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자본주의, 성분을 뜯어보다

오늘 한겨레신문의 안철수 특집 기사입니다.


 

>하지만 냉혹한 시장경제에 올바른 경제윤리와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건 위기의 근본 원인을 따져보는 작업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가 맞닥뜨린 문제는 단지 경제주체들의 무분별한 탐욕에서만 비롯된 것일까? 아니다. 사실 위기는 더이상 ‘돈 될 만한 곳’을 찾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말하자면 시스템 차원의 문제다. 재벌의 탐욕이 아니라 무능이 문제인 셈이다. 단지 도덕성을 강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시장경제를 뼈대로 하는 경제 시스템 자체의 대수선 작업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자본주의가 걸어온 오랜 역사는 위기의 원인을 도덕 탓으로만 돌리는 움직임이 대부분 보수·우파의 위기 탈출 프로젝트였음을 일깨워준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현대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금융부문 개혁에 대한 밑그림조차 없는 건 안철수표 혁신경제의 치명적 결함이다. 경제를 혁신한다는 건, 단순하게 말하면 결국 돈의 물꼬를 새롭게 틔워주는 일이다. 창업자금 지원과 같은 정책은 극히 잔가지 중의 잔가지인 아이디어일 뿐이다. 현대경제에서 금융은 모든 것의 처음이자 끝이다. 한편으로는 급격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중에 넘쳐나는 과잉유동성의 물줄기를 어떤 방식으로 혁신경제 방식에 맞게 돌려놓을지, 그 과정에서 어떤 당근과 채찍으로 냉혹한 금융시장과 맞설지, 혁신경제에 어울릴 법한 혁신금융 시스템은 어떤 모습을 띨지… 이 모든 물음에 대한 정교한 해답과 실행계획을 찾지 못한다면 안철수표 혁신경제엔 미래가 없다.<


 

 

'내용이 없다'는 비판은 양념이고, 한겨레의 안철수 비판의 핵심은 '안철수는 사민주의 진보가 아니다'는 것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 자체에 '분명하게' (체제가 유지되기 어려운)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데 안철수는 (이명박처럼) CEO 출신이 가진 한계때문인지 시장을 (너무) 신뢰하는 바람에 시장에 도덕성을 불어 넣는 경쟁 윤리나 강조하는 (보수가 말하는 것과 다른 의미에서) 불안한 후보"라고 안철수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겨레신문의 이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겨레신문이 안철수를 비판한 내용에 잘못된 팩트가 있다는 관점이 아니라 한겨레신문의 비판 기준 자체가 낡고 녹슨 안경이라는 생각입니다.


 

언제부턴가 "2008년 금융위기로 세상이 바뀌었다"라는 말을 유행가처럼 따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앨런 그린스펀이 FRB 의장 시절 미 주식시장의 리스크 매니징이 훌륭하다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했다며 우울한(과잉 유동성 때문에 전 세계 주식 시장이 망하고 곡물, 에너지, 원자재 가격은 폭등해서 전 세계 경제도 망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둠 루비니같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가져와서 이봐라 하는 사람들 천지입니다. 다보스 포럼에서 빌게이츠는 물론 주식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도 지금의 자본주의의 실패를 이야기 했다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정말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십니까? 2008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미국 금융위기가 현재 진행형임은 분명합니다. 수차례 양적 완화로 인한 과잉 유동성이 제3 세계(선진국도 포함되지만)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대시켰고 원자재 가격 등의 상승의 원인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생각합니다. 헌데 레닌주의 혁명같은 소리를 하는 지젝 류의 사람들 외에 영미식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대체(아니 적어도 삐까칠 수 있다고 우기기라도) 할 수 있는 유의미한 논의를 진행시킨 '자'(개인과 단체, 정당, 국가 등)는 제가 알기로 없습니다.


 

미국 금융위기 이후 미국 실업률은 계속 8%대를 유지했고(오늘 발표에서 그 밑으로 떨어졌다지만), 애플은 잡스 사후에도 우쨌든 성공가도에 있습니다. 며칠 전 발표된 세계 10대 브랜드 가치를 보면 1위부터 10위에 미국 기업이 1~8위를 차지했습니다(삼성 9위, 도요타 10위). 북유럽 사민주의 경제의 경쟁력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던 기업인 노키아는 MS가 인수해주지 않으면 곤란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사옥 부지까지 매도한다고 합니다. 유로존에서는 독일을 제외하면 멀쩡한 나라가 없습니다. 독일의 유로화 장난질과 버블로 인한 과잉 유동성에 화살을 돌리려 하지만 PIGS의 무기력한 경제 체제가 4개국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것과 같습니다. 영국은 이미 끝났다는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런던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world city입니다. 런던의 금융 시장을 비롯한 경매 시장에는 여전히 세계의 돈이 몰려 듭니다. 금융 위기 이후 아~주 잠깐 주춤했던 런던 부동산 붐은 다시 현재 진행형입니다. 버블이 꺼진다고 수 십년 동안 위기 신호를 보냈다는데 수 십년 동안 꺼지지 않은 버블은 버블일까요 아님 뭘까요.


