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식용한다는 것은, 옛부터 계속 향상돼온 생명에 대한 존엄성 개념에서 볼 때, 한국에서도 이젠 야만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다. 지구가 달을 위성으로 거느리듯, 인간은 야생동물들을 자기 생활영역으로 끌여들어 위성으로 삼고 있다. 개와 고양이다. 지구의 운행과 존재가 달이 없이는 지속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 인간의 생활과 존재 또한 개와 고양이 없이는 지속 불가능까지는 아닐지라도 개와 고양이가 없는 인간의 삶을 상상하기란 정말 어렵게 됐다. 그만큼 현대 인간 삶에 개와 고양이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위성과 같은 존재로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개와 고양이는 다른 동물과 달라서 인간과의 유대, 뭐랄까 특수 종끼리의 연대감(?), 혹은 이심전심의 교감, 애정, 이런 것이 유달리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개나 고양이를 인간의 친구 혹은 반려자라고 하는 데는 아무런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가축으로 키우는 소 · 말 · 돼지 · 닭 · 양 · 염소 · 칠면조 따위를 친구 혹은 반려자(라고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라고 하는 데는 약간의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왜 그런가? 개나 고양이는 우리가 우리 몸의 임계영역 안(그러니까 지구와 달이 중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궤도 안)으로 받아들여 만지고 안고 품고 같이 놀고 하면서 서로 애정 섞인 ‘스킨쉽’을 나누고, 서로 소통가능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소 · 말 · 돼지 · 닭 · 양 · 염소 · 칠면조 따위는 우리가 그들을 우리의 주거 영역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런 사례가 좀처럼 드물거나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앵무새나 돌고래와 같은 애완동물의 사례는 그리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우리는 개와 고양이를 진정한 우리의 친구 혹은 반려자로 여기고 그들에게 인간적 사랑과 정을 주고 인간에 준하는 존재로 대우하고, 말 그대로 같이 동거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우리 식구다, 가족이다. 즉 우리는 그들을 우리와 같은 인간적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은 또한 그 자체로 지극히 인간적이다. 인간이 야만적 생물종이 아닌 인간이라는 특수한 존재일 수 있게 해주는 사람다운 속성의 발로인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인간의 고유 속성을 개와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더욱 생생하게 발견한다. 동시에 개와 고양이한테도 그런 인간 못지 않은 속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워한다. 그래서 더욱 더 개와 고양이에게 우리 인간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고 진심으로 친구 · 반려자 · 식구/가족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유에 닿는다면 개(와 고양이)를 식용한다는 것은 너무나 야만적이다. 나 개인으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기아와 재해, 전쟁 따위의 극심한 극단적 환경에 자주 처했던, 덜 문명화되고 덜 인간화됐던 옛날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 이제 개 식용이라는 야만적 식용 문화는 버릴 때가 됐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