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하지 말자


1. 우선 동의할 것은 동의하자.

산하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또 방송국의 상업성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다시한번 느꼈다. 그리고 루저녀에 대하여 이전에 있었던 노정태님과의 토론에 있어서 몇가지 분명히 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나는 노정태님의 결론과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뿐만 아니라 이문제로 과도한 공격을 퍼붓는 행동이 결코 정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몇몇 행위는 불법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론 부분이며 문제는 그 이전에 존재한다.

2. 그리고 나눌 것은 나누자.

<루저녀 사태>의 본질은 몇 가지로 나누어서 보아야 한다. 우선 이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산하님이 지적했다시피 방송국에서 져야 한다. 그들은 애초에 '어느 정도' 논란이 일어나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럴 만한 단어를 선택했으며, 출연자가 이견이 없으면 좀더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여 선정성을 부각하기를 원했다. "루저"라는 단어는 아마도 그렇게 탄생했을 것이다. 방송국은 사과문을 두 번 발표하면서 처음 사과문에서는 사태의 책임을 출연자에게 돌렸고 두번 째 사과문에서는 그나마 프로그램을 비판하라는 발언은 했지만 "루저"라는 것이 확실히 대본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하며 사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논란의 핵심은 "루저"라는 단어다. 그 단어의 책임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미수다"는 이부분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나 출연자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우리 사회의 속물적인 현상을 스스로 내재화하여 자신의 가치관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한국사회가 속물화 되었다고 하여도 그것을 반드시 자신의 내적인 가치관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물론 넓게 보면 그녀 역시 피해자다. 한국사회의 속물적 경향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 모두 어느정도는 이런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 비판없이 이런 현상-노정태식으로 말하자면 한국사회의 더러운 화법-을 내재화한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단, 그것이 그녀 혼자만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 한국사회의 과반수 정도가 이런 가치관을 지니고 있을 것이며, 한국 여성의 과반수 이상이 자신보다는 능력있는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방송에서 자극적인 단어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그녀가 이같은 속물현상의 대표자가 되어 욕을 얻어 먹는 것은 지나치다.

그녀가 빌미를 제공했다고 하여 지금까지 축적된 분노게이지를 그녀를 향해 쏟아붓는 남성들은 타겟을 잘못 정했다. 어쩌면 그동안 억압받았던 짜증과 스트레스가 물길을 만난 것일 수도 있는데, 그 물길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차라리 방송국을 욕한다면 이해가 간다만 어찌 그녀가 모든 '된장녀'의 대표가 되어야 하나? 물론 남성들이 소위 여성들의 피상적 가치관에 의하여 외모와 스펙 모두 갖추어야 결혼시장에서 양질의 상품으로 취급받는 다는  것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거,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건 산하님 말마따나 여자도 마찬가지다. 특히 외모로 인한 스트레스는 남성보다도 한참 더 심하다는 거, 남성들도 깔끔하게 인정하자.

3. 그렇다고 해도 노정태식 화법은 문제를 키울 뿐이다.

마침 며칠전부터 고재열기자의 독설닷컴에서 고재열기자의 언어적 성폭력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이 논란에서 한 블러거가 자신의 글에대하여 답변을 하고 있는 리플 중에 이 문제의 본질이 있기에 대로 가져와 본다.

< 여성들이 젠더불평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한국 남성들은 군대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여성들에게 투사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왜 굳이 여성에게 투사하는가, 그것은 아시겠지요.) 가끔은 군대 문제로 논란이 벌어지는 걸 지켜보다 보면 왜 따져물어야 할 실제 당사자는 우아하게 가만히 있고 피해자들끼리 뒤엉켜 말싸움을 해야 할까 서글퍼질 때가 많습니다. 이번의 미수다-루저 논란 역시도 핵심은 계급문제이건만 엉뚱하게 남녀대결의 문제로 번져 버렸지요. 이것은 자본주의가 의도하는 바이기도 한 것 아닐까, 이것에 대한 논리적인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했습니다.>
                        - from 내안의 여신을 깨워라. 강조표시는 코지토.

많은 이들이 노정태님은 이도경을 변호하지 않았다, 다만 사회적 문제라고 지적했을 뿐인데 왜 그녀를 변호했다고 이야기 하느냐고 묻는다. 솔직히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노정태님은 남성들이 이 문제로 과도하게 열폭하는 것이야 말로 루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말해 그녀를 과도하게 공격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주장이 그녀를 변호하거나 방어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리고 몇번이나 말하지만 난 이 부분에 동의한다. 반드시 그녀에게 주어지는 정도 이상의 공격은 방어 되어야 하고 그녀는 자신의 책임이상의 비난을 받아서는 안된다. 설마 노정태님의 글에 동의하는 분들 중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분이 있을까? 없으리라고 믿겠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논리전개 방식이다.

