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정규직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개요

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고용시장에는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일부 그런 형태가 있긴 했는데, 건설 일용직이나 상점의 아르바이트처럼 극히 제한된 직종에서만 허용되는 수준이었고, 지금처럼 전 직종에 걸쳐 체계화된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일반 회사의 노동자는 모두 정규직을 의미했으며,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정년까지 일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노사문화는 좌우로 나뉘어 전쟁까지 치른 나라에 어울리지 않게 인간적인 측면이 강했습니다. 그런 문화가 식민지시대 일본 기업들의 평생 직장 개념을 배워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상하간에 의리를 강조하는 유교의 영향이었는지, 혹은 북한이라는 사회주의국가와 직접 대치하는 상황에서 서민층의 불만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치적 배려가 원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런 여러가지들이 영향을 미쳤겠지요.

암튼, 비정규직 개념이 도입되기전 한국의 직장들은 대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면 사장은 직원들을 해고하기보다 자신의 집을 팔아서라도 월급을 주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직원들은 그런 사장의 아름다운(?) 모습에 월급 자진 삭감으로 화답하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다 월급이 한달 두달 밀리면 사장은 직원들과 쏘주 한잔 하면서 괴로워하고, 직원들은 더욱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살리겠노라 다짐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장은 악덕기업주로 불렸고, 그렇지 못한 직원들은 배은망덕으로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화를 지탱해준 것은 과거 노동법의 역할이 컷습니다. 그때의 노동법은 지금 읽어봐도 감동적인 내용으로 가득했었지요. 전태일열사가 근로기준법만 준수하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모두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 말은 물론 당시의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너그러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되려 저임금에 기반한 경영 방식들이 80년대 중후반을 열병처럼 휩쓴 민주노조 운동을 불러왔으니까요. 단지 그런 저임금 구조속에서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지금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고, 노사간에 냉정한 계약서의 문구만 존재하는 그런 시절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던 한국의 노사문화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때문에 케인즈식의 수정자본주의가 급격히 힘을 잃고, 레이건과 대처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부터입니다. 선진국발 노동의 유연화 개념이 서서히 자본주의의 변방인 한국에도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것들은 80년대 민주화 분위기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그 열기가 어느 정도 잦아들고,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는 격변을 틈타 갑작스럽게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제 경험으로 그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최고의 직업으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은행의 청원경찰들이, 한순간에 설움받는 직업으로 변해버린 사건이었습니다. 다른 은행원들과 동급의 연봉과 각종 사내 복지를 누리던 사람들 대신,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대우를 받는 사람들로 교체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때에도 사람들은 기간제, 파견제 근로자라는 낯선 용어가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던 때였습니다. 단지 은행장이나 청와대 빽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다던 자리를, 어두운 표정의 젊은이들이 지키는 희안한 풍경을 속시원해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 이후, 몇년간의 호황이 끝나고 한국경제의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은 그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놀라운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노동자, 그래서 주면 주는대로 받는 노동자라는 개념은 그들에게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김영삼 정부를 압박하여 장애로 남아있던 노동법을 날치기 처리하여 바꾸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아서인지 민주노총과 국민들의 저항에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되지요. 그리고 얼마후 IMF가 찾아옵니다.

사실 지난 10여년간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였지만, 시장원리주의의 논리는 그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 어떤 사장도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짜르면서 미안해하지 않게 되었고, 문자메시지로 날아온 해고통지서에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는 항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좌빨의 헛소리로 치부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분노한 비정규직의 저항에 대한 사회의 대답은 머리채잡아 끌어내는 경찰의 손과 몽둥이뿐이었습니다. 기대를 걸었던 참여정부마저 브레이크보다는 악셀레이터를 밟기 바빴고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해결해주리라 기대할 수 없는 체념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히려 경기부양으로 너희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약속하는 이명박에게 기대를 거는 지경에 이르렀고, 지난 대선의 결과는 그것을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일 뿐입니다.

2.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사실 간단합니다. 정말 기적처럼 사용자들이 착해지거나, 비정규직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똘똘 뭉쳐 목숨건 총파업을 벌이거나, 537만명이 일사분란하게 계급투표를 하거나 이 세가지중의 한개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야 법이 바뀌든지 정치인들이 정신 번쩍 들든지 사회적 합의가 논의되든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온갖 대안과 주장들만 난무할 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의 유일한 정치세력인 민주당은 어설프게 급조한 비정규직 보호법 하나 달랑 던져준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 주제에 뒤늦게 개발에 땀내듯이 해결사를 자임하고 있을 뿐이구요. 그러나 수많은 비정규직들은 지난 10년간 그들이 한 짓을 너무나 잘 알기에, 지금도 그저 한나라당 딴지걸기가 그 목적일 것이라며 차가운 냉소를 보낼 뿐입니다.

때문에 우선 필요한 것은, 민주당 지도부가 지난 10여년간 비정규직 문제를 확산시킨 과거의 잘못을 솔직히 사과하고, 이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과 대책을 내놔야 합니다. 그럴 능력 없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다른 세력들에게 그 자리를 비켜주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나라 비정규직들도 이제는 정말로 계급 투표해야 합니다.  자기 발등에 불떨어졌는데 지역찾고 이념찾아 투표할 때, 뜨거운 것은 그저 제 발등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에 일사분란하게 투표하지 않으면, 정말로 이 문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나서지 않는 자들의 손에는 그 어떤 것도 쥐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쌀 씻지 않는 자에게 밥에 대해 백날 떠들어봐야 배고픔만 더 깊어질 뿐입니다.

그 모든게 안된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솔직하게 말해서, 없습니다. 그 어떤 대책도 백약이 무효일 것입니다. 추미애의 입만 쳐다보고, 정치인들 욕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자신이 가입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단돈 천원이라도 조합비를 내고, 그럴 여건이 안되면 비정규직 지원하는 시민단체에 후원금 천원이라도 내고, 그것도 여건이 안되면 하다 못해 인터넷에 댓글이라도 달아야 합니다.  솔직히 이 대명천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자신이 가입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무슨 동일임금과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바라는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투표장에서 우리가 남이가에 한방 찍어주는 주제에 무슨 꿈같은 희망을 늘어 놓을 자격이 있다는 건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그건 거지나 매 한가지일 뿐입니다.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비정규직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