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를 병균 취급한 어느 까페주인의 야박한 인심"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21016141412698

 

나름 "차카게 살자"를 모토로 삼고 있을 기자가 댓글에서 난타를 당하고 있군요. 아마도 상처를 좀 받았을 듯.

 

외부인이라 하면 될 걸 굳이 노숙자라고 특정해서 영수증에 인쇄한 까페주인의 무신경함이 거슬릴 수도 있겠죠. 그러나 화장실 인심이 후한 나라에 속하는 한국에서 노숙자가 아니면 굳이 까페주인이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정책을 실시했을까를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어요. 과연 그 까페의 주인이 정말로 야박한 사람이라서 그런 문구를 영수증에 넣었을까요?

 

착하게 산다는건 알고보면 정말 어려운 일이죠. 어떻게 사는 것이 착한 것인지를 아는 것부터가 매우 어렵고, "선량함에 대한 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할 정도로 연약한 것인지를 알면 더 더욱 그렇겠죠. (착함과 바보의 경계선은 정말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이죠)

 

제 지인 중 한명은 본인이 정말로 선량하고 착한 심성을 갖고 산다고 굳게 믿는 분이신데, 하루는 그 분과 저녁술자리를 하는데 껌파는 할머니가 오셔서 천원에 팔더라구요. 당연히 제 지인은 평소대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천원짜리를 꺼냈고...  두번째할머니 세번째할머니까지도 그 미소는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네번째할머니에서 무너지더라구요. 냉정하게 거절하셨죠.

 

제가 그 분더러 매몰차게 "고작 단돈 4천원에 무너지는 얄팍한 선량함을 가지고 그리도 착한 척 유세를 떨었냐"고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분 정도면 정말 보기드물게 착한 사람 맞습니다. 단지 인간의 '선량함의 의지'라는 것은 때로 자기 목숨을 희생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렇게 '정량적으로 측정가능할 정도'로 연약한 것이기도 하다는 말씀이죠.

 

껌파는 할머니에 대한 저의 선량함은 딱 "하루에 2천원짜리"입니다. 그것이 제가 스스로 설정한 '착함과 바보의 경계선'인거죠. 제 지인은 3천원이었던 것이구요. 여러분들의 선량함은 얼마짜리입니까?

 

덧) 언젠가 아크로에 비슷한 내용으로 글을 쓴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는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