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hina님과의 논쟁에서 그 답변과 더불어.

1.
 
대충 서로의 입장이 정리가 된것 같습니다.
 
자카리아의 입장도 어느정도 정리가 된 듯 합니다. 다만 athina님이 자카리아 입장을 박정희에 무리하게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자카리아 논지에 역행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명백하게 박정희시절 자카리아가 말하는 헌정적 자유주의의 요소로 드는 법치주의나 권력분립은 모두 부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의 집권시절의 정부형태는 철저한 권력융합적인 정부형태였고 또한 법이 아닌 인에 의한 통치였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내용들은 제가 처음 올린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논의를 생각하면서"라는 글의 내용중에 어느 정도 적었으므로 그 부분을 참조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꾸 탐관오리 정치깡패 나아가 치안문제를 말씀하시는데 그 부분도 본 글에서 박정희시절 오히려 4대 의혹사건에 삼분폭리사건같은 부정부태가 난무했고 박정희자신이 군인신분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정치깡패임을 상기할때 옳지 않다고 봅니다.(구체적인 것은 지난글 링크참조) 아니 자신의 대통령선거에서 그해 국가예산의 10프로를 썼는데 그것 자체가 스스로 탐관오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선거때마다 돌린 고무신은 어떻구요. 치안문제도 그렇습니다. 쿠데타에 반대하고 긴급조치에 반대하는 사람을 잡아 가두는게 치안을 유지하는 것입니까? 그거야 말로 국민의 신체의 자유와 생명권 나아가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자유주의적인 것이져. 동시에 반민주주의적인 것이구요.
 
또한 자카리아가 단순히 권력분립(+법치주의)+자본주의(경제발전)만을 가지고 도식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가 헌정적 자유주의에 대립하는 것으로 상정하는 민주주의라는 것도 기실 [보통선거나 국민투표 즉 상대민주주의나 동일성민주주의(=직접민주주의)] 또는 [정권교체성공여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만약 정권교체성공여부를 놓고 본다면 일본은 전후에도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어야죠. 겨우 얼마전에 정권교체했으니깐요. 이것만 봐도 그의 민주주의 정의가 얼마나 어리숙한지 알 수가 있습니다. 헌정적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대립시키면서 저렇게 허술하게 민주주의를 정의하고 있으니 더욱 신뢰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2.
 
앞에서 권력분립(+법치주의)에 대해서 말했으므로 이제 자본주의(경제발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일단 자본주의부분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자본주의도 다 같은 자본주의가 아니고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의미맥락을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사실 자본주의를 부정한 공산주의를 제외하고 역사상 전개되었던 자본주의는 참으로 다양한데 그것을 다 똑같은 것으로 묶는 것부터가 그렇습니다.
 
서양사에서 12세기 이후 봉건제가 해체되어 유럽사회가 중앙집권화 되어 가는데 그러다가 16세기에 성립한 절대주의하의 중상주의는 비록 초기형태의 자본주의이지만 국가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자유주의와 연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나찌의 국가자본주의는 자본주의지만 그래서 일정부분 경제가 발전하긴 했지만 그것을 자유주의와 연결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사실 나찌의 국가자본주의나 스탈린의 사회주의나 그 전개방식은 도찐개찐이였죠. 왜냐하면 모두 국가주의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시대의 자본주의 역시 똑같죠.
 
