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가 여자보다 큰가?
 

사람들은 당연히 수컷이 암컷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은 적어도 포유류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이에나 같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종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더 크고 무겁다. 수컷이 원래 크다는 상식이 생긴 것은 아마 포유류를 관찰할 기회가 제일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어류의 경우에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암컷이 수컷보다 수천 배나 무거워서 처음에는 수컷이 암컷과는 다른 종의 기생 생물이라고 잘못 알려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류의 경우에는 암컷이 수컷보다 압도적으로 큰 사례가 꽤 있다고 한다. 파충류인 아나콘다도 암컷이 훨씬 크다. 이런 사실은 20세기 이전에는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암컷이 커서 유리한 점은 무엇인가? 명백한 이점이 있다. 암컷이 크면 더 많은 알이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반면 정자는 난자에 비해 터무니 없이 작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수컷은 아주 작아도 된다. 이것이 암컷이 수컷에 비해 수천 배나 무거운 종이 있는 이유일 것이다. 암컷끼리 영역이나 먹이를 두고 다툴 때에도 큰 쪽이 유리할 것이다. 또한 큰 암컷은 포식자에게 잡혀 먹힐 위험도 적을 것이다. 수컷이 커서 유리한 점은 무엇인가? 암컷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포식자에게 잡혀 먹힐 위험이 적다. 또한 수컷끼리 영역, 먹이, 암컷을 앞에 두고 경쟁을 벌였을 때 큰 쪽이 유리하다. 암컷과 수컷끼리 서로 싸울 때에도 큰 것이 유리하다.

 

큰 것이 작은 것보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기만 하다면 생물은 무한정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진화하지 않은 이유는 큰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원이 들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크게 발달하고 큰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어떤 종에서는 암컷이 크고 다른 종에서는 수컷이 큰가? George Williams가 들려준 그럴 듯한 설명을 소개해 보겠다. 암컷을 두고 수컷끼리 힘겨루기 경쟁을 벌이는 종에서는 수컷이 암컷보다 큰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반면 그런 경쟁을 벌일 일이 없는 종에서는 암컷이 수컷보다 큰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물론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단순화해서 생각한다면, 수컷끼리 싸울 일이 없는 종에서는 정자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정도만 크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종의 암수의 크기 차이가 이런 패턴을 보이는 것 같다.

 

같은 논리를 더 정교하게 전개해 보자. 수컷끼리 벌이는 경쟁이 치열할수록 수컷이 암컷에 비해 더 클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수컷 한 마리가 무리의 모든 암컷을 차지하는 하렘 체제의 경우 수컷끼리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짝짓기 체제를 보이는 바다 코끼리의 경우 암수의 크기 차이가 대단하다. 반면 일부일처제에 가까울수록 그 차이는 작아진다. 전형적인 일부일처제를 보이는 종의 경우에는 암수의 크기가 보통 같다.

 

유인원의 경우 일부일처제보다는 하렘 체제에 가까운 고릴라의 경우 암수의 차이가 크다. 반면 일부일처제에 상당히 가까운 인간의 경우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침팬지의 경우에는 암수의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다. 그 이유는 바다 코끼리와는 달리 으뜸 수컷(alpha male)이 무리의 암컷을 크게 독점하지는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침팬지 암컷은 사실상 무리의 모든 수컷들과 교미를 한다. 으뜸 수컷이 되면 단지 교미 빈도가 다른 수컷들에 비해 어느 정도 클 뿐이다.

 

 

 

 

 

키가 크면 유리한 점 – 인간의 경우
 

키가 크면 IQ가 높다고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Height_and_intelligence에 그와 관련된 문헌들이 소개되어 있다. 사회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키가 큰 사람이 소득이나 지위가 높다고 한다. 이 두 명제를 결합해 보면, 키가 큰 사람이 IQ가 높기 때문에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식의 설명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키 큰 사람을 선호한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키 큰 사람이 이득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의 경우 지난 100년 동안 평균 키가 훨씬 커졌다. 그리고 남한 사람이 북조선 사람에 비해 거의 10cm나 더 크다. 영양 상태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즉 더 잘 먹을수록 더 커지는 것 같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더 큰 사람일수록 더 잘 먹고 잘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격투기에서는 체급을 따진다. 보통 몸무게를 따지지만 간접적으로 키를 따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로 키가 클수록 싸움에 유리하다. 현대 사회에서도 시비가 붙을 때 결국 육탄전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다. 법도 경찰도 없던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육탄전이 지금보다 더 중요했을 것이다. 키가 크면 맹수와 싸울 때에도, 사냥을 할 때에도 유리할 것이다. 현대 도시 사회에서는 맹수와 싸울 일이 없었겠지만 우리 조상들은 사정이 달랐다.

 

 

 

 

 

키 조절 메커니즘이 진화했을까?
 