그는 "남자들도 여자들 보다 더  심하게 외모평가 하잖아! 너네들이 여성들의 고통을 알아? 똑바로 해 이거뜨라!"라는 식으로 문제를 덮어 버린다. 

다시말해 '한국사회의 더러운 화법"이 마치 남성들의 책임인 양, 혹은 여성들은 더 많은 고통을 받았으므로 그 책임에서 자유롭다는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동안 한국사회의 지나친 외모 지상주의에 상처를 받아온 많은 여성들은 박수를 칠 것이다. 그 박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박수는 노정태님이 내린 '정치적으로 올바른' 결론에 대한 박수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워낙에 가려웠던 부분을 긁어 주는 지라 이 글에 담긴 함의와 잘못된 논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접근은 아니다. 핵심은 계급문제인데 엉뚱하게 남녀 대결의 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글이기 때문이다.

노정태님의 글이 남녀 대결구조를 만드는 글이 아니라고? 어디가 그런 부분인지 모르겠다고?

기본적으로 노정태의 글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고통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 오버떨지 말라며 당신들에게 들이밀어진 그 '폭력적 평가'가 부당하다고 느껴진다면 인간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현실 자체에 문제의식을 느끼라고 점잖게 충고한다.

되풀이해서 이야기하지만 인간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남녀차별이 아니라 자본주의다. 물론 여성은 남성보다 더욱 약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품화의 책임을 남성에게 돌릴 수는 없으며 그로 인한 고통이 여성보다 남성들에게 덜 심하다고 말할 근거도 없다. 여성들은 여성들 대로 외모+스펙의 압박을 받지만 남성들은 남성들 대로 외모+스펙의 압박을 받는다. 나는 100받는데, 너는 70받는 거야. 그러니까 니가 더 정신차려! 이런 식의 논리가 가당하냐고 묻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정태는 사실적 근거도 다소 이상한 것을 가져온다. 상품화에 대한 문화적 판타지는 여성에 의해 더 소비되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못생긴 남성을 사랑해 주는 이상적 여성캐릭터가 나오는 드라마보다 재벌집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보통 여성의 드라마가 훨씬 더 많이 생산되는 것을 굳이 알려주어야 하나? 그러나 그는 남성들이 이런 컨텐츠로 지속적인 위로를 받는 양 말한다. 그게 무슨 논거가 되나?

그의 주장은 한번만 뒤집으면 그대로 그대로 여성에게 통용될 만큼 유치하다. 남성이 외모로 받는 고통은 여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그럼 여성이 스펙으로 받는 고통은 남성이 스펙으로 인하여 받는 고통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말로 돌려주면 될까?

논거가 부족하며 논리가 안되는 주장으로 고통받던 여성들을 선동하여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자는 말이다.

니가 더 피해자니, 내가 더 피해자니, 따져서 어쩌자는 것인가? 그게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할까?

그리고는 결론으로 점잖게 한 마디 하신다. 당신에게 들이댄 잣대가 억울하다면 인간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아라.

 그러니까, 지금까지 여성들이 고통받고 괴로워 한 것은 그 잣대를 내재화 했기 때문인데, 여성들은 왜 그 잣대를 문제삼지 않냐고 물어야 하지 않나? 여성들은 피해자이므로 그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인 걸까?

논리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해가 가지 않으신다고? 다시 논리전개를 설명해 주어야 할까?

 A. 여성들은 이 사회의 평가 잣대로 인하여 엄청나게 고통받는다
 B. 남성들은 훨씬 덜 고통 받는다
 C. 그러데 이번에 한번 "제대로" 평가받으니 괴롭지? 
 D. 그럼 열폭하지 말고 인간을 그런식으로 평가하는 잣대에 대해 생각해 봐라 이거뜨라!

아니......... 그럼 여성들은 왜 그 잣대을 스스로 내재화 한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아도 되냐고? 애초에 전제 A가 이상해져 버린다는 말이다.
이렇게 이상하게 논리를 전개해 놓고,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면서 갑자기 정답D를 가져오는 것이 어떻게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겠냐고 묻고 싶다는 말이다. 그런식이면 헌재의 판결도 뭐가 문제인가? 과정에 문제가 있지만, 결과는 유효하다?

좋은 글재주를 왜 이런 식으로 낭비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글이 잘 팔리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