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에서 <<굿바이 솔로>>라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환상"에 대해서 썼었는데, 드라마 속에서의 환상은 2, 3년 전에는 잘 쓰이지 않던 이야기  방식입니다. 이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일 듯한데, 아래에 소개하는 <<행복한 장의사>>이전에는 영화 속에 환상이 별로 쓰이지 않았지 싶습니다. 아래의 글은 8년 전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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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환상이 가장 잘 나타나는 영화, 혹은 환상으로 버무려진 영화를 들라고 하면, <<제 8요일>>을 들 수 있을 듯합니다. 무수한 환상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몽골증환자 자신이 몽골인이 되는 환상이었습니다. 몽골증환자, 혹은 다운증후군환자인 주인공은 자신이 몽골인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첫 장면에서 다른 남자 주인공과 만났을 때, 그가 영어와 불어를 섞어 쓰므로, 어디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그때 이 다운증후군환자는 자신은 몽골인이라고 합니다. 근데, 그도 그럴것이, 서양에서 양미간이 정상인보다 훨씬 넓고, 눈이 작으며, 코가 납작하고, 입이 해벌어진 외양을 갖추고 지능이 떨어지는 증후군을 가진 환자를 기이하게도 mongolian 혹은 mongolism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우리는 다운증후군 (Down's Syndrome)이라고 부르죠.

동양인, 혹은 몽골인의 얼굴이 다운 증후군의 환자의 얼굴과 동일해서 그런가 봅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불렸을 터이니 그 몽골증환자가 자신을 몽골인이라고 할만도 하겠죠. 영화의 중반 쯤 가서, 남자 몽골증환자는 여자 몽골증환자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들을 둘러싼 사회는 그들을 갈라놓으려 하겠죠. 거의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 왔을 때, 그 여자의 정상인 부모가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할 때에, 동료 몽골증환자들과 남자 주인공 몽골증 환자는 대형 밴을 탈취해서, 그 정신요양소로부터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 장면에서 밴을 타고 탈주하는 장면이 느닷없이 고비사막을 배경으로 말을 달리는 장면과 교차편집(crosscutting)됩니다. 말위에 올라있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그들은 재회를 하게됩니다.

한국영화에도,  영화적 환상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죠. 바로 <<행복한 장의사>>가 그러할 텐데... 주로, 주인공(임창정)의 환상은 귀신을 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는 관객에게 그러한 것처럼, 주인공들을 겁먹이는 대상이죠. 그러다가, 임창정이 장의 일을 해나가면서, 나름대로, 죽음을, 주검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잘 그리고 있죠. 영화적 환상에 대해서 혹자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임창정이 좋아하던 여인의 주검을 앞에 두고, 그녀를 떠나보낸후, 거리에 흩날리는 국화꽃잎을 보는 환상을 꼽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보면, 그러한 환상은 조금은 상투적이죠. 저에게는 마을에 홍수가 났을 때, 물에 쓸려 죽음을 당한 소녀의 환상을 보는 모습이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야, 임창정이 주검을, 죽음을 긍정한다는 것이 나타나구요....

어느 오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합니다. 잠깐 깡패들과 임창정 패 간의 코믹한 장면들이 연출되다가... 운동회를 훑던 카메라는 어느 비눗물 풍선을 부는 여자 아이에 멈춰섭니다. 물론 임창정과 같은 동네의 그가 조금 아는 아이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한껏 클로즈업합니다. 순간 당황했죠. 그 시선은 누구의 것이었을까요? 우리의 시선? 임창정의 시선? 그리고 몇일이 지나 마을엔 홍수가 나고, 그 여자아이는 죽습니다. 그 아이를 구하려고, 임창정 패는 냇가를 방황하고, 결국은 아이의 주검만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야 임창정은 장의사의 일에 진지해집니다. 어느날 저녁 언제나 처럼 보아왔던, 장례 일을 전후로 보아왔던 귀신이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를 겁주는 대상이 아니라 너무나도 따뜻한 얼굴로, 포근한 얼굴로 그를 넌지시 바라봅니다. 어두운 밤 배경에 오버랩되면서... 바로 운동회장에서 비누 풍선을 불던 아이의 바로 그 모습으로, 빙그레 웃고 있는 모습으로, 불행하던 꼬마와 잠시 동안이라도 즐겁게 놀아줘서 고맙다는 듯, 자신의 죽음을 그렇게 슬퍼해줘서,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떠나 보내줘서 고맙다는 듯, 임창정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양, 그를 바라봅니다. 비누 풍선을 불면서...

<<오아시스>>에도 영화적 환상이 잘 드러납니다. 영화는 장애인 여자 주인공이 정상인(즉, 비장애인)을 꿈꾸는 환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아시스를 꿈꾸듯, 방안에 걸린 그림으로부터 튀어나온 코끼리, 꼬마, 인도 여인과 춤을 추는 환상을 보여주죠. 하지만 저에게 이런 환상들 보다는, 다른 환상들, 즉 거울을 가지고 놀면서, 거울에 비춰진 빛이 비둘기가 되는 환상이 오히려 더 다가 왔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장애인 여자 주인공의 오빠가 온후 그녀가 구박을 당하고, 자신의 울분을 어쩌지 못해 가지고 놀던 거울을 깨뜨리고, 그렇게 깨져 반사된 빛들이 다시 나비가 되는 그 환상이 더 맘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환상은, 아니 장애인의 환상은 언제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 속에서 무언가를 꿈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