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호남은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항상 정치적 "타자"가 되는 것을 스스로 자처해왔다. 다시 말해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외부 세력에 위탁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김대중이라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로 인한 불가피한 현상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변명의 유효기간도 이제는 지나지 않았나 싶다.

2002년 호남은 노무현에 의탁했고, 노무현이 기대를 저버리자 일부는 닝구로, 일부는 관망세력으로, 일부는 호남 노빠로 남았다. 문제는 노무현에 대한 안티 정서가 광범위 하게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닝구로 대표되는 적극적인 반노세력의 존재는 극히 미미하다는데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민주통합당"이라는 가짜 민주당은 호남권을 석권했고, 심지어 야권연대를 등에 업은 정체불명의 종북좌파 인사들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까지 했다.

호남권에서 안철수의 높은 지지율, 문재인의 낮은 지지율에 대한 이런저런 해석이 많지만, 나는 그것이 결코 "민주당에 대한 심판"이라거나, "호남의 채찍질"이라고 보지 않는다. 호남이 민주당을 심판하고 채찍질 할 기회는 이미 2012년에 주어졌었고, 그때 호남은 분명히 노빠의 협박 혹은 속임수에 넘어갔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언어로 그것을 포장해도 정치적 굴종 혹은 어리석음이라는 진실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나 오마이 같은 노빠 프라우다 언론에서 호남의 "전략적 선택"을 운운할때, 거기에는 호남에 대한 경멸과 비아냥, 그리고 암묵적 협박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것을 호남 유권자 본인도 알고, 노빠도 알고, 노빠 프라우다 기관지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호남의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무엇인가? 그것 역시 전략적 선택으로 대표되는 호남의 정치적 굴종과 어리석음의 또다른 형태다. 안철수가 김대중의 모습을 간간히 내비치는 것, dj계승을 적극적으로 천명하는 것, 그리고 여기에 대한 호남 유권자의 조용한 지지, 내심의 기대...이러한 것들은, 미안한 말이지만, 2002년의 노무현 현상이 단지 시대를 달리해서 나타난것 뿐이다.
 
안철수가 노무현 같다거나, 안철수 주위에 또다른 부산 출신의 정치꾼들이 있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정치적 주체가 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호남이 항상 정치적 대리인을 내세워서, 소극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출한다는데 있다.

이것은 어떠한 문제를 야기하는가? 호남과 정치적 대리인 사이에 이해관계가 일치할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일단 이해관계가 깨지면 호남은 정치적 곤란에 직면하게 된다. 만약 호남의 정치적 의사가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제시된다면 이해관계가 깨지더라도 복구하거나 수습할 가능성이 크고, 또 다른 협상 파트너와 교섭할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전략적 지지"라는 형태의 구차스럽고 굴욕적인 형태의 정치적 의사는 그렇게 존중받을수가 없다.

전략적 지지를 바탕에 둔 제휴관계에서 호남의 요구조건은 아주 모호하고 조심스러운 형태로 제시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은 무시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 호남이 "대접을 받지는 못해도 손해를 보지 않는 것에 만족하면서 안분자족"하는 균형상태가 존재하기는 힘들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균형상태가 존재한다고 믿는 모양이지만, 내 예측으로 일단 호남의 요구조건이 한번 무시되면 그때부터는 그 정치적 대리인이 안철수던, 안철수 할아버지던, 노빠 시즌2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설사 호남이 그런 안분자족에 처하기를 기꺼워 하더라도, 그 안분자족은 정치적 대리인 세력이 집권에 실패하는 순간 바로 끝장나기 때문이다. 호남이나 정치적 대리인이나 둘다 정치적 칼날위에서 움직이는데 무슨 균형상태가 존재할수 있을까? 둘다 더럽게 싸우다가 열린우리당 짝이 날 가능성이 크다. 호남의 전략적 지지는 그 전략적 지지를 받은 당사자로부터 "지역주의"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고, 호남은 씩씩대다가 다른 정치적 숙주를 찾아나서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예측이기 때문에 수긍하지 않아도 할 말은 없다)

그렇다면 호남이 안철수를 찍지 말란 말인가? 그것은 아니다. 호남의 정치적 태도와 정치적 책임의식이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다면 심지어 문재인을 100% 지지해도 문제는 없다. 더 구체적으로는, 호남이 호남의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국회의원들을 뽑는다면, 어떤 정당을 밀던 어떤 대통령 후보를 밀던 상관이 없다. 지금은 그런 자세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를 뽑아도 호남에게 좋은 결말을 가져다 주지는 못할 것이다.

내 얘기는 이것이다. 호남은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표방하고, 그에 걸맞는 정치인을 국회의원으로 뽑아라. 예를 들어 정말 호남이 새누리당 말살, 새누리당 반대를 목표로 한다면 문재인이던 안철수던 100% 밀고, 향후 인사에서 무슨 불이익을 받아도 찍소리 말아야 한다. 경제적 이익과 차별 철폐가 목적이라면, 그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인을 민주당이나 새누리당 가운데서 뽑아라. 새누리당 반대와 경제적 이익과 차별 철폐를 모두 이루고 싶다면, 현 민주당을 재장악 해서 호남 인사로 채우고, 누가 그것을 트집잡던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라. 지금 처럼 원하는 바가 혼재되어 있는 상황, 그리고 원하는 것을 대의하는 정치인을 뽑을 정치적 용기도 없는 상황이라면 누구를 뽑아도 그것은 정치적 의존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