동시에 이러한 국가주의에서는 민주주의적 요소가 약하거나 민주주의를 부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것입니다. 절대왕정이나 나찌때 권력분립이 부정된 것과 의회가 형식적 들러리 역활을 하다 해산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죠. 이것은 박정희때의 권력분립이 부정되었었던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의회자체가 대통령에 의해 구성될 정도임) 다만 이러한 국가자본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안티테제의 역활을 했을 뿐입니다.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세력이 국가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세력과 대치하면서 그리고 승리하면서 한단계 더 높은 진정한 자본주의로 발전해가게 된 사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절대왕정하에서 군주권력과 결탁해 있던 상업자본의 생산방식인 객주제 생산방식(putting out system)은 생산자를 시장과 차단하여 인간의 자유와 창의를 억압하는 생산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권력에 의한 부당한 특혜와 보호를 요구하면서 그 당시 봉건사회를 해체하는데는 어느정도 기여했지만 새로운 근대적 생산방식은 만들어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에 비해 새로운 생산방식이었던 공장제수공업제도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며 나아가 기술진보를 이룰 수 있는 생산방식이었죠. 이들의 대립과정에서 군주제를 지지하는 자들과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은 대립했고 결국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이 시민혁명을 성공시키면서 공장제대규모생산이 일반화되게 되었던 것이죠. 자유주의자가 국가주의에 승리하면서 자본주의가 기술적 진보와 더불어 비약적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어갔던 겁니다. 즉 봉건제자 타파되는 과정에서 국가주의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이 끊임없이 대립하면서 서로의 자본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국가주의세력은 독재와  자유주의세력은 민주와 결합하면서 사사껀껀 대립하다 결국 2차세계대전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마무리 하게 된 것이죠. 이러한 것은 비록 그 차원은 다르지만 미국에서 기존의 굴뚝산업을 지지지하는 공화당과 새로운 아이티생명공학과 같은 신기술을 지지하는 민주당이 서로 대립하는 과정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과거 부시정권하에서 한국주식시장은 현대중공업과 같은 조선주가  주도주가 되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지금 오바마정권하에서는 아이티나 헬스케어의료산업이 주도주죠.) 미국 민주당의 클린턴이 위대한 이유가 이러한 새로운 산업을 진보정권의 아이콘으로 삼았다는 데 있을 겁니다. 나아가 미국자체가 위대한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거대 다국적 기업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개 개인에 의한 구굴이 나와서 승리했다는 점일 것입니다.(이러한 것들은 미국 경제사에서 수도없이 발견됩니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아직 미국과 같은 수준의 기술진보와 창조경영 나아가 창조적 파괴에 기반하지 못하므로 인해 어떤 특정산업에서 삼성을 누르고 새롭게 등장하는 벤처기업이 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거대재벌에 먹히고 있는 것이죠. MP3를 처음 개발한 사람이 한국사람임에도 그것이 제품화된 것은 미국이니까 말입니다. 네이버와 같은 검색엔진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아이엠에프이후 과거 물량투하경제에서 상당히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경제로 바뀌어 가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인 것이죠. 아무튼 미국이 패권을 휘두르는데는 그들의 자본주의가 창조적 파괴와 기술진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앞으로 이러한 미국의 패권과 중국러시아의 패권이 서로 부딧히게 될 거라고 보는데 이것도 2차대전에서와 마찬가지로 결국 국가주의 대 자유주의의 싸움으로 귀결될 거라고 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때 박정희부터 전두환까지 한국경제가 의미하는 그 역사적 맥락을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특혜에 의한 중상주의적 자본주의 그러니까 국가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가 바로 그 박정희 시절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들은 국가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독재와 결합하게 된 것이구요. 이러한 특혜와 보호하의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부패와 기득권을 낳게 되고 그 이후 기술진보를 가로막게 됩니다. 그 시절 한국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보면 주로 기술적 요소보다는 다분히 환율효과와 노동자임금탄압에 기초한 이유도 그것에 근거합니다. 동시에 여러 특혜기업을 재벌로 성장시키죠. 동시에 물량투하경제로서 외국자본에 의한 발전이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미국의 도움이 상당히 켰죠. 미일간의 플라자합의로 인한 환율효과만으로 한국의 GDP가 10백가까이 올라갔으니깐요.(사실 이것은 거의 불노소득과 비슷합니다. 기실 불노소득적 측면이 강해서 환율효과가 사라지자 곧 비실비실대다가 아이엠에프를 맞은거죠.) 이러한 중상주의적 국가주의자본주의는 진정한 자유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의 자본주의는 아이엠에프 이후 비로써 모든 산업전반에서 기업의 내실이 다져지고 나아가 아이티통신산업과 같은 새로운 영역이 창출되게 됩니다. 일본식모델에서 미국식모델로 조금씩 변경되어 가는 거죠. 지난 10년간의 내실있는 자본주의의 정립으로 인해 한국은 세계경제위기에도 오히려 세계시장에서 우뚝 서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의 제품은 과거처럼 단순히 환율효과에만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 기술로서 승부하는 시대가 된거죠. 이것은 마치 중상주의하의 지배적 생산방식이었던 객주제생산방식에 공장제수공업생산방식이 도전하여 결국 승리한 것과 유사한 맥락인 것입니다. 물량투하와 투기이득에 의한 자본축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기술진보를 통한 자본축적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죠. 이제 한국의 남은 과제는 창조적 파괴가 계속 가능한 경제를 만들어가면서 나아가 헌법상 사회권을 실질화 하고 대의제적 모순을 시정해가는 것입니다.(참고로 국가주의에 대해 승리한 자유민주주의는 대공황으로 인해 잠시 주춤거렸다가 결국 루즈벨트의 개혁에 의해 다시 힘을 얻어 결국 사회주의까지 무너뜨렸습니다.) 노무현정부에서 하려고 했지만 기득권의 반발과 내부역량부족으로 실패한 부분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져. 노무현과 한국진보가 진정 했어야 했지만 부족했던 부분이 바로 루즈벨트가 했던 부분이라고 봅니다.
 
