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낸 애완동물이 두 마리가 있습니다. 멸치만한 민물열대어 한 마리와 요크셔 암컷 한 마리. 우리 가족에게 '살아있는 인형'이자 희노애락의 동반자이기도 했던 그 동물들에게 바치는 잡스런 이야기입니다. 

 

 

1. 길동이

 

딸래미가 초딩이었을 때, 어느날 하교길에 교문앞 노점상에서 사 왔다는 조그만 민물열대어입니다.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4마리가 천원이었다죠. 저녁에 퇴근해보니 거실 탁자위에 조그만 어항이 놓여있고, 잔 멸치보다는 조금 더 큰 물고기들이 꼬물거리고 있더라구요. 그런 경우가 대개 그렇듯이, 며칠 못 가 모두 죽는게 당연한지라 '오래 오래 같이 살거야' 라며 갖은 호언과 호들갑을 떠는 딸래미를 그저 귀엽게 바라볼 뿐이었죠.

 

예상대로 첫날밤을 못넘기고 3마리가 죽었습니다. 좁은 어항속에서 자기들끼리 서로 입으로 쪼고 서열 싸움이 치열하더라고요. 그리고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 한 마리. 딸래미는 그 상황에 당황했지만, 여전히 포기하지는 않더라구요. 직접 이름도 지었다는데, 길동이라고 하더라구요. 알고봤더니 아기공룡둘리에 나오는 아빠이자 악당 역할의 어른 이름이라는데, 딸래미는 취향이 독특한지 주인공인 둘리보다 길동이라는 어른 악당을 더 많이 귀여워했더라죠. (많이 찔렸습니다)

 

암튼 그날부터 민물고기와의 동거가 시작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못가 죽으리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1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가도 끄떡없이 살아있는겁니다. 흔한 산소호흡기도 없는지라 하루에 한번씩은 반드시 물을 갈아주어야했는데, 그 때마다 북새통이 벌어졌죠. 수돗물은 몸에 해롭다는 딸래미의 강력한 주장에 정수기 물을 한바가지 준비한 다음 온도를 맞춰놓는 것은 기본이고, 혹시 물을 갈아주는 과정에서 탈이 생길까봐 엄마부르고 아빠부르고 난리가 나는거죠.

 

언제부터인가 길동이는 딸래미의 동생이자 우리 부부의 아들이 돼었고, 우리 가족들 사이에는 '길동이의 안부'가 첫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와이프와 딸래미의 주장으로는, 길동이가 우리 가족들을 알아본다고 합니다. 어항에 얼굴을 들이대면 꼬리질이 달라진다는데, 그저 먹이에 대한 반사행동일 뿐이라는 저의 과학적(?) 인 주장은 초전에 진압이 돼었지요. 그날부터 길동이는 '가족을 알아보는 영특한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딸래미와 와이프는 애지중지를 넘어 탁자앞 어항을 바라보며 "길동아, 오늘은 말야" 이러는 수준에까지 이르렀고, 그렇게되자  길동이는 이제 저에게 신성불가침한 존재가 되는건 당연한 일이었죠.

 

길동이는 그렇게 우리 가족의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1년여가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늦은 시간, 딸래미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난리가 났습니다. 황급히 거실로 나가보니 딸래미는 "길동이가 죽었어... 불쌍해서 어떻해"하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고, 와이프도 덩달아 훌쩍거리고... 한참동안 간신히 달래고나서 장례절차를 논의했습니다. 마침 굴러다니는 돌반지 케이스가 있길래 관으로 삼고, 딸래미가 '길동이에게 부치는 편지'를 써서 함께 넣은 다음 검정색 포장지로 싸서 인근 야산에 고이 묻어주기로 하였습니다.

 

거실 탁자위 조그만 어항속에서 우리 가족과 평생을 같이 산 길동이를 늦게나마 추모합니다.

 

 

 

2. 아롱이

 

현재 우리집에는 열세살짜리 요크셔테리어 암컷 한마리가 같이 삽니다. 이름은 아롱이. 이 녀석도 새끼때 근처 동물병원에서 사온 것입니다. 외동이인 딸래미가 심심해할까봐 사왔는데, 어느새 우리집의 절대유일공주인 딸래미를 밀어내고 귀염을 독차지하면서 살아온 놈이죠. 이제는 늙어서 기력도 많이 쇄하고 (꼬리는 간식줄 때 딱 다섯번 흔듭니다;;), 영악하기 그지 없어서 우리 가족의 상전 노릇을 하면서 살고 있죠. 

 

특히 이 녀석에게 쏟아붓는 와이프와 딸래미의 애정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심지어 다른 집 개들과는 다르게 차를 타는 것 몹시 싫어하고, 동물병원의 보관소같은 곳에서는 밥도 안 먹고 단식투쟁을 벌이는 놈이라서 우리 가족은 요 몇년간 여름 휴가도 제대로 못 갈 정도이죠. 체격이 다른 성체의 반도 안돼는 허약체질이라 혹시 한밤중에라도 토하거나 설사라도 하면 동물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는건 기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녀석에게는 우리 가족이 몹쓸 짓을 했습니다. 새끼때 데려와 첫 생리 하던 날, 병원에 데려가서 자궁적출수술을 하였습니다. 제가 이 녀석의 저녁 산책 및 대변 처리 담당인데, 아래를 닦아줄 때 말라붙은 생식기를 볼 때마다 정말 미안하고 그렇더라구요. 당시에는 정말 별 생각없었는데, 요즘 녀석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 돼니까 은근한 죄책감도 들고 그렇습니다. 언젠가 슬쩍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 부부싸움 날 뻔한 뒤로는 모두가 언급하기 싫어하는 '불편한 진실'이 돼었죠.

 

특히 걱정돼는 건 암만 봐도 이 녀석의 수명이 얼마 안남은지라, 막상 죽었을 때 보나마나 길동이때와는 비교도 안돼는 난리가 날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친자식이나 친동생이 실제로 죽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을게 뻔한데, 솔직히 좀 걱정스럽긴 합니다. 무심코 곱게 잘 키우다가 양지바른 곳에 고이 잘 묻어줘야겠다는 말을 꺼냈다가는 경을 칩니다;;

 

길동이때 한번 겪었고, 조만간 한번 더 겪어야하는데, 우리 가족의 결론은 다시는 애완동물 안키운다입니다.

 

쓰다보니 별 내용없는 잡설이 돼버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