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게임의 폭력성과 선정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폭력적인 영화를 보거나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을 하면 사람이 유의미하게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연구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주로 걱정하는 것은 컴퓨터 게임의 중독성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하여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 보인다. 이 중 일부는 만사 팽개치고 게임에만 몰두할 만큼 심각한 정도의 게임 폐인이다.

 

청소년은 2457명 중 305명이 인터넷 중독으로 나와, 중독률이 12.4%였다. 인터넷 중독은 인터넷 때문에 일상생활에 장애가 있고, 금단 현상에 시달리는 등 증상이 있는 이들을 말한다. 이 통계를 근거로, 정보화진흥원은 한국의 19~39세까지 인터넷 이용 인구 21918000명 중 총 1743000명이 인터넷에 중독됐고, 청소년 인구는 이 중 50.3% 877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인터넷 중독' 청소년의 대부분은 '게임 중독' 청소년이었다.

[조선일보 2012 신년특집] 부모는 일터로성적은 바닥으로게임속으로 도망가는 아이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02/2012010200128.html

 

게임 과몰입이 중독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아직 중독의 기제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반응 속도와 관련된 패턴이 일반적인 중독과 다르다고 해서 중독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일반적인 중독 환자는 자신의 중독과 연관된 그림(, 약물 등)이 나오고 나서 사각형이 노출되면 버튼을 누르는 반응 속도가 느려졌지만, 게임 과몰입을 겪는 청소년들은 거꾸로 반응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게임 과몰입, 일반적 중독현상과 달라"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7/13/0200000000AKR20120713199700017.HTML?did=1179m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하지도 않고, 운동을 하려고 하지도 않고, 공부를 하려고 하지도 않고 컴퓨터 게임만 하려는 것도 존중 받아야 할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특히 자기 자식이 그런 게임 폐인이 되었을 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부모는 사실상 없을 것 같다(프로 게이머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세상에는 책에 미친 사람들도 있고, 바둑에 미친 사람들도 있고, 낚시에 미친 사람들도 있고, 재즈에 미친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책, 바둑, 낚시, 재즈 등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컴퓨터 게임 시간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이 왜 이런 것들은 규제하지 않으면서 게임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소년 중에 책, 바둑, 낚시, 재즈 등에 중독되어서 만사 팽개치는 사례는 거의 없는 반면 컴퓨터 게임 폐인이 되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그리고 이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책과는 달리 영화는 시청각을 직접 자극한다. 책에서 아주 예쁜 여자에 대해 묘사하는 것보다 영화에서 아주 예쁜 여자가 등장할 때 남자의 눈을 더 사로잡을 수 있다. 액션 장면을 묘사하는 책 구절보다 액션 장면이 나오는 영화 장면이 사람들의 눈을 더 사로잡을 수 있다. 이것이 대중 속에서 책보다는 영화가 인기를 더 끄는 이유로 보인다.

 

컴퓨터 게임은 영화의 이런 장점에 또 하나의 중대한 특성을 추가할 수 있다. 영화 감상은 어떤 면에서는 철저히 수동적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 영화 내용이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반면 컴퓨터 게임의 경우에는 게이머가 게임의 양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면에서 능동적이다. 그리고 이 능동성이 재미를 엄청나게 추가할 수 있는 것 같다.

 

바둑 같은 게임은 수천 년 동안 규칙이 사실상 바뀌지 않았다. 반면 컴퓨터 게임은 아주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진화의 방향이 “중독성 강화”인 것 같다. 중독성이 강한 게임을 만들수록 게임 개발자와 게임 서버 제공자가 더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경향은 거의 필연적이다.

 

요컨대, 컴퓨터 게임은 그 잠재력 면에서 특별하다. 시청각을 제대로 자극할 수 있으며 게이머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와 결합하여 중독성이 매우 강한 게임의 개발로 이어지는 것이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점점 더 현실감 있는 가상 현실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 역시 중독성 강화에 기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컴퓨터 게임의 속성상 마약, 도박 등에 비해 훨씬 값싸게 이용할 수 있으며 청소년도 접근하기 쉽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컴퓨터 게임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 같다.

 

 

 

중독성이 특별히 강하며 실제로 중독되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규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주로 걱정하는 것은 게임의 폭력성이나 선정성이 아니라 중독성이다. 따라서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부분만 규제하는 것은 내 걱정을 더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컴퓨터 게임의 재미에서 폭력성과 선정성이 그리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 컴퓨터 게임의 어떤 요소들이 중독을 유발하는지 제대로 밝혀진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 사실 중독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런 요소들을 규제하는 방안이 실효성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결국 그런 규제라는 것이 재미 없는 게임만 만들라는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의 심야 이용을 제한하거나 하루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방식이 그나마 실효성이 조금이라도 있어 보인다.

 

 

 

이덕하

2012-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