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하고 싶은가? 한국 사회의 얼개를 그림으로 그려보라!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지난 10여 년의 내 중심적 화두가 국가경영 내지 진보 혁신이었다면, 지난 몇 개월의 내 중심적 화두는 서울시정이었다. 서울, 경기 등 지자체 경영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아마 앞으로 한 동안은 그럴 것이다. 실은 연구소 차원에서는 작년 연말쯤부터 서울시 경영을 중심적 화두로 삼기로 되어 있었으나 몰입이 되지 않았다. 특히 올 상반기에 참여정부 평가 작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노무현 이후> 집필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정을 연구하면서 수많은 책과 자료를 들춰보았다. 서점에 나와있는 도시 관련 책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생산된 방대한 보고서를 들춰 보면서 질리기도 했다. 수많은 연구자, 공무원, 서울 시민의 경험, 지식, 지혜를 결집하여 기획, 실행한 이명박-오세훈의 시정 성과를 뜯어보면서도 질리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이야 그 철학, 가치, 비전의 특이함으로 인해, 또 권능이 큰 만큼 정책적 선택지(큰 그림)도 많아서 비판하기도 쉽고, 차별화된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기도 쉽다. 그런데 서울 시정은 원래 그 누가 하더라도 정책적 선택지가 많지 않고, 또 오시장도 그렇게 독단적이지도, 무리수를 구사하지도, 게으르지도, 부정하지도 않아서 비판도 차별화된 대안 제시도 쉽지가 않다. 혹시 대심도 지하차도를 밀어붙인다거나 용산에 5천 톤 급 관광선을 들어오게 하여 황해를 건너겠다면 몰라도……물론 시민 다수가 공감하기 힘든 환경.생태적 가치를 최상위에 올려 서울시정을 재단한다면 비판과 대안 도출은 쉬울지 몰라도 서울시정을 접수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서울 시민의 요구, 기대, 불만, 고통을 찬찬히 뜯어보면 오세훈 시정의 심각한 문제가 적지 않다. 진보적 대안 역시 그리 빈약할 것 같지도 않다. 이는 서울의 (곁가지 문제가 아닌) 핵심 문제를 짚어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시정에 대한 나의 비판과 대안은 충분히 숙성, 검증되면 조금씩 공유할까 한다.

 

우선 서울시와 서울시정을 연구하면서 느낀 점 한 조각만 공유할까 한다. 이는 문제의 핵심을 짚는 일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다단한 한국 사회와 서울시를 연구하면서 절감한 일이다.

 

<도시 읽는 CEO>

서울시를 연구하면서 읽은 꽤 많은 책 중에서 특별히 인상 깊은 책의 하나가 김진애 의원이 쓴 <도시 읽는 CEO>(21세기북스)라는 책이다.

 

내가 아는 한 김진애 의원(헌재판결에 힘입어 얼마 전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되었다)은 서울, 특히 서울 공간디자인에 관한 한 대가다. 서울과 도시계획에 관한 한, 또 인문학적 통찰에 관한 한 그 폭과 깊이를 견줄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김의원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나와 1988년 미국MIT에서 도시계획학 박사를 받았다. 산본 신도시, 인사동 길 등을 설계했고, ‘사람, 사회, 건축, 도시’를 주제로 2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1970년대 말, 대학원생 시절 임시행정수도 건설에도 관여했고,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서울 도시 계획에 깊이 관여했다. 1994년 시사잡지 <타임(TIME)>에 의해 차세대 리더 100인에 선정된 바 있다. 비례대표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아마 가장 부합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김진애 의원은 2004년에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서울 용산에 출마했다)

 

김진애는 <도시 읽는 CEO>에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당신이 사는 도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나? 당신은 당신이 사는 도시를 그릴 수 있나? 당신은 당신이 사는 도시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나? 당신은 당신이 사는 도시를 이방인에게 어떻게 표현하나?

 

사실 나는 1982년 대학 입학 이후 거의 서울에서 살았다. (40여 년 전에는 집에 칼라풀한 책이 없던 관계로) 어릴 때부터 칼라풀한 지도 보는 것이 취미였다. 지금은 각종 통계를 보는 것이 취미이자 업이다. 관악산, 북한산, 인왕산, 남산, 아차산도 수없이 올라가 보았다. 관악, 영등포, 동작, 서초, 은평, 구로, 금천 등 서울 곳곳에서 살아 보았다. 게다가 지금은 서울시정을 연구 하고 있다. 하지만 김진애의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서울의 지리, 도시계획, 경제, 교육, 문화, 복지의 핵심 문제를 찾아내기 위해 골싸 메고 있다. 

