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청이 들어와서 쓰긴 쓰는데... 좀 갑작스럽게 만들어서 별로 마음에 들진 않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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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그들은 이제 다 부스러진 통진당 입구에 이르렀다. 그곳은 검은색으로 마치 비에 젖은 듯 번들거렸다. 토대부근에 떨어진 몇몇 작은 부스러기와 박편들이 엔엘들의 분노를 말해 주는 전부였다. 동쪽 면 두 기둥이 서 있는 곳에 지상으로부터 상당히 높게 거대한 문이 달려 있었다. 그 위로는 닫혀진 창문 하나가 쇠기둥으로 울타리 친 발코니에 접해 있었다. 문에 이르기까지 스물일곱 개의 넓은 층계로 된 계단이 있었다. 그 모든 층계석은 똑같이 검은 돌로 깎여진 것이었다. 이것이 당내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였다. 하하하와 안철수는 계단 아래에 섰다. 하하하가 말했다.

'내가 올라가겠소. 난 이곳에 와본 적이 있어 무엇이 위험한지 잘 알고 있소.'

'나도 올라가겠소. 난 더이상 어떤 위험도 두렵지 않소. 야당에 그토록 큰 해악을 끼친 자와 이야기하고 싶소. 미뉴에가 나와 함께 있으니 내 발이 비틀대지 않도록 돌봐 줄 것이오.'

'뜻대로 하시오. 시닉스도 나와 함께 갈 것이오. 다른 사람들은 계단 아래서 기다리도록 합시다. 무언가 보거나 들을 만한 일이 있다면 여기서도 충분히 보고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자 흐강이 외쳤다.

'아니에요! 떡밥과 난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요. 여기선 우리 각자가 우리들의 종족을 대표하는 거예요. 우리도 가겠어요.'

'그렇다면 같이 가지.'

하하하는 이렇게 대답하고 계단을 올라갔으며 안철수가 그 곁에서 걸어갔다. 아크로의 논객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층계 하단 양쪽 말 위에 앉아 자신들의 주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거대한 성채를 음울한 눈길로 올려다보았다. 유인구와 시너는 자신들이 대수롭지 않은 존재이며 또 안전하지도 못하다고 느끼며 제일 아래 계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유인구가 투덜댔다.

'여기서 당내까지는 반 마일밖에 안 돼. 난 슬쩍 빠져서 눈치채이지 않게 경비초소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우리가 뭐하러 왔느냔 말이야. 우린 필요하지도 않잖아.'

하하하는 통진당 문 앞에서 지팡이로 문을 두드렸다. 공허한 소리가 울렸다. 그는 명령하는 듯한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유시민! 유시민! 유시민! 나오라!'

얼마동안 아무런 응답이 없었으나 마침내 문 위에 난 창문이 열렸다. 그러나 그 어두운 구멍을 통해서는 아무 형체도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누구야? 뭘 원하는 거야?'

미뉴에가 움찔 놀라며 중얼거렸다.

'난 저 목소리를 알아. 저걸 신사라고 여겼던 그날을 저주해.'

하하하가 다시 외쳤다.

'넌 그의 심복이니 가서 유시민을 데려 오너라, 뱀혓바닥 길버트! 우리 시간을 허비하게 하지 말고!'

창문이 닫혔다. 그들은 기다렸다. 갑자기 저음의 아름다운 선율로 말하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음성 자체가 사람을 매혹하는 것이었다. 방심한 채로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조차 거의 말할 수 없으며 또 말한다 하더라도 그들 자신의 힘이 거의 빠졌기에 영문을 알 수 없는 게 보통이었다. 대개는 그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고 기억할 뿐이었다. 그 목소리는 말하는 모든 사실을 합당하고 현명하게 들리게 했으며 또 거기 공명되어 듣는 이의 마음 속에서는 자신들도 그렇게 현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일깨워졌다. 다른 사람들이 말할 때는 그에 대비되어 더욱 투박하고 귀에 거슬리게 들리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 목소리를 거부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 주문에 걸려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분노의 불길이 이는 것이다. 어떤 자에겐 그 목소리와 주문이 말하는 동안에만 효과를 끼쳐 다른 이들이 그 목소리에 취하는 걸 볼 때는 마법사의 계략을 환히 들여다본 것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목소리의 주문에 정복당한 사람들의 경우 그 목소리와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라도 효력이 지속되어 그 부드러운 소리가 자신에게 속삭이며 재촉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정신과 의지의 노력 없이는 누구도 동요되지 않을 수 없으며 누구라도 그 목소리의 지배자가 통제하는 한 그 명령을 거절하지 못했다. 이제 그 소리는 부드럽게 묻고 있었다.

