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에 의해 예술은 완성된다

그림이나 영화, 그리고 음악은 작가나 감독의 의도에 따라 표현되겠지만, 최종적으로 관객의 감성과 경험, 철학과 사상에 따라 재해석되어 여러 작품으로 재탄생되고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김기덕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하거나 김기덕의 의도에 맞춰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난 후에 나의 느낌과 해석이 자연스럽게 나올 때 “나의 영화”를 본 것이고 김기덕 영화가 아닌 또 다른 “나의 영화”가 완성된다고 생각하지요.

제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사전에 <피에타>에 대해 알고 간 내용과는 달리 영화관을 나올 때 저는 문득 <영화 피에타>가 반기독교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이 너무 뜬끔 없고 황당한가요?

김기덕은 영화 <피에타>에서 기독교의 구원을 모성을 매개로 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것 같았고, 또 영화 속에 기독교적 요소를 많이 배치합니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조민수가 이정진을 무릎에 안고 있는데 이것은 미켈란젤로의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조각상 <바티칸 피에타>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바티칸 피에타>에서 하나님의 포근함을 나타내는 마리아의 주름진 치마가 예수를 감싸듯이 조민수는 두툼한 니트 상의로 이정진을 안아주지요. 300만원 원금에 이자로 3천만원을 받는 고리대금업자 이정진(강도)은 중세 유태인(샤일록)의 고리대금업을 연상하게 하는 것도 유럽 기독교와 연결된 듯이 느껴졌구요. 이정진이 트럭 밑 바닥에서 끌려가면서 선명한 핏자국을 그리는 마지막 장면은 골고다를 오르는 예수를 떠올리게 하지요.

하지만 저는 기독교를 연상하는 이 영화에서 왜 반기독교(반예수는 절대 아니니 오해없길 바랍니다)를 보게 된 것일까요?


예수와 마리아, 인간으로 돌아오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예수가 신으로 격상되고 마리아가 동정녀로 되는 과정이 결코 순수하게 종교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4세기 니케아공회에서 예수는 신으로, 마리아는 동정녀가 되지만, 그 과정 속에는 아리우스(예수는 인간이라고 주장)와 아타나시우스(예수는 신이라 주장)의 목숨 건 논쟁, 정치와 종교, 주교와 황제, 성과 속, 진리와 거짓이 뒤엉킨 치열한 쟁투가 있었습니다. 실존적 인물의 예수가 아이러니컬하게 인간의 권력 다툼 와중에 인간에 의해 신으로 추앙되지 않았나 하고 의심하는 것을 비합리적이라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가 ‘나의 아내’를 직접 언급한 것을 기록한 콥트어 문서가 최근에 학계에 보고되었습니다. 예수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성경외경과 댄디 브리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가 사실일 가능성을 높여 놓았지요. 이 콥트어 문서도 예수가 인간에 의해 신으로 격상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런지요.


영화 <피에타>는 포스터에 나오는 것처럼 미켈란젤로의 <바티칸 피에타>를 연결고리로 기독교의 구원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바티칸 피에타>의 예수와 마리아는 영화 <피에타>의 이정진과 조민수로 대치, 투영되고 있지요.

앳된 얼굴로 표현된 <바티칸의 피에타>의 마리아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순결한 여자들이 순결하지 않은 여자들보다 젊음을 더 잘 유지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티끌만큼도 추잡한 때가 묻지 않은 육체를 가진 동정녀라면 더 더구나 말일세. 가장 신성한 처녀인 성모 마리아, 즉, 신의 어머니를 실제보다 훨씬 젊게 표현한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답했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당시나 현재의 기독교가 예수를 신으로 보는 것에 맞춰 인간(아버지 요셉)의 정(?)을 통해 잉태되지 않았고, 마리아(예수의 어머니)는 인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예수를 잉태한 동정녀로 순결했기 때문에 20대 처녀처럼 젊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화<피에타>에서 조민수는 어머니로서는 비교적 젊은 얼굴로 <바타칸 피에타>의 마리아의 젊음을 보여주지만, 이정진의 마스터베이션을 보면서 한 인간(여성)으로서의 세속적 욕망을 드러냅니다. 급기야 그 욕망을 이정진의 성기를 잡아 마스터베이션을 도와줌으로서 표출하였지요.

이정진의 마스터베이션을 도와주는 조민수의 행위 장면은 조민수가 이정진(강도)의 친엄마가 아니라 자기의 친아들을 죽게 한 이정진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지요. 또 김기덕 감독이 인간의 본능(성욕)은 어떤 상황에서도 발현된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김기덕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성모 마리아도 인간의 어머니이고 예수 또한 인간의 본능에 의해 태어난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조민수가 자기의 친엄마임을 밝히자 이정진이 조민수에게 자기의 성기를 조민수의 성기로 들이밀면서 자기가 나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도 예수도 인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기독교의 본질인 대속 신앙의 부정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서 인간은 구원받았다는 대속 신앙에 있습니다. 저는 이 대속 신앙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김기덕의 <피에타>가 어쩐지 이 대속신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여겨졌습니다.

저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지었다는 말도 선뜻 수긍하기 힘들고 내 죄를 나 스스로 책임지지 않고 누군가가 대속하여 내 죄가 면해진다는 것도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 같아 기독교의 대속 교리를 수용하기 힘들었습니다.

김기덕은 구원을 피학(조민수), 가학(이정진), 자학(조민수의 스스로 추락하여 자살, 이정진의 트럭 밑바닥 매달림)의 트라이앵글에서 묘사하려 했다는 말을 했지만, 이것은 현학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되더군요. 저는 김기덕이 말하는 자학이 스스로 책임지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정진은 자기 죄를 스스로 책임지고 속죄하기 위해 자기가 병신으로 만들었던 남자의 아내의 트럭 밑으로 자기 몸을 매답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아내가 몰고가는 트럭 밑에서 선명한 핏자국을 아스팔트에 남기며 고통스럽게 죽어가지요. 자기의 죄과에 걸맞는 고통을 스스로 자청하고 감내하면서 속죄하는 것이죠.

기독교가 예수의 대속으로 인간이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과 달리 영화 <피에타>는 인간 스스로가 속죄하고 그 댓가를 자기 스스로 치르는 것이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김기덕의 <피에타>에서 인간에 의해 신으로 끌어올려졌던 예수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고, 대속자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스스로 책임지고 속죄하는 인간을 읽어 내고 그것이 구원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적 예수로 보고 싶은 저의 욕망이 투영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족 : <피에타>에서 <세븐 데이즈>와 <밀양>을 보다

저는 <피에타>를 보면서 김기덕이 영화 <세븐 데이즈>와 <밀양>을 오마쥬로 활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민수가 친아들의 복수를 위해 직접 나서서 모성을 수단으로 이정진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겠다는 것은 <세븐 데이즈>의 김미숙이 자기 자식을 살해한 자를 법의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변호사(김윤진)의 딸을 유괴하여 범인을 풀어나오게 만들어 직접 살해해 복수하는 장면과 겹치더군요.

이정진과 조민수가 합세해 병신으로 만든 아들의 어머니가 아파트 공사장에서 조민수를 밀어 떨어뜨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가 조민수가 스스로 추락하는 바람에 그 기회를 놓치고 돌아서는 장면은 <밀양>에서 아들을 유괴 살해한 남자가 감옥에서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의 구원을 받았다고 스스로 자유로와 하는 것을 보고 자기(피해자, 전도연)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용서해 버리는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전도연의 심정을 오마쥬한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