 

김진애는 도시 지리의 핵심을 파악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은 경험을 이렇게 얘기한다.

 

번쩍 하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떨린다. 유학 첫 학기였다……나는 한 강의에 완전히 넋을 잃어버렸다. 강의는 ‘도시형태이론(Theory of City Form), 교수는 줄리앙 바이나트…...90분 강의는 독특했다. 세계의 도시들을 넘나들며 도시의 형태 속에 숨은 이론들을 짚어내는 구성이다……첫 60분은 논리를 펴나가고 학생들에게 의문을 던지고 칠판에 단순한 다이어그램(개념도)을 그려간다. 근사한 이미지에 눈이 먼저 팔리면 본질을 잃어버릴 위험이 커지는데, 의문을 선명히 하고 구조를 알고 난 후에 그림을 보면 ‘아!’하게 된다. ……처음으로 그 도시들이 내 머리에 그려졌다. 조각조각 알고 있던 파편들이 갑자기 짜임새 있게 전체 그림으로 맞춰졌고 이 엄청난 크기의 도시가 갑자기 하나의 그림으로 다가 온 것이다. 어떻게 런던은 런던이 되었나, 어떻게 파리가 파리가 되었나, 그 까닭이 한 편의 소설처럼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 파워는 바로 통찰력에서 나온다……전체를 통찰하는 힘, 구조를 파악하는 힘, 핵심을 파악하는 힘, 개념을 세우는 힘, 전체와 부분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힘, 통찰력은 우리 모두 지향해야 할 파워다. MIT에 있는 동안 나는 그 강의를 세 번 더 가서 들었다……가슴을 뛰게 하기 위해서……다시 지적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P66~68)

 

김진애는 유학 시절 이런 깨달음을 간직하고, 1988년 몇 개월 동안 서울에 푹 빠졌다고 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밀라노 트리엔날레’(3년에 한번씩 열리는 디자인 전시회)에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홍보해야 할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김진애는 그 때 잠자는 시간 빼고 서울에 대한 역사 자료, 문화 자료, 도시계획자료, 통계자료, 사진자료, 지도 자료에 푹 빠졌다고 한다. (군사안보상 이유로 여간 해서 서울 상공을 날 수 없던 시절) 헬리콥터를 타고 서울 영공을 누비고, 고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 사진 촬영을 하고, 달동네, , 강변 등 서울의 구석구석을 누볐다고 한다.

 

거대 도시 서울 그리기

김진애는 이처럼 치열한 모색 과정을 거쳐서 파악한 서울 지리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수없이 서울을 그려보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나는 서울을 다음과 같은 차례로 그린다.

 

1. W자 모양의 한강을 그린다. 한강은 서울의 가장 강렬한 얼개다.

2. 외사산(外四山)과 내사산(內四山)을 그린다. 서울의 커다란 영역에 대한 감이 잡힌다.

3. 강북의 사대문 안에 달걀형 동그라미를 그린다. 서울의 시작은 동그라미다.

4. 강남의 격자형 구조를 그린다. 강북과 대비되는 구조다.

5. 서울의 동서남북을 팽창하는 동네 영역을 그린다. ‘달동네’도 빼놓지 않는다.

6.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는 큰 도로와 철도를 그린다. 서쪽 인천 방향, 남쪽 경부 방향이 큰 줄기다. 간선도로 중심의 방사상 도로와 순환도로가 주요 뼈대가 된다.

7. 수도권의 주요 도시들과 계획 신도시들을 점 찍는다.

