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일본전후정치사>를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일본 역사에 대해 무지한데도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더군요. 역자인 박정진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한 '손쉬운' 입문서는 아닐지 모르겠다'고 하고 있지만, 이 정도면 상당히 이해하기 쉽게 쓴 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간략하게 책 소개를 하자면 말 그대로 2차 세계 대전 이후에서 고이즈미 정권까지, 약 60년에 걸친 일본의 정치사를 다룬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저자인 이시카와 마스미는 오랫동안 <아사히신문>의 정치부 기자로 활동한 인물로 스스로 전후 일본 정치를 논하기보다는 기록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밝힌 만큼 어떤 관점에 치우치지 않고, 비교적 정확하게 사실을 기록했다는 느낌을 줍니다. 다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1996년부터 고이즈미 정권까지 약 10년에 해당하는 부분은 이시카와 마스미의 건강상 문제로 훗카이도대학의 야마구치 지로 교수가 보완했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이시카와 마스미가 쓴 부분에 비해서 힘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재미있고, 한번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그럼 간략하게 책의 내용에 대해 조금 다뤄보겠습니다.


1. 총사령부를 보는 시각

 1947년 초, 공공 부문 노조로 이루어진 '전관공청노조확대공동투쟁위원회'는 400만 명이 참가하는 엄청난 규모의 총파업(2.1 총파업)을 단행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총파업은 좌절되고 맙니다.

…파업 단행 직전인 1월 31일 오후, 맥아더는 이 계획의 중지를 명령했다. 총파업은 교통과 통신을 마비시키고, 국민을 기아 상태로 만들 것임은 물론, 전력과 가스의 원료인 석탄의 이동을 곤란하게 할 것이며, 간신히 조업이 유지되고 있는 산업마저 중단시키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점령군은 해방군으로서 노동자 편이기 때문에 파업을 금지할 리가 없다고 믿고 있던 공산당이나 노조 간부들에게 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이 의장은 이 날 밤 총사령부의 강제에 따라 파업 중지를 알리는 라디오 방송을 했다. 

                                                                                                                      -이시카와 마스미, <일본전후정치사> 65p 중에서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공산당이나 노조 간부들이 점령군을 노동자의 편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인데요. 그들이 이러한 생각을 했던 것은 총사령부가 일본 내에서 취했던 일련의 개혁 때문인 걸로 생각됩니다. 예컨대 총사령부는 <치안유지법>을 비롯한 사상, 집회,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률들을 철폐하고 직업군인이나 군국주의자들을 공직에서 추방하는 등의 개혁 조치를 취했습니다.

인권지령이라고 불린 이 명령에 따라, <치안유지법>을 비롯한 '사상, 신앙, 집회, 언론의 자유에 대한 통제를 확립·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15개 법률과 관계 법령이 폐지되었다. 또한 특별 고등경찰 등 사상경찰이나 내무성 경보국 등의 기관도 폐지되었다. 그리고 내무상, 내무성 경보국장, 경시총감, 오사카 부 경찰국장, 도부현의 각 경찰국장, 대도시의 경찰부장, 도도부현의 각 경찰부 소속 특수경찰 등 약 4.000명이 파면 및 해고되었다. 그리고 10월 10일 이후로 2,465명의 정치범, 사상범이 석방되었다.

                                                                                                                      -이시카와 마스미, <일본전후정치사> 37p 중에서

 그렇다면 일본 국민들은 총사령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맥아더가 일본을 떠나던 날의 모습을 보면 일본 국민들의 생각을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16일, 미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하네다 공항으로 향하는 맥아더를 환송하기 위해 가두에는 20만 명이 넘는 일본인이 운집해 작별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중·참 양원은 맥아더에 대한 감사의 결의를 가결했다.

