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정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깨고 여러번의 헤쳐모여끝에 호남지역주의 세력과의 결탁을 통해 만들어진
민주당은 김대중과 노무현같은 거물의 부재와 박상천류의 호남토호와 김진표류의 경기토호들의 기득권사수를
위한 숙주로 전락하게 된다.
6.2지방선거에서의 절반의 승리또한 이명박정부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효과로 평가되었으며 그것마저도
국민참여당으로 단일화되었던 경기도지사선거에선 민주당이 고의적으로 당조직을 가동하지않는 비열함을 보여주었다.
그런 경향은 427보궐선거에서도 이어졌는데 김해을 보궐선거에선 민주당조직이 보이지않는다는
제보가 이어졌다.
오세훈이 주민투표율 미달로 서울시장직을 사임하면서 서울시장보선이 2011년 10월 26일로 치뤄지게 되었는데
이에앞서 가장 유력했던 안철수교수가 박원순을 지지했고 이에 응답하듯 한명숙 前장관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내 후보군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가지고있었던 한명숙 前장관이 빠진채 치뤄진 민주당경선에서
박영선은 국민여론조사와 선거인단 투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어서 야권단일화경선 레이스가 시작되었는데 박영선은 티비토론에서 박원순에게 네거티브로 일관하는
추태를 보여주었고 시민들의 민심은 박영선을 떠나게 된다.
장충체육관에서 치뤄진 야권단일화 경선에서 결국 박원순이 야권단일후보로 확정되었는데 여기서도 민주당의
오랜악습인 버스동원이 횡행하였지만 젊은유권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양상이 바뀌게 되었다.
언론에선 버스(민주당조직)VS지하철(시민)의 대결로 단일화 경선을 대서특필하였다.
서울시장 유세기간동안엔 시민들이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선거와 김해보선때처럼 당조직을 의도적으로 
널널하게 돌리지못하도록 감시를 통해 민주당이 최선을 다해 당력을 쏟을수있게했고 박원순은 53.3%의 득표율로
서울시장보선에서 승리하기에 이른다.

profile

난닝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