'응? 왜 당신들은 내 휴식을 방해하는 건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게 전혀 평화를 주지 않을 셈인가?'

그 음조는 이해심 많은 사람이 부당한 위해를 받고 괴로워하는 그런 소리였다. 그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기에 사람들은 깜짝 놀라 위를 쳐다보았다. 형체 하나가 난간에 기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커다란 백바지를 입은 비쩍마른 남자로 바지의 색깔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눈을 움직이거나 몸을 꿈틀거릴 때마다 색깔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높은 광대뼈와 좁은 이마에 툭 튀어나온 눈을 갖고 있었다. 지금 그의 표정은 몹시 짜증나고 지친 듯해 보였다.

그 목소리가 다시 부드럽게 들려왔다.

'음, 당신들 중 적어도 두 사람의 이름은 알고 있지. 하하하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 그가 내게 무슨 도움이나 조언을 청하러 왔다고는 기대하지 않소. 그리고 그대 안랩의 대표 안철수는 고귀한 V3 문신과 돼지처럼 준수한 용모로 알아볼 수 있소. 오, 타인보다 세 배의 명망을 지녔던. 안랩의 위대한 프로그래머여! 왜 당신은 진작 친구로서 오지 않았소? 서울대의 훌륭한 교수인 당신을 무척이나 만나고 싶었소. 특히 근년에 들어서는 당신을 괴롭히는 우매하고 간악한 간언들로부터 당신을 지켜주고 싶었소. 이미 너무 늦은 것이오? 내게 가해진 많은 위해에도 불구하고 - 유감스럽게도 아크로 사람들이 그 일에 상당한 역할을 했는데 - 여전히 나는 당신을 지켜 줄 것이고 또 만일 날 적대시하지 않는다면 불가피한 파멸로부터 당신을 보호해 주겠소. 진정 나만이 지금 당신을 도울 수 있소.'

안철수는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입을 열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둡고 근엄한 눈길로 자신을 굽어보는 유시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가 다음엔 곁에 선 하하하를 바라보았다. 동요의 기색이 보였다. 하하하는 아무런 내색도 않고 아직 내려지지 않은 어떤 호출을 참을성있게 기다리는 사람처럼 돌같이 말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논객들은 처음엔 유시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런거렸으나 이윽고 주문에 걸린 사람들처럼 아무 말이 없어졌다. 그들에게는 하하하가 자신들의 주군에게 이렇게 정당하고 격에 맞게 말한 적이 결코 없었던 것같이 생각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안철수를 향한 그의 언동은 거칠고 교만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에는 하나의 그림자, 다시 말해 커다란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그건 유시민이 비상구 옆에 서서 반쯤 문을 열어 놓고 한 줄기 빛을 들어오게 하는 반면 하하하는 그들을 암흑 속에서 아크로의 종말로 몰아가고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불쑥 침묵을 깬 것은 한그루였다.

'이 정치인의 말은 거꾸로예요.'

그는 도끼자루를 움켜쥐며 외쳤다.

'국참당식 언어로는 도움은 파멸을 뜻하고 구원은 살해를 뜻해요. 명백해요. 더구나 우린 여기 구걸하러 온 게 아니오.'

'닥쳐라!'

유시민이 외쳤다. 이 순간 그의 목소리는 그리 상냥하지 않았으며 눈에는 빛이 번득였다가 사라졌다.

'난 아직 네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니야, 제주도 두그루의 아들 한그루. 네 고향은 바다 넘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 땅의 분란과 별 관계가 없겠지. 네가 거기에 휩쓸리게 된 것은 너 스스로의 뜻이 아니었어. 그래서 난 네가 수행한 그 역할 - 용감한 역할임을 의심치 않지만 - 을 탓하진 않겠다. 그렇지만 먼저 내 이웃이며 한때는 내 친구였던 서울대 교수와 이야기하게 가만히 있으라고. 안철수 후보여, 어떻게 하시겠소? 나와 화평을 맺고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한 내 지식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도움을 받으시겠소? 사악한 시절에 대처하는 방안을 함께 의논하고 또 우리가 입은 손해를 선한 의지로 치유하여 양쪽이 가진 것들을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게 꽃피우게 하지 않겠소?'

여전히 안철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치미는 울분을 참으려고 애쓰고 있는지 아니면 치미는 의심을 누르고 있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미뉴에가 말했다.