8. 수도권으로 뻗는 방사상 도로와 수도권 순환도로를 그린다. 이제 외사산 밖까지 포함되는 거대도시 서울이 그려졌다. (중략)(P88~90)

 

이것이 <도시 읽는 CEO> 89페이지에 있는 그림이다. 한번만 보면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아무나 그릴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콜롬부스의 달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김진애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은 서울이 이렇다는 것이 아니다. 김진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그 무엇을 설명하려고 할 때, 가장 쉽게 설명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의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 소통할 수 있을까? 이런 작업은 필연적으로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물론 그 통찰력이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성의를 기울인 작업 과정이 필요하고, 끈질기게 핵심을 물고 늘어지는 끈기가 필요하고, 상대편의 호기심의 입장에 서보는 역지사지가 필요하며, 개념을 파악하고자 하는 호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통찰이란 복잡하게 보이는 전체의 핵심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통찰을 추구하는 과정 중에 나의 경우는 ‘그려보기’가 크게 도움이 된다.(중략) 그려보기를 사용하는 것은……그려보기가 입체적인 사고, 핵심적인 사고, 관계적인 사고, 총합적인 사고, 개념적인 사고를 촉발하기 때문이다. (중략) 한 조직의 CEO라면 자신이 운영하는 조직, 또한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조직의 체계, 시장의 판도, 기술 혁신의 방향 등 그 핵심을 함축하는 개념도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지적 감동, 즉 생각의 파동을 일으키는 것은 어떻게 핵심에 다가가느냐이다. 보이는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흐리는 곁가지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개념과 구조와 본질을 꿰뚫고자 하는 끈기가 필요하다.(<도시읽는 CEO> p88~93) 

 

자 이제 본론을 말하려고 한다.

김진애가 이 그림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울이 이렇게 생겼다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보이는 대상의 핵심을 파악하는 일, 이를 간단한 도식으로 표현하는 일의 중요성과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 사회와 진보(개혁)의 복잡다단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수많은 진보 지도자들이, 김진애가 서울을 볼 때 쓴 눈을 그대로 빌려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보수의 문제도, 한국 진보(개혁)의 문제도 거대하고 복잡다단한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친 경쟁인가? 공교육의 무능인가?

단적으로 한국 중.고등 교육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기정(창동고 국어교사)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는 학생.학부모의 불만의 핵심은 촌지였다. 촌지에 의한 차별 이었다. 그래서 촌지 거부를 선언한 전교조가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의 핵심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공교육의 무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보수는 무능의 문제를 적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다만 보수적인 방식 내지 후진적인 방식으로 대처할 뿐이다. 그것이 학생.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강화, 평준화 폐지, (0교시, 우열반, 방과후 수업 등)수업시간 연장, 일제고사 등 평가 강화, 학생간/학교간 경쟁 강화, 교육관료와 학교장의 교사에 대한 지배력(교원 평가) 강화 등이다.

 

그런데 진보는 학생.학부모의 요구, 불만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무능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학력, 학벌, 학과, 직능(자격증), 직장에 의한 극심한 차별이 엄존하기에 중고교 차원에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경쟁’을 주적으로 삼는다. 그것도 경쟁의 무풍 지대에 있는 교사들이!  또한 개인.가족에 대한 국가.사회의 책임성 강화라는 미명하에 ‘공짜’(무상) 카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급식 무상, 고교 무상, 유치원 무상, 18세 이하 무상의료…… 뿐만 아니라 무능의 문제를 돈과 교사 수를 늘려서만 해결하려고 한다. 학교에서 사무행정과 수업을 분리한다든지, 평가보상(상벌)체계를 바로 세우는 등의 방식(교장과 교육관료에게 집중된 권력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옮기는 방식)으로 기존의 재원과 인력으로 교육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올리려는 시도를 백안시 한다. 경쟁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보가 교육에 대한 학생, 학부모의 불만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니 형편없는 보수에게 깨지는 것이다.

 

시대정신이랄까, 다수 국민들의 요구, 불만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일은 어디 중.고교 교육 분야뿐이겠는가?  사실 나는 몇 권의 책과 정치통계 등 수많은 글을 통해서 김진애가 던진 질문과 유사한 질문을 무수히 던져 왔다.

 

‘당신은 당신이 사는 이 나라를 얼마나 알고 있나? 한국 사회가 인체라면 CT, MRI, Xray, 혈액검사, 대소변 검사를 해 본 적이 있나? 수많은 데이터=통계를 (시계열로) 그 추이를 분석하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본 적이 있나? 다양한 통계를 종합해 본 적이 있나?

