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삶 속에서 죽음을 경험하고, 그러한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 발터 벤야민, 정확한 출전 모름, 한 지인의 카톡 프로필.

 발터 벤야민은 생전에 세 번의 자살을 시도하였는데 유감스럽게도 세 번째 시도에서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나찌에 쫓기는 위기 상황에서 택한 정치적인 자살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이전에도 그가 자살을 시도한 전력으로 볼 때, 그에게는 어느 정도 내재적인 타나토스적 충동이 있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한 것 같다. 

  삶은 어떤 의미에서 뱀장어들로 가득찬 낡은 구덩이와 같다. 살아서 꿈뜰대는 현재의 생생한 욕망 아래에는 무채색의 흙탕물이 흐르고 있다: 그 흐름 위엔 형해화된 과거의 조각 난 그림들이 마치 만화경 속의 색종이 조각들처럼 흐트러져 있다. 그 조각들은 각각의 전기력을 품고 있어서, 때때로 스파크를 내보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암연 속의 어둠을 밝혀주지는 못한다. 

 이 바닥 밑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암연을 뒤덮고 있는 의식의 흐름 속에서 서 있기 때문이다. 물의 흐름을 느낄 수 있어도, 붙잡을 수 없듯이, 나는 내 삶의 밑바닥에 흐르는 저류를 느낄 수 있어도 그것이 무엇인지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미는 삶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가 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삶 속에서 죽음을 체험한다. 그리고 그러한 죽음을 통해 다시 삶을 체험한다. 무의미는 인간이 삶 속에서 자신의 온전한 의미 안에 머물고 있을 때에만 투명하게 지각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삶에 대한 무의미를 자각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에 속한 자신과 자신이 속하지 않은 자신의 동시성에 관한 가장 정직하고 합리적인 언명이 된다.  왜냐하면 이런 상태의 인간은 타인과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서도 정복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