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면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고 묻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그 물음에 만족할만한 답을 해줄 수 없기에 난감함을 느낀다. 그들이 묻는 것은 직업인데, 나에게 직업이라고 내세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백수라고 하기도 뭐하고....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내가 대학졸업하고 군제대 후 정말 할 수 없이 최후로 한 게 취직이었다. 그 때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게 취직이었으니까. 내가 취직할 때 제일 많이 고려한 게 근무시간이었다. 봉급은 적더라도 될 수 있으면 근무시간이 적어 일 외에, 개인적으로 다른 걸 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았다.


당시 80년도에도 대기업 취업을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대기업 퇴근시간이 정해지지 않았었다. 눈치를 보며 윗사람 순으로 퇴근하는데 그게 밤10시도 되고 11시도 되었다. 나는 인간을 일의 노예로 만드는 그런 회사는 절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가 취향에 맞는 회사를 찾다보니 갈 만한 회사는 외국인 회사뿐이었다. 그러나 외국인 회사는 대체로 경력사원을 선호했기에 졸업초년생으론 입사가 어려웠다. 나는 졸업과 군 입대사이에 몇 달 다닌 대기업 근무경력으로 외국인 회사에 몇 군데 이력서를 넣었는데 운이 좋게 그 중 하나에 취직이 되었다.     


9시부터 6시까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근무, 초과 근무시 오버타임 1.5배 지급, 야간이나 휴일근무는 2배 지급, 정장이 아닌 캐주얼복도 가능하니 넥타이 매기 싫어하는 내 취향에 그런대로 맞는 일자리였다. 봉급도 대기업 대졸초임보다 1.5~2배정도 되었다. 그 이후 내가 직업을 여러 번 바꿨지만 대체로 근무시간이 짧거나 자유롭거나, 출장이 잦은 특별한 직업들이거나 비정규직 또는 파트타임 일들이었다. 사무실에서만 죽치는 직업은 하나도 없었다.


그 후 10년 정도 외국에 나가 살았는데, 귀국해서 자급자족의 중요성을 깨닫고 주로 기층노동에 종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층노동이란 인간의 의식주에 관련된 생산업을 말한다.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급자족할 수 있다면 경제나 식량위기가 와도 외부변화에 큰 영향을 안 받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남에게 착취 받을 일도 착취할 일도 없게 된다. 이게 내가 추구하는 생태자급주의며, 그 토대는 원시공동체, 혹은 원시공산사회에서 나왔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구조적 착취가 일반화 돼있다. 부모를 잘 만나거나, 직업을 잘 택하면 적은 노동으로도 정당한 소득의 수 백 배를 벌 수 있고, 운이 나쁜 사람(주로 기층 노동자)은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기여를 해도 정당한 임금을 못 받는 게 자본주의의 합법적 구조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런 부조리한 구조를 당연시하며 날마다 착취와 피착취의 투쟁을 벌이는 전쟁터와 같다.  


나는 착취하는 것도 착취 받는 것도 거부한다. 그래서 시골에서 농사도 짓고 집짓는 일도 다니며 기층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날일 일당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독창적인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큼 터득이 됐고 일당도 목수 일당을 받는다. 요즘은 돈 내고 집짓기를 배우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돈 받으며 배운 케이스다. 내가 짓는 집은 물론 나무, 흙 등의 생태적 재료를 주로 쓰는 생태주택이다.


그렇다고 목수일만 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시골에 살면서 통번역, 대학강의 등의 정신노동도 해왔고, 양파수확이나 볏짚수확 같은 농사일과 숲 가꾸기, 벌초 등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은 마다하지 않고 해왔다. 그 중 목수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여하기 때문에 직업을 간단히 말해야 할 때는 목수라고 말할 뿐이다.


(다음에는 나름대로 터득한 집짓기의 본질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내가 스스로 지은 집도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