결국 이러한 이해의 관점에서는 박정희시대의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처절히 유린된 시기이고 그 자본주의의 성격조차도 국가자본주의였다가 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새로운 자유민주세력에 의해 독재는 타도되고 그 자본주의는 성격이 조금씩 변해가는 중이구요. 이것은 대만이나 홍콩 모두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다만 홍콩은 도시국가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네요. 거기다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얼마전까지 식민지였다는 점두요.
 
2)이제 경제발전의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위 링크된 글은 1990년대의 경제수준과 민주주의 수준을 가지고 본 경우 우상향의 관계가 나오므로 혹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어떤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여기서도 인과관계는 부정되구요)
 
그런데 변화량을 가지고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놓고 보니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나와요. 즉 변화량을 20년으로 해서 봤더니 정작 소득수준의 변화와 민주주의 변화정도는 무관계하게 나옵니다. 나아가 100년정도의 변화량을 놓고 봤을때도 양자는 무관계하게 나와요. 500년정도 되니 이제 우상향으로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은 박정희의 18년간의 집권정도가 결국 민주주의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변화량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져.
 
나아가 자카리아가 말하는 헌정적 자유주의는 사실 민주주의의 측정용도로도 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리덤하우스가 측정한 민주주의가 단지 직접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력분립수준 의회수준 등등 전반적인 것이 민주주으로 들어갔을 거라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는 경제발전과 자유주의의 관계도 부정됩니다. 결국 원칙적으로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는 무관계하다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서구가 근대화를 시작한 것이 300년정도 되니까 당연히 500년을 변화량을 해서 보면 상관관계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가 서양에 비해 압축성장을 한 것을 가정하더라도 그렇습니다.(뒤에 나오겠지만 한국이 100년간에 서구의 300년정도를 단축했다고 볼때 박정희 통치기간 18년이 단축한 것은 고작 54년 정도에 해당됩니다.) 
 
3.
 
조선이라는 봉건사회는 조선후기부터 조금씩 해체되기 시작하는데 동시에 자유민주주의발전사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선후기-일제식민지시대-이승만장면시대-박정희전두환시대노태우시대-김영삼김대중시대-노무현시대의 경로를 거치면서 자유민주주의(그안에 자유시장경제포함)가 발전해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간에 독재나 국가자본주의와 같은 복병(안티테제)를 만나지만 결국 자유민주주의의 완전태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져.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완전태는 결국 국민주권에 기초하여 개인의 기본권이 보장되고 의회제도(대의제)등이 정착되어 가면서 권력분립과 법의 지배라는 근대적 시스템이 구축되고 나아가 복수정당제로 인한 정당간 경쟁이 이루어지고 사유재산재 나아가 자유시장경제질서가 확립되 그 형식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 실질면에서 완전해 지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현대의 자유민주주의는 그래서 사회적 평등가치와 반대표제 그리고 경제적으로 창조적 파괴등이 가미되어야 하는 것이죠.
 
