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lary Rose & Steven Rose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무시한다고 비판한다.

 

우리 종의 유아기인 약 10만 년 전에서 60만 년 전 사이 동안에 최종적 진화적 형태를 갖춘 인간 본성의 보편적 특성들의 기초 위에서 인간 행동의 모든 측면, 따라서 문화와 사회를 설명할 수 있다고 진화 심리학은 주장한다. 따라서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홍적세 동안 진화했으며 그 주창자들이인간 마음의 구조(architecture)’라고 기술하는 것은 고정되어 있으며 그 이후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겪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이 구조에서 어떤 주요한 수선도, 확장도, 개장(refurbishment, 改裝), 선사 시대 이후의 미시적이거나 거시적인 맥락적 변화(contextual change, 역사적 변화)가 진화적 적응을 수반했음을 암시하는 어떤 것도 없었다. 가축화된 동물들—소, , 심지어 다윈이 좋아했던 비둘기—이 단 몇 세대 만에 인간의 인위 선택에 의해 크게 변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런 주장의 극단적인 성격을 숙고해 볼 가치가 있다. 실제로, 다윈이 예로 들었던 갈라파고스 군도의 되새(finch)의 경우, Grant 부부가 수십 년 동안 연구한 바에 따르면 기후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새의 부리와 먹는 습관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기에는 [인위 선택의] 도움을 받지 않은 자연 선택만으로도 충분했다. 새와 짐승이 된다면 왜 인간은 안 되는가?

It claims to explain all aspects of human behaviour, and thence culture and society, on the basis of universal features of human nature that found their final evolutionary form during the infancy of our species some 100-600,000 years ago. Thus, for EP, what its protagonists describe as the ‘architecture of the human mind’ which evolved during the Pleistocene is fixed, and insufficient time has elapsed for any significant subsequent change. In this architecture there have been no major repairs, no extensions, no refurbishments, indeed nothing to suggest that micro or macro contextual changes since prehistory have been accompanied by evolutionary adaptation. The extreme nature of this claim, granted the huge changes produced by artificial selection by humans among domesticated animals – cattle, dogs and even Darwin’s own favourites, pigeons – in only a few generations, is worth pondering. Indeed, unaided natural selection amongst the finches in Darwin’s own islands, the Galapagos, studied over several decades by the Grants is enough to produce significant changes in the birds’ beaks and feeding habits in response to climate change. If for birds and beasts, why not humans?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1~2)

 

 

 

진화 심리학자들이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30년을 한 세대라고 보면 1만 년은 300 세대 정도 밖에 안 된다. 진화에서는 절대적 시간보다 세대 수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300 세대는 복잡한 구조가 새로 진화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짧은 기간으로 보인다.

 

진화의 양상은 다양하다. 복잡한 구조가 새로 진화하는 것은 그런 양상들 중 하나일 뿐이다. 복잡한 구조가 퇴화할 수도 있다. 예컨대 깊은 동굴에서 진화해서 빛을 볼 일이 거의 없는 동물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눈이 있다가도 세대가 거듭될수록 퇴화하기 마련이다. 눈에 들어가는 자원을 아끼는 것이 적응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포유류의 눈처럼 고도로 복잡한 구조가 새로 생기도록 진화하는 시간에 비하면 훨씬 짧은 시간 동안에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퇴화할 수 있다. 이것은 정밀한 시계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망가뜨리는 것은 금방인 것과 같은 이치다.

 

복잡한 구조는 거의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크기가 변할 수도 있다. 기본적인 신체 구조는 그대로이지만 키나 팔다리의 비율 등이 변할 수 있다. 이런 진화는 상대적으로 훨씬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가끔 조심성 없이 표현하는 것은 사실이다. 몇몇 구절만 떼어 놓고 보면 진화 심리학자들이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진화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와 같은 표현도 문제가 있다. “별로”가 어느 정도를 뜻하는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런 애매한 표현을 쓰는 것보다는 각 사례마다 실증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300세대에 불과하더라도 강력한 선택압이 있다면 상당히 인상 깊은 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성인의 젖 소화 능력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인간 개체군마다 상당히 다르게 진화했다.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력과 관련 있는 낫모양 적혈구(sickle cell)의 경우도 지난 수천 년 동안 인간 개체군마다 상당히 다르게 진화했다.

 

 

 

그렇게, UNESCO [선언문]에도 불구하고 생물학 결정론적 생각들은 살아남았다. 1960년대에 그것은 (이전에 나치였던 행태학자 Konrad Lorenz나 미국 과학 작가 Robert Ardrey의 저술과 같이) 인간 공격성이 진화적으로 결정된 선천성임을 강조하는 통속 행태학(pop-ethology) 책들의 형태를 취했다. 흑인/백인 사이에 지능의 인종적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미국에서는 Arthur Jensen, 영국에서는 Hans Eysenck의 저술과 함께 1969년에 재등장했다. 이는 1990년대에 나온 Richard Herrnstein Charles Murray의 『The Bell Curve』의 전조였다.

Thus, despite UNESCO, biologically determinist ideas lived on. During the 1960s they took the form of pop-ethology books stressing the evolutionarily determined innateness of human aggression (as in the writings of the ex-Nazi ethologist Konrad Lorenz or the American science writer Robert Ardrey). The claim of black/white racial differences in intelligence resurfaced in 1969 with the writings of Arthur Jensen in the USA and Hans Eysenck in the UK – forerunners of Richard Herrnstein and Charles Murray’s The Bell Curve in the 1990s.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6)

 

흑인과 백인 사이의 선천적 지능 차이를 연구한 지능 연구자들은 인종주의자로 몰려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차이가 진화했을 리가 없다고 믿는 듯하다.

 

인종이 정확히 언제 갈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 일치를 본 것 같지 않다. 인종이 갈라진 것이 5만 년 전이든, 10만 년 전이든, 20만 년 전이든 1만 년 보다는 훨씬 긴 기간이다. 만약 1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면 5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는 더더욱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각 인종의 키가 다르게 진화했듯이 지능도 다르게 진화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무시한다면서 진화 심리학을 성토하던 사람이 지난 수만 년 동안 지능과 관련해서는 인종 차이가 전혀 진화가 일어났다고 선험적으로 가정한다면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인종 간 선천적 지능 차이를 Jensen, Herrnstein, Murray 같은 학자들이 확실히 입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가설이 전혀 가망성 없는 엉터리 가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첫째,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1만 년의 진화를 무시해서 안 된다면 10만 년의 진화는 더더욱 무시해서는 안 된다.

 

둘째, 여전히 백인과 흑인 사이에는 IQ 점수나 과학자 비율 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선천적 지능 차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셋째, 아직 누구도 인종 간 선천적 지능 차이가 없음을 확실히 입증하지 못했다.

 

 

 

이덕하

2012-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