왜 키가 클수록 IQ가 높은가? 왜 잘 먹을수록 키가 큰가? 이런 현상을 설명해줄 수 있는 가설이 하나 있다. 그 가설에 따르면 자신의 유전자, 영양 자원, 어렸을 때 질병에 걸렸는지 여부 같은 상황들을 고려하여 얼마나 키가 클지를 결정하는 메커니즘이 인간에게 있다. 그 메커니즘은 상황이 좋을수록, 즉 genetic load(http://en.wikipedia.org/wiki/Genetic_load)가 없을수록, 영양 자원이 많을수록, 질병에 걸리지 않았을수록 더 키가 크도록 결정한다.

 

논의의 편의상 영양 상태 요인만 따져보겠다. 어렸을 때의 영양 상태와 키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즉 어렸을 때 잘 먹을수록 키가 더 크다. 위에서 소개한 적응 가설에 따르면 이것은 영양 상태를 파악해서 키 크기를 결정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메커니즘은 왜 영양 상태가 좋을 때 키가 작아지도록 하지 않고 커지도록 하는 것일까?

 

영양 섭취가 부족한 상태에서 키가 많이 커지도록 하는 전략을 취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큰 키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 때문에 예컨대 면역 체계에 충분히 투자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큰 키로 얻는 이득보다 잃는 손해가 더 클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에는 차라리 큰 키를 포기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다. 반면 먹을 것이 풍족한 상태에서는 큰 키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을 비롯하여 모든 방면에 투자할 자원이 충분하다.

 

영양 상태와 키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는 이유를 위에서처럼 적응 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 다른 설명 방식은 부산물 가설이다. 부산물 가설에 따르면 영양 상태에 따라 키 크기를 조절하는 어떤 메커니즘이 따로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것이 아니다. 그냥 여러 발달 메커니즘들이 서로 다른 영양 상태에서 작동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설 중 어느 쪽이 옳은지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나는 이런 것을 깊이 다룬 글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을 가리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다. 만약 잘 설계된 키 조절 메커니즘이 있다면 영양 상태에 맞는 최적화된 키로 발달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따라서 최적화 이론(optimization theory)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발달의 온갖 요인들을 과연 얼마나 그럴 듯하게 정량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 여자는 키 큰 남자에 집착하나?
 

남자도 아주 작은 여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여자가 키에 훨씬 더 집착하는 듯하다. 이것은 인류 보편적인 현상인 것 같다. 물론 남자보다 여자가 짝짓기 상대의 키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 정말 보편적인 현상인지 여부를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다.

 

위에서 더 큰 암컷이 더 많은 알과 새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차피 한 명만 낳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류의 경우와 매우 다르다. 만약 어떤 종의 어류가 평균적으로 5만 개의 알을 낳는다면 큰 암컷은 7만 개를 낳고 작은 암컷은 3만개를 낳는 식일 것이다. 인간의 경우 쌍둥이를 낳을 확률이 지극히 낳다. 침팬지의 경우에는 쌍둥이를 낳으면 보통 한 쪽은 죽는다. 이유식도 없어서 서너 살까지 젖을 먹여야 하며 항상 이동을 했던 사냥-채집 사회에서도 상황은 비슷했을 것이다. 인간은 한 명만 낳도록 설계되었으며 쌍둥이를 낳는 것은 무언가가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어쨌든 인간은 어차피 한 명만 낳기 때문에 어류와 비교해 보았을 때 큰 여자를 선호할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키가 크면 육탄전에 유리하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육탄전을 벌이는 쪽은 보통 남자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더 크고, 더 근육질이며, 더 공격적이다. 여자에게는 남자에 비해 육탄전을 벌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다. 긴 기간 동안 임신과 수유를 여자가 도맡아서 했기 때문에 여자가 병들거나 죽으면 어린 자식은 거의 죽었을 것이다. 반면 아버지가 육탄전을 벌이다가 병들거나 죽어도 어머니만 멀쩡하다면 자식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어쨌든 육탄전이 남자의 일이었기 때문에 큰 키가 여자에게는 그리 큰 이점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큰 키가 여자에게 그리 큰 이점이 되지 않는다면 남자의 입장에서는 키가 큰 여자에 크게 집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남자가 여자에 비해 짝짓기 상대의 키게 덜 집착하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여자가 남자에 비해 짝짓기 상대의 키게 크게 집착하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일단 여자가 키 큰 남자를 선호하도록 설계되면 그 자체가 선택압이 될 수 있다. 키가 큰 것 자체가 짝짓기에서 이점이 되는 것이다. 키가 큰 남자는 IQ가 높고, 싸움을 잘하는 것과 같은 이점에 더해서 여자들이 큰 키 자체를 좋아한다는 이점까지 누리는 것이다. 그러면 여자는 키 큰 남자를 더 선호하도록 설계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낳은 남자가 더 인기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큰 키에 대한 선호가 자연 선택이 거듭되면서 증폭될 수 있다.