                                                                                                                      -이시카와 마스미, <일본전후정치사> 87p 중에서

 이처럼 일본 국민들도 총사령부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인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사실 일본 국민들이 보여준 이런 반응은 그렇게 놀랍지는 않은데요. 당장 우리나라만 봐도 아직까지 맥아더는 신성시되는 면이 있으니까요. 다만 공산당이나 노조 간부들이 총사령부를 아주 긍정적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한번 깊게 파고들면 더욱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2. 사회당의 '패배' 선언

사회당은 1958년 총선과 1963년 총선에서 '패배' 선언을 하는데요. 이 책의 저자인 이시카와 마스미는 이 선거에서 사회당의 패배선언을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를 세워두고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패배라고 선언했다는 것이지요. 1958년 총선 당시 사회당은 과반수 의석 획득을 목표로 삼고 총선에 임했고, 총선 후에 패배선언을 했는데 이에 대해서 이시카와 마스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사회당도 과반수를 획득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며, 다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이러한 슬로건을 내걸었을 것이다. 후보자도 246명밖에 내세우지 않았다. 이 가운데 과반수인 234명을 당선시키려면, 당선율은 95%에 육박해야 한다. 사회당의 실적으로 미루어 볼 때,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불가능한 것이었다.그러나 시각을 득표 쪽으로 돌리면, 지난 선거에서 득표수는 162만 표가 늘어 이전 선거 대비 17.8%가 증가했다. 이는 경이적이라고까지 표현되었던 이전 선거까지의 상승 경향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득표율이 의석수의 증가로 이어지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패배’라고 규정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오히려 사회당 사상 최고의 득표율이었다.
 

                                                                                                            -이시카와 마스미, <일본전후정치사> 116p~117p 중에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본전후정치사>는 평가보다는 기록에 충실한 책이지만, 사회당의 '패배' 선언에 대해서는 꽤나 날카로운 비판을 보여주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사회당의 '패배' 선언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저런 짓을 자꾸 했다는 것이 재미있더군요.
 

3. 킹 메이커, 혹은 파벌



 흥미 위주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자민당내의 파벌이 가지는 위력이 생각보다 막강하더군요. 예를 들어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수상을 지낸 다나카는 다나카파의 영수로 이후 세 명의 수상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오히라, 스즈키, 그리고 나카소네 등 3대에 걸쳐 다나카의 힘으로 수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킹 메이커’로서 다나카의 실력을 내외적으로 과시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다나카는 록히드 사건의 피고인으로서 자민당을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외형상 일개 무소속 의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일본 정치는 이 ‘암흑 장군’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시카와 마스미, <일본전후정치사>194p 중에서


 다나카뿐만이 아니라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수상을 지낸 다케시타 역시 우노, 가이후, 미야자와 3명을 수상으로 만드는 위력을 보이죠. 1991년에는 다케시타파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케시타파 회장 대리였던 오자와 이치로는 10월 10일 자신의 사무소에 세 명의 후보를 차례로 불러 정책을 청취했고, 이후 다케시타, 가네마루, 오자와 사이의 3자회담 및 파벌 총회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11일 저녁 무렵 다케시타파는 미야자와에 대한 지지를 최종 결정했다. 이 당시 ‘오자와 면접’은 ‘다케시타파의 지배’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장면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이시카와 마스미, <일본전후정치사> 222p 중에서


 우리나라에도 노태우, 김영삼 정권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김윤환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까지 강력한 킹메이커가 있었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결론은...이 책 좋네요. 물론 보면서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고, 낯선 일본 이름이 많이 나와서 헷갈리는 것도 있긴 했지만, 일단 재미있으면서도 있었던 일들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추천할만 합니다. 다만, 완전 초심자라면 다 이해하긴 힘들테니 일본현대사에 대해 간단하게라도 다른 책을 한번 보고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전 그렇게 안 해서 다 이해를 못 했습니니다.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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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쓰고 나서 새삼 너무 허접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크로에는 안 올리려고 했는데 미뉴에 님의 '그래도 올려주세요' 한 마디에 이렇게 올립니다. 허접한 글을 올리고 나니 다시 부끄러움이...;; 
 그래서...저도 미뉴에 님이 <박정희 정부의 선택>을 다 읽으시면 서평을 올려주실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저만 죽을 순 없으니까요.[...] 이책 읽고 미뉴에 님이나 몇몇 분이 일본현대사에 관련해서 책 몇 권을 추천해주셨는데, 도서관에 하나도 없더군요. 나중에 추천받은 책들을 읽으면 그 책들도 간단히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소리에 맞추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