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드림랜드 앞에서 꽤재재한 남매 둘이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면을 마주했던 것이 말이죠. 온통 검은 톤의 옷들과, 안 싰은 얼굴, 떡진 머리를 하구선 말이죠... 언제나 다름 없이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던 저는 그 거리와, 5월의 햇살과, 그리고 어린이 날과 어울리지 않던 그 두 남매에 사로잡혔죠. 아마, 드림랜드와 그리 멀지 않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일지도 모르는 상월곡동에서 온 아이들이라고 생각을 했던듯 하구요. 왜 그 남매는 그렇게 꽤재재한 얼굴을 하고 그곳에 있었던 것인지... 어린이 날에 부모들과 나들이도 못가고, 자신들이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있는지 얘기를 나누던... 아마 제가 어릴적 신당동 달동네에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하... 그 검정 고무신. 배종욱의 첫 환상이 나오는 그 장면에서, 그렇게도 찬란하게 빛을 바라던 그 검정 고무신. 그 검정 고무신에 빠져 드는 순간, 그것은 곧 나로 하여금 어떤 환상이리라는 직감을 하게 만들고... 곧이어, 허공을 향한 배종욱의 외마디와 반향되는 그이의 목소리... 그녀가 신고 있는 검정 구두...

 

주체의 분열, 혹은 퇴행. 아마 죽음을 앞둔 그녀가 그 모든 것을 떠나보내기 위한 하나의 제의와 같은 것으로서의 분열 혹은 퇴행. 잃어가는 것들을 떠나보내기 위한... 너무 늦게 찾아온 과거의 기억들... 잊혀진 기억들... 아마 그이는 어미의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선물인 죽음을 순응하는 것으로, 그 모든 아픔들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 그 아픔의 치유는 곧 그녀의 죽음. 이것이 죽음 충동이다. 죽음의 순간, 모든 빚은 변제되리라... 죽음조차도 갚을 수 없는 빚,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는 빚, 그러한 죽음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또 얼마나 슬프게 하는가...

 

허나 아직은 아니다. 먼저 그녀의 아픈 기억들은 무대위에서 상연되어야한다. 그것은 어딘가에서건, 보여져야하고, 이야기되어져야 한다. 그 무대는 정신분석가의 쇼파일 수 있다. 우리네 싯김굿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인형극이 그러한 것이고, 가면놀이가 그러한 것이며, 마당놀이가 그러한 것이다. 우리는 이 무대 상연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을 애도하며 떠나보내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기 위해... 세상이라는 이 무대에, 주연이건, 조연이건, 단역이건... 이 무대에 서야만 하는 것이다. 이 무대를 스스로, 강제로 퇴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살이다.

 

그러나, 말해 질 수 없는 것은 말해 질 수 없는 것. 무대에 올려지지 않는 것은 무대에 올려지지 않는 것. 아마 그녀는 그녀의 어미의 죽음만은 가슴에 안은 체로, 그녀의 운명을 마지할지도 모르리라...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가? 흔하디 흔한 사랑... 그것은 바로 "내가 갖지 않은 것을 주는 것"을 통해서이다. 그렇게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전이-사랑은, 배종옥을 앞에둔 정신분석의가, 그가 줄 수 없는 것, 그가 가지지 않은 것을 주는 것이다. 다시  자기 자신인 그 더러운 아이들을 만나거든,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았느냐고... 그것은 바로 배종옥이 그 정신분석의에게 했던 말... 즉, 그녀가 그에게 했던 말을 되돌려주는 행위 속에 전이-사랑은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난을 당하고도, 자신을 또 질책하는, 새디스트인 초자아의 목소리를 달래가며, 불쌍한 우리 자신들을 어루만져야 한다.

 

그리고, 이제 사랑이란 것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