 

나는 국가경영의 관건도, 진보 혁신의 관건도 이런 의문에 답하는 것이라고 외쳐왔다. 그래서 김진애가 서울 그림으로 강조한 핵심 파악, 단순화, 개념화의 중요성에 깊이 공감하는 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역과 귀납, 가설과 검증을 거쳐 정립된 간명한 사회 모델(인식 틀)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거대한 코끼리이고 우리는 하나같이 그 한 부위를 만지는 장님이나 다름없기에, 코끼리의 전체상을 포착하기 위해서는……간명한 모델이 필수 불가결하다. 이 모델은 핵심적인 모순과 부조리를 잘 드러내고, 동시에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모델이 없으면 아무리 체험이 풍부하고, 가진 통계 정보가 많아도 그 전체상을 제대로 포착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핵심적인 모순과 부조리를 파악할 수가 없고, 가치, 정책의 우선순위와 기조를 제대로 잡을 수가 없다. 총론적 개혁 담론과 각론적 개혁 담론을 묶어주는 철학도 정립할 수 없다. (<노무현 이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확 구부러진 사회

나도 지난 20여 년 간 수많은 경험, 자료(통계), 연구를 집약하여 한국 사회의 모순.부조리 개념도를 그려 보았다. 이 핵심 개념은 한국은 보수 이익집단에 의해 오른 쪽으로 확 구부러진 사회이자 진보 이익집단에 의해 왼쪽으로 확 구부러진 사회라는 것이다. 구부러진 것은 정의(지속가능한 사회 발전 원리)와 상식과 원칙이다.

한국 공공(정치, 행정, 사법, 언론 등)은 때로는 보수와 때로는 진보 이익집단과 협력한다. 이 그림은 한국 사회의 수많은 굵직한 모순.부조리와 수수께끼 같은 현상을 다 설명한다. 이 모든 왜곡이 생긴 것은 결국 공공이 무능하거나 스스로 이익집단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가 정의와 상식을 바로 세우는 쪽으로 힘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자신(조직된 이익집단)의 영역으로 더 많은 잉여를 쓸어 넣고, 더 적은 경쟁(시장)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현 세대 자신에게만 유리한 불합리한 게임규칙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 왜곡 구조를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놓고 오로지 상대방에게만 손가락 하는 것이 서구와 확연히 다른 한국 진보와 보수의 특징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보수는 좌파, 친북 타령을, 진보는 시장, 경쟁 타령을 끊임없이 해 댄다.

 

다시말해 정의 실현이 본령인 공공이 부실한 환경에서는 유능한 개인 및 집단은 자신이 서 있는 분야로는 시장원리(소비자 선택권/심판권)나 경쟁이 밀어닥치지 못하도록 한다. 이들은 예외 없이 정치적, 이념적으로 과잉 대표성을 행사하고, 거대한 정치, 경제, 사회적 지대(특권,특혜)를 누린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고창하는 존재들, 공공부문, 토건족, 은행, 독과점 기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게임규칙을 통해 엄청난 불로소득을 누린다. 재정과 가계를 소리 소문 없이 약탈한다. 당연히 이들의 처우는(고용, 임금, 수익성 등) 한국 평균 소득 수준에 비추어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한번 들어온 사람은 떠나는 사람이 없기에, 이곳의 평균 연령은 급격히 상승하고, 구조조정은 거의 불가능하며, 신참자들의 입사(진입) 경쟁률은 살인적이다.

 

다른 한편 공공이 부실한 환경에서는 유능한 개인 및 집단은 타인에 대해서는 지대(특권, 특혜) 일소를 요구한다. 자유로운 선택권. 심판권과 각종 규제(최저 기준 포함) 완화를 요구한다. 따라서 3비층(비경제활동인구, 비임금근로자, 비정규직), 청년세대, 하청 협력업체 등 대다수 비기득권 층은 공적 규제(공정거래법, 소비자 보호법 등)나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엄청난 경쟁과 심각한 기회 부족에 신음한다. 청년 실업, 3비층, 각종 고시, 공시 열풍과 그 낭인 문제, 공기업 입사 경쟁률과 중소기업 인재기근, 시간강사, 사교육.유학 광풍 등의 사회적 진앙은 바로 이것이다.

