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런 경향이 없진 않지만 개식용반대운동은 명백하게 문화 사대주의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똥개, 잘 쳐줘야 애완견에 불과한 개와 '반려'한다는 개념은 우리에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진 서구에선 개와 친구를 맺고 개에게 적지 않는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삶을 함께 꾸려갑니다. 사는 것이 각박해지면서 개만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정서적으로 개에게 의존하는 부분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개에게 정서적 의존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각박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저발전)에서는, 서구의 개에 대한 그런 생각에 이질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서구가 발전된 사회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의 반려견 문화를 가져온 우리의 얼리 어답터들은 일단 저런 관점에서 개식용반대운동을 펼쳤습니다. 남들 보기 부끄러운 야만 문화를 없애고 어서 빨리 서구처럼 문명국가가 되자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니, 맛있게 개를 먹던 다수 국민들은 빡이 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개식용반대운동의 시작은 대체로 그러했으나 지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인가, 동물은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는가 와 같은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생명권의 주체를 확장시키려는 아이디어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천부인권을 주장하는 것,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다와 같은 명제 등을 제하고 나면, 왜 인간에게만 권리가 부여되어야 하는지 명증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인간과 비인간을 비교하는 작업을 하면서, 인간의 특징과 '생명권'의 관련성을 따져보면, 감정을 느끼고, 고통을 표현하며, 생과 사를 인식하는 등의 특징을 인간과 비인간 중 동물이 공유한다고 합니다. 인간과 비인간의 구별이 아니라 동물(인간을 포함)과 식물, 그리고 무생물의 구별이 생명권 부여의 관점에서는 적합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급진적인) 인권 운동가들은 그러한 관점에서, 생명권을 보호하자는 운동을 시작함에 있어 전략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개' 문제를 이슈화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이 중하다는 명제 때문에 개, 소, 돼지, 양 등을 오늘 당장부터 모두 잡아 죽이지 말고 먹지도 말자는 운동방식은 아무짝에도 소용없고 무의미한 방식이기 때문에, 식용으로 쓰이는 빈도가 줄고 있고, 그에 반해 애완동물, 반려동물로 기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개를 타케팅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 선다면 개식용반대운동을 충분히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를 먹는 동시에 기르고 있지만(기르는 개를 먹는 건 아닙니다) 저런 생각을 바탕에 깔고 펼치는 운동이라면 그들의 생명논리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고 하니깐요.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개 관련해서 형벌까지 부과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가끔 개와 인간의 비교형량에서 개가 우위에 선 것 같은 느낌도 들곤 해서 아리까리할 때도 있지만 이제는 개식용금지에 대한 반대론자들도 다른 논리를 개발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내가 먹고 싶은 건 내 맘대로 다 먹을 것이야라는 논리, 개식용은 우리 고유의 문화라는 논리 이상의 것이 나온다면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