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인간 사회의 근본부터 바꿔 놓았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른 사람과의 단 한번의 교류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 사이의 교류인 의사소통의 작동 방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습니다. 변화의 한 복판에 사는 오늘의 사람으로서 이 변화가 어떤 역사적 맥락을 띠는지, 현재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미래의 모습은 어떻게 될지 단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우리 사회 공동체에게 새롭게 주어지는 화두들을 고민해볼 수는 있습니다.

 

이제는 제법 입에 달라붙는 '잊혀질 권리'에 대하여 요즘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정부도 지난 9월, 내년에 법제화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더군요.

 

정치의 계절이 도래하면서 특히 온라인상에서, 유력 정치인들이 과거에 뱉어낸 발언, 걸어온 행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현재 그들의 행보와 그들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보며, 개인이 온라인상에 올라온 개인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잊혀질 권리의 의의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단순히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개인정보(주로 개인 식별가능 정보)와 인터넷 게시판의 게시글뿐 아니라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상에 올려지는 수많은 내밀한 사적 정보들에 관한 개인의 정보 통제권은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까요.

 

네이버 지식인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애인과의 성관계', '임신 여부', '진로 고민 상담', '친구 문제' 등등처럼 민감한 사적 정보가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합니다. 네이버 지식인에 올린 질문과 답변(답변까지는 확실하지 않음)은 개인이 삭제하지 못합니다. 일단 네이버 지식인에 올린 정보는 네이버의 자산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네이버의 재산이기도 하고, 온라인에 다른 사람들 보라고 올린 정보이므로 공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일 겁니다. 문제는 '애인과의 성관계', '왕따 문제', '임신 여부'와 같은 질문들이 5년, 10년, 15년...더 나아가 네이버가 망해서 사이트가 없어질 때까지 존속한다는 겁니다. 아니 본질적으로 한번 온라인상에 올라온 정보는 정보를 올린 사이트가 문을 닫아도 어딘가에는 분명 존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원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의미죠.

 

페이스북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내가 지금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하지만 과거에 분명 교류가 있었던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냅니다. 예전 여친도 찾아냅니다. 일단 페이스북에 발을 들여 놓으면 내가 살아 오면서 만들어 놓은 관계망 속에서 헤어 나오질 못합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상대도 되지 않는 페이스북의 그물망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스마트폰과 연동됨으로써 내 현재 삶과 과거의 삶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독자 생존합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오랜만에 들어가서 내가 과거에 썼던 글과 올린 사진들, 다른 1촌들과 나눴던 대화를 보면 내가 언제 이런 '짓'을 했지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 때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해줘서 기분 좋지만 한편으론 낯선 느낌도 듭니다.

 

온라인상의 관계의 익명성과 휘발성을 이유로 오프라인에서의 교류에 비해 온라인상의 관계를 낮추어 보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흔적을 삭제할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변화의 속도를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저는 페이스북을 이제 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페이스북을 하지 않던 때에 외국 지인들과의 교류 때문에 시작한 페이스북인데, 이제는 버겁기 때문입니다. 내 개인정보와 내가 심심풀이로 올린 글들이 우주 쓰레기처럼 내가 이 세상에 없어진 후에도 1010101010의 형태로 온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과 나를 아는 사람이 모두 사라진 후에도 나와 관련한 공적 정보 외에 시시콜콜한 사적 정보들이 온라인상에서 누구도 찾지 않는데 남아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죽은 친구의 미니홈피에 사망한 날, 생일 때마다 생전의 그를 추억하는 인삿말을 올리는 모습, 사진과 비디오와 함께 생전 고인이 직접 관리하던 미니홈피에서 고인을 추억하는 일...이런 것을 생각하면 나를 삭제할 권리, 권리라는 '제도' 자체가 가지는 이해상충 여부를 쉽게 다루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만 남기고 다른 것들은 다 없애겠다는 건 온라인의 기본 성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건 아닌지, 온라인과 관계 없이 내 삶을 나만의 것으로 여기는 무책임한 태도는 아닐런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한 지인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인터넷에 올리는 내 정보를 최소화하는 게 능력인 시대가 될 수도 있다"라고

 

SNS활용능력을 입사 단계에서 체크하는 기업도 있는 상황에서 말도 안되는 헛소리일 수 있지만, 내가 통제 못하는 나에 관한 정보들을 최소화시키는 게 살면서 예기치 못한 일들을 줄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되지 않을까하는 이야기였죠.

 

어찌보면 다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페이스북을 안한다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관련 정보들이 페이스북에 올라오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올리지 않아도 내 주변 사람들은 아마도 나와의 오프라인에서의 일이나 나에 관한 이야기들을 간간히 페이스북에 올릴 겁니다. 관계 맺기의 기본 문법 자체가 많이 바꼈죠.

 

 

모든 걸 공유하는(의도는 그게 아녀도) 온라인과 사적인 공간을 지키려는 개인 간의 갈등 사이에서 현명하게 사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