 

한국 진보(개혁)가 이중 왜곡 사회를 연출 내지 방조한 것은 진보의 이념.정책적 한계와 힘의 한계가 결합되어 있을 것이다. 이념.정책적 한계는 북한이 미.일 제국주의로부터 자주.자립을 추구하는 것을 최상위 가치로 놓듯이, 남한 진보는 대체로 시장, 자유, 경쟁, 개방을 대단히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최상위 가치로 놓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체 전체와 3비층과 중소기업과 미래 세대를 깊이 고려할 만한 정신적, 사상적 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는 A이익집단으로 B이익집단을 견제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책략에 서툴렀기 때문이다. 예컨대 1987년이 낳은 큰 아들이나 마찬가지인 조직노동이 보수이익 집단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도 못하고, 3비층과 중소기업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둘째, 셋째 아들 격인 진보 정당들과 진보 언론도 이미 철 지난 철학, 가치, 시스템, 리더십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힘의 한계라는 것은 경제, 언론, 사법, 사학, 종교 등을 장악한 보수 권력이 너무 세다 보니 공무원이라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선심을 너무 썼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른 쪽으로 확 구부러진 현상(과도한 부동산 불로소득,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 토건 위주, 경제개발 위주의 재정 할당=빈약한 복지 재정, 개인.가족에 대한 국가.사회의 무책임성, 사법엘리트의 전횡, 부정부패, 냉전적 문화 등)은 그 연원이 오래 되었다. 왼쪽으로 확 구부러진 현상(노동의 양.질과 무관한, 단결력(파괴력)과 기업 수익성에 연동된 처우 체계, 광범위한 시장.경쟁의 무풍지대, 공공부문의 양반관료화 등)은 그 연원이 오래 되지 않았다. 전체적인 구조를 뜯어보면 구악(보수가 만든 악)이 훨씬 심각하다 해도 신악(진보와 공공이 만든 악)이 최근에 생긴만큼 비슷한 악으로 치부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여간 해서는 바꿀 수 없는 상수인 언론 지형으로 인해 구악은 축소지향의 오목렌즈로, 신악은 확대경으로 바라보니! 뿐만 아니라 보수는 민간주도의 확대 재생산 의지와 국제 경쟁력 강화 의지가 충만한데 반해, 진보는 현 상태 유지 의지(고용 안정 등)는 선명하나 나머지는 모호하니! 더구나 성장에 의한 고용창출과 소비(내수) 확대 외에는 그 답이 없어 뵈는 3비층이 너무나 거대한 상황에서는! (이 그림의 통계적 근거와 이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정치사회 현상과 이 그림에 근거한 대안을 집약한 책이 <노무현 이후>라고 자부한다.)

 

어쨌든 불쌍한 민초들은 신악이 너무 커 보이면 구악 친화적이라 할지라도 보수의 손을 들어주고, 구악이 너무 커 보이면 신악 친화적이라 할지라도 진보의 손을 들어 줄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지난 몇 년간의 엄청난 정치변동의 원인이다. 이 그림으로 보면 보수든 진보든 역사의 주도권을 쥐는 비법은 명확하다. 자신이 싼 똥을 열심히 치우면서 상대가 싼 똥의 패악을 열심히 지적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념으로, 그것도 좀 섹시하게 정식화 하면 좌파신자유주의 2.0(노무현의 그것이 1.0이라면), 우파 사민주의 1.0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념 정책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은 김진애가 그랬듯이 무수히 많은 정치, 경제, 사회 현안들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 즉 핵심의 도식화가 아닐까 한다. 또 하나 덧붙인다면 좋은 공공정책을 이곳 저곳에서 파 와서 잘 조합하면 되는 꽃꽂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무들이 즐비한 큰 숲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좋은 지형, 토양, , 묘목, 관리인을 갖추고 오랜 시간 가꾸어야 하는 그런 숲 말이다. 공공정책을 한 순간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만드는 포장지나 광고 카피가 아니라, 피부이자 얼굴이자 영혼으로 보는 지적 태도 말이다. 이런 관점이 없다면 이기정이 지적하였듯이, 진보의 교육정책을 얘기하라고 하면 경쟁 자체를 주적으로 삼고, 공짜(무상)와 친환경-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주경복의 대표 공약이 "광우병, 아토피 걱정없는 친환경 직영급식 실현"이었다- 등 후순위 가치를 대안으로 삼는 식의 우를 계속 범할 것이다. 2012년 대선은 2007년 대선처럼 한탕주의, 투기주의, (문국현에 대한) 비이성적인 기대감이 횡행하고, (정동영이 보여준) 진정성도 감동도 없는 공약이 난무하고, 진보는 또 한번 지리멸멸 콩가루 집안이 되어 망할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