 

체계 잡힌 (비판적) 경제이론 및 체계 없는 막가파 비난이 뒤섞인 채 후렴구처럼 따라부르는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파국을 맞을까요?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프로토 타입이라 할 수 있는 공정한 룰, 엄정한 법 집행, 패자 부활의 기회, 기회의 균등, 경쟁 장려를 '경제 상식'이라 주장하는 안철수의 생각이 "더 이상 돈 될 만한 곳을 찾지 못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 차원"의 문제를 간과했다고 손쉽게 일갈을 당할 생각일까요?


 

유럽 선진국 몇 나라에서 성공했다는 사민주의(정치 개념인지 경제 개념인지 사용자마다 달라서 헷갈립니다)를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유학파 몇 명과 그걸 전해 들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을 우리 현실에 과연 적용해도 되는지 검증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우리나라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의 큰 틀을 바꾸자는데, 과연 유럽 수준에는 못 미치더라도 따라한다는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필요한 사회 공공 인프라 구축을 위한 복안은 과연 로드 맵 차원에서라도 마련되어 있을까요?


 

10대 기업이 GDP의 80%를 차지하며 사립 교육 기관이 대학 교육을 포함한 교육 시스템의 거의 모든 부분을 담당하는 작금의 상황은 어제 오늘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난 현상이 아닙니다. 현상 차원을 넘어 이미 대한민국 경제의 기본 틀은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기본 틀은 많은 시행착오와 고통을 수반했지만 그런대로 잘 운용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본 틀을 초기화시켜서 유럽식으로 바꾸자는 시도를 주장할 때에 그 주장이 현실 정치에서 유의미한 제안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한다면 10대 기업을 포함한 대기업들이 어찌 될 것이며, 어떤 수단으로 '어찌'되게 할 것이며, 사회 시스템의 공공성의 핵인 교육 시스템을 위한 사립 교육 기관의 국공유화는 무슨 수로 달성할 지(국고 지원금이 많으니 사실상 국가 소유므로 그냥 가져가겠다는 소리 말고) 등에 관한 '합리적인' 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합리적인 안을 내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장하준 그룹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재벌과의 대타협+복지 확대'의 경제 민주화 제안조차 보수화와 변절의 논란에 휘말려 들어가는 상황이니 더 이상 뭘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안철수의 '상식'은 공정한 룰이 지켜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대기업에 인적, 물적 자본이 집중되는 것 자체를 백안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겨레신문 류의 입장은 대만의 예를 들며 수많은 중소기업이 나라 경제를 이끌어야 실업률도 낮아지고 경제 전반의 안정성을 획득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만과 우리나라 경제...지금 한 번 비교해 보시죠. 대만식 체제가 실패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 절대 규모와 핵심 산업인 전자, IT 에서의 경쟁력 등을 비교해보면 우리 경제구조를 굳이 대만과 비슷하게 대기업 집단을 일부러 잘게 쪼개는 방향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소기업을 키울 이유는 없습니다. 안철수의 상식은 공정한 룰을 마련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정상성을 회복하고 기회의 균등과 패자 부활이 가능한 경제 사회 생태계를 구축하여 자유 및 창의와 융합의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생태계에서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상식이 문자대로 상식에 부합하며 대중을 기만하지 않는 솔직한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팍팍한 삶에 지쳐있지만 내 능력을 계발해서 폼나게 살아보고 싶은 욕망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재벌 대기업에의 경제력 집중에 허탈해 합니다. 하지만 시작은 미약하더라도 내가 시작한 뭔가가 커다랗게 성장하는 것을 꿈꿉니다. 학벌에 상관없이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내 이름 앞에 폼나는 학벌을 박아 넣고 싶어 합니다.  기본적인 복지 수준은 원하지만 복지 서비스에 의존하는 삶을 사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sky를 갈 순 없는 것을 잘 알고 내 자식이 sky에 갈 확률은 1%라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상류층은 sky '내' 자식은 그 밑의 대학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뻔히 존재하는 격차를 격차가 아니라고 정신승리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국민 대다수는 '노동자'로 살 것이며 고소득 전문직은 어차피 몇 명 안되는 것을 잘 알지만, 경쟁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노동자 권익이나 챙기기 위해 유럽처럼 노조 조직이나 하자는 주장은 차마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저는 감히 앞으로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은 못합니다. 특히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식의 체제의 전면적인 변화를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지평의 한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출발한 지 얼마 안되어서 디테일은 잠깐 부족한 상태일지 몰라도 안철수의 상식은 저의 상식이기도 하며 아마도 우리 사회의 가장 현실적이면서 이상적인 지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안철수의 상식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한겨레신문의 상식은 무엇일까요? 어떤 세상을 꿈꾸는 걸까요? 왜 그런 세상을 꿈꾸는 걸까요? 스스로 자신들의 비판이 유의미함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할까요?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하고 있을까요? 민주화 투쟁의 틀에 갇혀버려서 투쟁의 대상을 찾다 찾다 안되서 투쟁의 이니스프리를 꿈꾸는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