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정집에선 세금 내고, 학원비 내고, 저축하고 빚 갚는데 빠듯하죠. 이러한 가정집의 예산을 관리하는 것은 어떤 가정주부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가정주부에게 첫째 아이가 수학학원에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둘째 아이는 미술학원에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남편은 용돈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지출에도 빠듯하기에 가정주부는 가족 구성원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상황의 경중을 따지며 요구를 들어주거나 혹은 거절할 수밖에 없지요. 이러한 조율과정은 쉬운 게 아닙니다.

예를 든 가정집에서 자원의 배분을 다투는 주체는 딸랑 세 명입니다. 하지만 국가로 확장시켜보면 훨씬 더 많은 수, 다양한 집단들이 자원의 배분을 놓고 다투게 됩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 가정주부의 역할은 꼭 필요합니다. 이 것이 정치이며, 정치는 주어진 자원을 다양한 이해집단에게 어떻게 배분할 지 결정하는 셈이 됩니다. 물론 정치에서 이것이 전부가 아니지만 정치판에서 갈등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바가 상당히 큽니다. 

이렇게 중요한 정치지만 현대 국가의 큰 사이즈 때문에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간접 민주주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하기에 현재 대부분의 민주주의국가에서는 대의제를 채택한 것이고 국민을 대변하는 가정주부 정치가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즉, 정치가들은 대중의 이익관계를 대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이렇게 중요한 자리이기에 국가에서 손꼽히는 엘리트들이 선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대중의 요구를 끊임없이 수용하며 제대로 된 소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소통은 과연 무엇일까요? 흔히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같은 일이 터지면 현장으로 출동하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훌륭한 일이고 현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큰힘이 되기도 합니다만 이 것으로만 그친다면 이것은 단순한 운동가입니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뽑힌 것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자원의 배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원이란 국가예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소유한 경찰력, 법같은 다양한 정치적 도구까지 포함하는 거죠. 

결론을 말하자면 정치인의 제대로 된 소통은 각각 이해집단의 요구에 경중을 구별하여 중요한 사안부터 자원을 배분, 즉 정책화하는 겁니다. 하지만 앞서 가정주부의 예만 보더라도 이해관계의 주체가 3명임에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정치인은 수천, 수만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정책화해야합니다. 이렇게 정책화하는 것은 어렵고 제대로 된 정책은 심도있는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대부분이죠. "처음에 정치 입문했을 땐 정당성이 90 대 10일 때 90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아니더라, 51 대 49일 때는 정말 고맙더라."고 말했던 어느 정치인의 말을 들으니 그 고충이 전해지더군요. 정치인의 소통은 이토록 어렵습니다.

저한테 박근혜는 관심없는 정치인이라서 무슨 행보를 하고 다니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쌍용차 노동자들 농성에 가서 눈물 흘린 것 놓고 소통 잘했다며 칭찬받는 집사틱한 양반, 소통/멘토의 대명사라 불리는 양반이 사이트 하나 열어놓고 "한달동안 니들이 떠들어 봐라, 거기서 취사선택해서 정책화하겠다." 하는 꼬라지 보니까 웃음만이 나옵니다. 이 것이 제가 그들을 비판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