'주군! 제 말을 들어 주소서! 지금 우린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던 바로 그 위험에 맞부딪쳤습니다. 우리는 승리를 거두려 출정했는데 결국 갈라진 혓바닥에 꿀을 바른 저 더러운 사기꾼에게 현혹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덫에 걸린 늑대는 할 수만 있다면 사냥개들에게도 능히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진정 그가 우리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가 바라는 것이라곤 곤경에서 탈출하는 것뿐이올시다. 그러함에도 주군께선 배신과 살해에 능숙한 이자와 화평을 교섭하시렵니까? 관악을에 묻혀버린 김희철 의원과 중랑을에 있는 김덕규의 무덤을 기억하십시오!'

'독이 묻은 혓바닥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네 혓바닥에 대해선 뭐라고 해야 할까, 어린 독사여? '

하고 말하는 유시민의 눈에는 분노의 빛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그는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 회의적 주어론자 미뉴에! 모든 이에겐 자기 직분이 있는 법이오. 논전에서의 활약이 당신의 직분이고 또 당신은 그로 해서 높은 명예를 얻는 것이오. 토론 게시판에서 악플러들을 징계하는 일에 만족하시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에는 관여하지 마시오. 그러나 당신이 직접 정치에 관여한다면 아마 친구들을 주의해서 선택해야 함을 알아야 할 거요. 유시민의 우정과 국참당의 힘은 그 이면에 이러저러한 불만거리가 있을지라도 가벼이 내던질 수 없는 것이오. 당신은 하나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아니오. 그것도 다시는 기대할 수 없는 도움을 받아서야 겨우 가능했던 것이오. 저 주사파의 추종자들이 다음 번엔 당신을 덮칠 것이오. 그들은 변덕스럽고 분별이 없으며 또 인간들에 대한 동정심도 갖고 있지 않단 말이오. 그리고 안랩의 대표시여, 갚을 수 없는 빚을 갚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사기꾼으로 불려야 하겠소? 정치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니 말이오 –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법은 있는 법이오. 그러나 만일 그 때문에 내가 사기꾼이라면 민주당 전체가 사기의 전과로 얼룩져 있는 셈이 아니오? 왜냐하면 김대중 이래 그들은 많은 선거를 치렀고 그들에게 주어진 빚을 떠넘겼기 때문이오. 그렇지만 그들은 후에 말로라도 대충 때웠으며 또한 그 정책적 배려가 나쁜 것은 아니었소. 안철수 후보여, 말씀드리건대 우리, 당신과 내가 평화와 우정을 나누는 게 어떻겠소? 결정권을 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이오.'

'난 평화를 갖겠소.'

안철수가 마침내 탁한 목소리로 애써 말했다. 여러 논객들이 환성을 올렸다. 안철수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후보는 이번에는 더 또렷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렇소. 우린 평화를 갖겠소. 당신과 당신의 모든 공작이 그리고 당신의 사악한 지배자 - 당신이 우릴 넘겨버리려 하는 - 가 획책하는 모든 수단이 괴멸될 때 평화를 가질 것이오.  당신은 거짓말쟁이요, 유시민.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타락시키는 자요. 당신이 내미는 손은 내겐 단지 새누리당의 마수로 보일 뿐이오. 잔인하고 냉혹한 마수! 비록 나에 대한 당신의 전쟁이 정당한 것이었다 해도 - 물론 그건 정당하지 못했소. 왜냐하면 열 배만 현명했다면 당신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와 내 백성을 지배할 권리를 가지려 하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오 -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칠보시 읊으며 뺏어다가 적에게 떠넘긴 김해을과 성폭행 사건당시 조개줍기 발언에 대해선 뭐라고 하겠소? 그리고 당신의 졸개들은 관악을 지역구에서 이미 공심에서 탈락한 김덕규를 조롱했소. 당신의 까마귀들이 즐거워하도록 당신의 목이 그 창가 교수대에 걸릴 때 난 당신 그리고 국참당과 평화를 맺겠소. 대선후보로선 이쯤 해두겠소. 난 위대한 선배들의 불민한 자손일 뿐이지만 당신의 손가락을 핥을 필요는 없소. 다른 곳에 도움을 구해 보시오. 당신의 목소리는 이미 마력을 상실한 것 같소.'

논객들은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난 사람들처럼 안철수 후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주군의 목소리는 유시민의 음악 같은 소리에 대비되어 그들 귀에는 늙은 갈가마귀의 소라처럼 껄끄럽게 들렸다. 그러나 유시민은 - 한동안 분개로 제정신을 잃었다. 그는 마치 지팡이로 후보를 내리치려는 것처럼 난간 위로 몸을 굽혔다. 논객들에게는 뱀이 공격하기 위해 또아리를 트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가 쉿쉿거리며 말하기 시작하자 논객들은 그의 끔찍한 변모에 몸을 떨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