사실 180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근현대사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사인 것이죠. 미약하게 맹아적으로 있다가 이게 이상한 형태로 변질되었다가 다시 외부에서 이식해와서 심었다가 또 다시 후퇴했다가 결국 꽃을 피워서 지금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수준은 선진국보다는 못하지만 거의 그 근저리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조선후기에는 봉건제가 내부 모순으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고 그래서 동학혁명과 같은 초창기 자유민주주의 맹아가 나오는 것이죠. 다만 외부 모순인 제국주의세력에 의한 국권침탈의 위험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죠. 이것은 서구의 저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부적으로 봉건제모순과 외부적으로 국민국가간의 전쟁등이 상존했으니깐요. 그러나 결국 일본에 먹히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통치시기는 사실 서구로 치면 절대주의시대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일본이라는 제국주의국가에 의해 지배당하는 점 그리고 일본이 그당시 국가자본주의였다는 점 등은 절대주의시대의 서구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절대주의시대에도 초창기 자본주의가 발전했듯이 일제시대에도 한국땅에 자본주의는 이식이 됩니다. 해방과 더불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일본식 자본주의를 경험한 부정적인 면과 해방후 바로 분단의 아픔이라는 두가지 취약점을 가지고 출발하죠. 거기다 아직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것도 그렇구요. 하지만 일단 그동안을 배를 띄우지도 못하다가 처음으로 배는 띄우게 된거죠. 그것도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의 배를 띄운 것은 천운인 것입니다.(그런면에서 이승만은 비록 독재를 했지만 그가 출발선은 제대로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근대민법의 효시인 나폴레옹법전을 만들고 나아가 프랑스혁명정신을 어느정도 보존하려고 했던 나폴레옹에 비견된다고 봅니다. 더구나 나름대로 이승만은 6.25에서는 전쟁을 결국 승리로 이끕니다. 나중에 독재로 간 부분도 비슷하져. 그리고 토지개혁부분도 어느정도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이죠) 그리고 비록 이승만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4.19혁명과 장면정부출범까지 좋은 헌정경험도 가지게 되었구요. 5.16과 관련하여 5.16쿠데타가 만약 이승만정권시절에 이루어졌다면 이것은 상당한 평가를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5.16은 4.19혁명을 뒤엎어버리는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에서 1848년 2월혁명으로 제2공화국이 들어셨음에도 쿠데타로 그 2월혁명을 뒤집은 것과 똑같죠. 그리고 이러한 나폴레옹 3세는 제정을 보나파르티즘이라고 합니다.(비록 박정희가 제정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그 실질이 그렇다는 것이죠. 그가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으로 바꾼 것도 권력확대를 위한 포석의 측면이 강하죠.) 그래도 이 시기는 그나마 봐줄만 합니다. 서구의 헌정에서도 어느정도 보이는 것이니깐요. 이승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4공의 유신헌법시절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 이것은 사실상 절대왕정시대로의 복귀를 의미합니다. 또는 나찌와 거의 유사한 체제입니다. 경제적으로도 국가자본주의를 취함으로써 일제식민지시대로 회귀해 버린 것입니다. 물론 국가자본주의하에서도 경제발전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체제는 최악인 것입니다. 결국 그가 죽었을때 한국경제는 망신창이 되어버립니다. 나아가 그런 일본식 유산을 빌어왔기 때문에 아이엠에프라는 종말을 맞이한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우파는 박정희를 버려야 합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이승만만 지지하십시오. 그것이 한국우파가 살아남을 길입니다. 서구에서 절대왕정에 대항하여 시민혁명이 일어났듯이 다시 한국은 혁명이 오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의 생명력은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한 파국을 막은 것이 바로 6.10혁명인 것입니다. 87년 개헌의 의미는 그래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서구역사에서의 명예혁명에 비근한 것이죠. 서구에서 명예혁명이후 그 자본주의방식이 공장제수공업으로 재편되고 나아가 공장제대규모생산이 가능해졌던 것처럼 한국은 명예혁명이후 비록 부분적인 굴곡은 겪지만 97년 정권교체로 명예혁명의 실질화를 이룩하게 됩니다. 동시에 한국의 자본주의도 질적인 변화를 예고하게 되구요. 그리고 97년-2007년까지의 10년간의 집권기간동안 한국 자본주의 질을 상당부분 개선시키게 됩니다.
참고로 서구의 자유민주주발전사에서 보면 크게 최고형인 영미식모델, 중간급의 프랑스식모델, 최하급의 독일식모델이 있습니다.(헌법적으로는 영미프랑스식 대 독일식으로 구별되곤 합니다.) 이것은 정치경제사적으로 볼때 영국은 농민이 실질적 토지소유자가 되어서 독립자영농민인 요먼이 출현한 것과 대의제적 전통으로 꾸준히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해갔다는 점에서 최고형입니다. 반면 프랑스는 농민이 반작소작제하의 소작인이 주류였다는 점과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제(나아가 사회주의)의 대립양상에서 국민공회와 같은 사회주의(동시에 직접민주주의)와 중간중간 파시즘적 독재가 나타났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일은 농민이 여전히 농노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봉건적 영주제가 계속 유지되었고 또 비스마르크 나찌로 이어지는 최악의 군국주의노선을 걸어가다 2차대전이후 다시 자유민주주의로 돌아서죠. 바로 한국이 최하급의 독일식 모델을 밟게 된 것이 박정희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나마 장면이 그대로 집권을 했다면 한국은 중간급의 발전모델은 걸을 수 있었는데도 말입니다.(한국은 토지개혁을 통해 반작소작제를 이미 탈피해 있었기 때문에 하기에 따라서는 영미형도 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박정희때문에 바로 최하급의 모델 군국주의모델을 거쳐야 했고 그 결과 30년간 죽도록 고생을 한 것이죠.
 
저는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는 한국우파의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한국우파를 친일에 대해 아무말도 못하는 우파, 국가자본주의에 기생한 족벌재벌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는 우파로 만들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진정한 우파 그러니까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소중히 여기고 진정한 실력있는 자가 대접받고 대기업이 있다하더라도 기술력과 창의력으로 기존의 대기업의 영역도 창조적으로 파괴시킬 수 있는 기업을 지지할 수 있는 우파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우파의 진정한 자기성찰을 촉구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