 

만약 여자의 큰 키에 대한 집착이 자연 선택의 산물이라면 문화가 바뀌어도 그런 선호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육탄전을 별로 벌이지 않는다. 따라서 남자가 큰 키로 얻는 이득이 과거에 비해 줄었다. 하지만 이런 의식적 지식이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무의식적 남자 평가 메커니즘에 영향을 별로 끼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아내가 바람을 피울 때 피임약을 먹었다는 의식적 지식이 질투 메커니즘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적응은 그 적응이 진화한 환경을 반영한다. 환경 자체가 급격히 변한다고 곧바로 적응(즉 심리적 메커니즘)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어떤 사회에서 못 생긴 여자가 자손을 더 많이 본다고 해도 예쁜 여자에 대한 남자의 선호가 금방 바뀌지는 않는다. 남자의 선호가 진화했던 시기에는 예쁜 여자가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선호가 진화했을 것이다. 진화는 금방 일어나지 않는다.

 

 

 

 

 

왜 여자가 더 큰 부부가 거의 없나?
 

부부의 경우 여자가 남자보다 키가 큰 사례가 극히 드물다고 한다. 여자는 일반적으로 키가 큰 남자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키와 비교했을 때 더 커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키가 큰 여자는 상대적으로 더 큰 남자를 선호한다. 남자의 경우에는 키가 작은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그와는 어느 정도 모순되는 또 다른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남자는 자신보다 더 큰 여자를 꺼리는 것 같다. 이런 여러 현상들이 얼마나 보편적인 현상인지는 광범위한 인류학적 조사를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한 적응론적 설명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남자가 자신보다 작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는 현상은 더더욱 적응론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사자들도 자신의 키에 맞추어 상대를 고르려고 하지만, 보는 사람들도 남자에 비해 여자가 키가 크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평균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키가 크기 때문에 여자가 큰 커플이 낯설기 때문일까? 이런 식으로 설명하기에는 사람들이 느끼는 거부감이 너무 큰 것 같다.

 

 

 

 

 

문화적 설명
 

문화 결정론자들은 항상 아주 쉬운 설명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여자들이 키 큰 남자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런 문화권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키 큰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에 비해 여자가 상대의 키에 더 집착하는 이유는 해당 문화권에서 남자의 키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이런 현상이 인류 보편적이라면 문화 결정론자에게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생긴다. 왜 모든 문화권에서 남자의 키를 그렇게 중요시하나? 문화 결정론자들은 왜 처음에 큰 키는 선호하는 문화권이 생겼는지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우연이라면 키를 전혀 따지지 않는 문화권도 있고, 키가 작은 남자를 좋아하는 문화권도 있고, 키가 큰 남자를 좋아하는 문화권도 있어야 더 그럴 듯하지 않을까?

 

나는 문화권에 따라 남자의 키에 집착하는 정도가 똑 같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집착의 편차가 있는 것 같으며 이것은 각 문화권의 독특한 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모든 문화권에서 대체로 여자가 남자에 비해 상대의 키에 더 집착한다면 그것 역시 설명해야 한다. 이런 거대한 보편적인 패턴을 무시하고 작은 편차에 집착하는 것은 큰 그림을 놓치는 것이다.

 

 

 

 

 

정치적 함의
 

이런 진화 심리학적 설명을 제시하면 항상 듣게 되는 반론이 있다. 이런 설명이 키 작은 남자를 무시하는 경향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냐는 반론이다. 이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에게 설명과 정당화는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아무리 지적해도 별 소용이 없는 듯하다. 그들은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따라서 만약 여자가 키 큰 남자를 좋아하도록 설계되었다면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식의 논리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웃기는 얘기다. 물론 신의 섭리도 똑 같이 웃기는 얘기다. 세상에는 인간을 위해 애써 주는 선한 신 따위는 없다. 그냥 무지막지하게 작동하는 자연 선택의 논리가 있을 뿐이다. 물론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도 무지막지하게 작동한다는 점에서는 똑 같다.

 

또한 그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유독 진화론적 설명에만 그런 식으로 반론을 제기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쥐어짜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정당화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페미니스트들이 그런 지배를 정당화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런데 왜 진화 심리학자가 설명할 때만 그 난리인가? 여기서 마르크스와 페미니스트들의 설명이 옳은지 여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왜 그들의 설명은 그냥 설명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진화 심리학자의 설명은 정당화라고 생각하나?

 

만약 여자가 남자의 키에 상당히 집착하도록 설계된 것이 사실이라면? 미국 대통령 후보 중에 키가 큰 쪽이 당선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한다. 만약 사람들이 “혹시 내가 정책은 별로 안 따지고 진화한 메커니즘 때문에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키가 큰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줄 안다면 이런 사태가 조금은 바뀔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이 Richard Dawkins가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반란”이라는 말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였던 것 같다. 적을 알아야 반란이라도 일으킬 것 아닌가?

 

만약 인간이 상대의 키를 보고 무턱대고 좋아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밝혀진다면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우스꽝스러운 대안을 제시해 보자면, 신입 사원 면접에서 지원자의 키를 알아볼 수 없도록 하고 면접을 보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세상에 신은 없다. 인간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자연 선택을 비롯한 온갖 진화 메커니즘의 산물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부족한 인간이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하는 사회를 꿈꾸어야 한다. 사악한 면이 전혀 없도록 누군가 인간 진화를 돌봐 주었다는 착각 속에서 산다면 진보에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악의 기원을 정확히 파헤칠 때 그 악을 극복할 수 있다.

 

 

 

2009-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