의 대화 시간도 가질 계획이기 때문에 시드니에 살고 있는 강 수산나 검사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고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어떤 형식으로든 강 검사에 대한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은 충분히 예상 할 수 있는 순서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영화 상영을 계획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내에 표를 팔러 간 김에 평소에 친분이 있는 시드니 총영사관의 관계자를 까페에서 만나서 차 한잔 하면서 표도 팔고 분위기를 전달해서 영사관측이 잘 대처해 주기를 주문했다.


그런데 며칠 후 난데없이 연방경찰로부터 내가 시드니 영사관에 파견되어 있는 강 수산나 검사를 위협했다는 신고를 받았으니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당일 저녁에 영화 상영을 위한 준비 회의가 소집된 상태라서 당일 회의에서 토의를 하기 위해서는 당일 대응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오후 4 시에 경찰과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한국을 가야하는 시드니 민족 교육원 대표 신준식 박사 (UTS 근무) 그리고 호주건설노조에서 활동 중인 고직만 조직가, 박은덕 변호사와 함께 연방경찰을 만났다.


호주연방경찰(Australian Federal Police)은 강 검사로 부터 '국제법으로 보호받는 외교관에 대한 협박과 신체 위해 혐의' (allegation of threat and assault under the Crimes -Internationally Protected Persons-Act)가 있다고 신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정식 기소된 바는 아니지만 사실 확인 차원에서 나를 만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연방경찰 담당자는 "국제적으로 보호받은 외교관에 대한 법"을 위반하면 징역 10년까지 처해진다는 내용도 전했다.

나는 내가 순리를 따라 선의로 제안한 일에 대하여 어째서 강 검사가 호주 연방 경찰에 신고를 하는 악의로 대응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자기가 직접 들은 이야기도 아니고 제 3자를 통하여 전해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신변이 위협 받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는 공안 검사를 상상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해외 동포들처럼 나도 법적으로는 외국인이지만 정서적으로는 한국인으로서 자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한국 검사가 한국인을 호주 경찰에 신고한 셈이 되는 것이다. 물론 강 검사는 한국의 검찰 조직의 일원이기에 순전히 본인의 의사에 의하여만 그런 행위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용산 참사 공판에서 강 검사가 반드시 본인의 의사가 아니더라도 검찰 조직의 일원으로서 맡겨진 임무를 수행했으리라 짐작되듯이 이번 호주 경찰 신고 사건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진행 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매우 안타까운 일은 강 검사는 이미 용산참사의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재판의 검사로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것에 일조한 것 때문에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이번에 또 양심적 시민을 위험인물로 몰아 호주 경찰에 고소를 한 일 때문에 온라인 상에서 그 이름이 길이 기억되게 된 것이다. 종이 신문과 달라서 온라인에서는 이름만 치면 당사자에 대한 모든 것이 검색되고 영원히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공인은 신중해야 한는 것이다.


나는 이번 영화 상영 일로 영사관 인사와 두 번을 만났지만 그와 강 검사와 영화에 대하여 나눈 대화에 대하여 한 마디도 공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호간의 인격적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다'는 것이 세태라지만 검찰이 '가는 말이 고운데 오는 말을 험하게 걸어 온 것'은 '무조건 겁부터 주고 보자.'는 검찰의 유전적 공안 DNA 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결과는 부끄러운 한국의 모습을 호주 경찰에 드러내고만 꼴이지만.

아무튼 황당의 연속이다. 해외에 살아도 한국 사람 노릇하기가 힘들다.


강 검사가 나를 호주 경찰에 신고하라고 해서 무엇을 얻었는가? 호주 경찰은 나에 법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그들의 역할을 다했지만 한국에서 그 다음에는 어떤 결과가 생겼는가? 강 검사는 고시에 합격했으니 머리는 나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세상을 전혀 모르는 것일까? 요즘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법 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세월도 있었지만 지금은 법 보다 SNS가 더 가까운 세상이다. 우리는 SNS 세계에서 강 검사의 ‘두 개의 문’에 대하여 꺼져가는 관심을 다시 불붙인 공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검사로서는 될 수 있으면 화제가 되는 것을 피하고 싶을 것이 분명한 용삼참사 재판을 다룬 영화 ‘두 개의 문’의 흥행을 도와주는 것이 꼴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내가 쉽지 않은 조언을 친절하게 해 주었을 때, 그것도 본인에게 직접 한 것도 아니고 동료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고맙게 받아들였으면 ‘재외 선거관리’라는 명목을 걸었지만 사실은 국민의 세금으로 시드니에서 1 년간 휴가를 보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터인데 적반하장으로 나를 호주 경찰에 ‘외교관 협박혐의‘로 신고를 해 버리는 바람에 일이 잘못되기 시작한 것이다. 강 검사는 이번에도 억울하게(?) 용산 참사 때문에 또 한 번 피해를 당한 피해자인 셈이다.

나는 내가 이번에 겪은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사건이 억울하고 비통하게 죽은 5 명의 철거민과 한 명의 경찰관의 영령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