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에 대한 생각이 약간 바뀐것 같다. 우선, 안철수에 대한 반정치, 반정당의 혐의는 거두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안철수는 외피만 무소속일뿐, 사실상 정상적인 정당 정치의 궤도로 진입한것 같다.

내가 안철수에 대해 가장 우려한 것은 금태섭과 같은 책상물림 엘리트가 주도하는 어떠한 소셜 엔지니어링, 정책중심주의였다. 아직 그러한 의심을 완전히 거둔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안철수가 출마 이후 보여주는 행보는 과거 문국현 같은 유치한 정책중심주의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정치적이다.

지금 박선숙 같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 "정치혁신"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민주당을 압박하는 것을 보자. 안철수가 얼마전 기자회견까지 열어 정치혁신을 말했을때, 반응이 좋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안철수측에서 내세우는 정치 혁신은 대국민 메세지가 아니라, 민주당을 향한 메세지인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안철수측이 말하는 정치혁신에는 별 새로울 내용은 없다. 다만 일관된 내용은 있다. "민주당 쇄신과 친노 패권주의 타파"다. 그 외의 정당공천제 폐지나 당론폐지와 같은 것들은 정치학 교과서에나 나올 얘기다. 내가 보기엔 정치혁신 아젠다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언론 떡밥용으로 보인다.

이렇게 실제메세지와 홍보용메세지를 분리하는 것만 봐도 범상치는 않다. 민주당의 경우 단일화에 대한 욕망이라는 진의와 표시가 일치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과 문재인은 어느새 단일화용 정당, 단일화용 후보가 되고 말았다. 단일화가 목표인 정당과 후보. 이런 것들이 차츰 누적될수록 민주당과 문재인의 무게감은 점점 떨어지는 것이다.

민주당과 문재인은 "정당정치"와 "단일화"로 안철수를 압박한다고 생각한다. 정당후보라는 유리한 고지에서 단일화라는 대의로 안철수를 압박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전략이다. 반면에 안철수 측은 문재인은 공격하지 않고, 민주당의 "친노 패권주의"를 간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오마이뉴스 같은 황색 언론을 내세워 안철수 개인을 압박할수록, 오히려 문재인과 민주당의 중량감은 떨어진다. 민주당과 안철수가 싸우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이 애초에 목표했던 그림, 즉 "확립된 거대 정당" vs "불안한 무소속 후보"라는 그림이 그려질수 없다. 거대 정당의 후보라는 비교우위를 스스로 갉아먹는 셈이다. 안철수가 무소속 후보라는 아킬레스건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예상외로 굳건한 이유가 이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민주당과 문재인 스스로에게 집중했다면, 안철수는 무소속 이미지에 갖혀서 지지율이 추락했을 수도 있다.

단일화에 집착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 독립된 정당과 후보가 아닌 언제든 없어질수 없는 당이라고 셀프 낙인을 찍고 있다. 자연스럽게 단일화 구애의 대상인 안철수쪽에 무게감이 더 쏠릴수 밖에 없다.

즉, 민주당은 지금 스스로 민주당vs안철수라는 구도를 만들어 주고 있는 셈이다. 안철수로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다. 반면에 안철수 쪽은 문재인은 아예 거론도 하지 않고, 친노 패권주의를 중점적으로 공격한다. 이럴수록 문재인의 존재감은 희미해지고, 노빠 vs 안철수의 구도가 정립된다. 그리고 지금 한줌의 인터넷 노빠를 제외하면, 노빠쪽 편들어줄 오프라인 유권자는 거의 없다. 아니, 노빠쪽 편들어줄 유권자가 많다고 해도 안철수의 선택은 옳다. 왜냐하면 이런 구도에서는 안철수와 노빠가 1:1이 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민주당 vs 안철수, 안철수는 노빠 vs 안철수의 구도를 만들고 있다. 오마이뉴스 같은 황색 언론 덕분에 이 구도는 더 선명해지고, 문재인은 아웃오브안중이 된다. 오마이뉴스 사장을 만나면 제발 안철수 까는 기사는 그만쓰라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최근에 조기숙이 열심히 친노를 변호하고, 안철수를 까는 글을 썼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문재인을 죽이는 글이다. 특히 조기숙은 호남 드립까지 했던데, 안철수 측에서 조기숙을 고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럼 안철수가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진의는 무엇일까? 비교적 쉽게 추론할수 있다. 그 목적은 친노를 고사시키는데 있다. 안철수는 지금 민주당과 동등한 협상을 통해 단일화 과정을 거칠 생각이 없다. 안철수는 노빠가 장악한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들어가는 순간 그대로 끝장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순히 단일화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단일화에서 이겨도 안철수는 끝장난다. 안철수가 노빠와 손을 잡고 대통령 후보가 되면, 박근혜에게 이기는 것은 불가능 하다. 노빠와 손을 잡은 안철수가 노빠의 뒤통수를 친다면? 그러면 노빠들이 온갖 난리를 치기 때문에 더욱더 박근혜에게 이길수 없다. 노빠와 계속 손을 잡고 완주한다면? 그럼 당연히 박근혜에게 진다. 길이 없다. "노빠+단일화"는 불멸의 필패공식이라는 것을 안철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안철수쪽은 민주당에서 노빠를 몰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문재인 주변의 "자칭" 백의종군 노빠들이 스스로 물러났다. 노빠들이 차츰 차츰 제거될 수록 민주당이 문재인을 알아서 갖다 버리고 안철수를 옹립하는 일은 쉬워진다. 예를 들어 박영선이나 박지원, 정동영 같은 사람이 좋아서 문재인 밑에 있겠는가? 안철수는 지금 민주당을 뒤흔들고 있다. 다들 겁나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지만, 하루빨리 이 침몰하는 배에서 나와 안철수라는 구명보트를 타고 싶어하는 민주당 정치인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안철수 캠프의 불안정성에 있다. 안철수 본인이나 박선숙 같은 소수의 정치 참모가 똑똑하다고 해서 캠프 자체의 취약성이 근본적으로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개인플레이로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다. 금태섭이나 송호창 같은 책상물림 법률가들이 천진난만한 뻘짓을 할때마다 캠프 전체가 흔들린다. 이 부분에서는 민주당 쪽의 경륜과 실력이 월등하다. 그래서 아직 최종 승자를 확정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안철수는 근본적으로 모범생 타입이라, 같은 모범생 타입에게 지나치게 전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박선숙도 근본적으로는 모범생 타입이다.

안철수가 승리를 굳히려면, 잡초같은 인재들을 품어야 한다. 김대중 캠프에는 엘리트와 잡초가 공존했다. 그리고 그것이 김대중 정치의 dna를 강화시켜주었다. 현재 안철수 캠프는 지나치게 모범생 위주의 동종교배가 의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