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장면.....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경제발전의 7할은 남한이 미국의 세력권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미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그리고 6.25를 겪으면서 남한은 숙명적으로 미국의 자본주의하에 편입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의 4마리 용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이구요.

4,19혁명을 통해 들어선 장면 정부만 해도 친미적 색채가 매우 강했고(이건 모든 학자들의 공통된 이야기고 장면이 쿠데타 진압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도 미국이 개입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음) 따라서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을 가능성도 높고 또 이미 한일국교정상화논의가 장면 정부부터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외자 도입부분에서 장면이나 박정희나 별반 다르지 않았을거라고 봅니다.(사실 이 부분은 그 당시 장면과 같은 신파였던 김대중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장면정부는 이승만과 달리 좀 더 실효성 있는 경제개발계획을 이미 수립했었고(박정희도 일정부분 따라했음) 나아가 주요한, 김영선등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장면정부의 경제학자 그룹들은 이미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중심의 경제질서 골간을 주장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박정희만이 우리나라를 대기업 위주로 발전시켰을 거라는 주장은 구라임. 더구나 박정희는 한국에 지독한 재벌문제를 남겼음.) 이들은 외국원조의 적극적 이용등을 주장했구요. 그리고 장면정부 당시 이미 지금의 전경련에 해당되는 경제단체가 조직되어 있었고 그들에 의해 수출주도형공업화가 건의될 예정에 있었다고 합니다.(홍콩에는 이미 보세가공무역이 성행했다고 하네요.) 또 장준하는 국토개발사업의 책임자이기도 했는데 박정희시기의 국토개발도 이미 장면정부하에서 예정되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박정희 정부에 많이 가담했던 박희범, 최문환등과 같은 경제학자 그룹은 수출주도공업화와 정반대되는 내포적 공업화=경제적 민족주의를 주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만 봐도 박정희의 수출주도공업화가 박정희측 경제그룹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그 당시 전경련과 비슷한 그룹의 의견이 주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민간과의 협력하에 정부주도로 경제발전을 하려고 했던 장면정부의 경우 이러한 수출주도공업화는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장면 정부하의 경제학자 그룹과 박정희 정부하의 경제학자 그룹간의 차이가 있다면 장면쪽이 좀 더 민간주도형이었던데 비해 박정희쪽은 국가주도의 파시즘적 방안을 더 효율적이라고 보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어느정도 주도하는 것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나아가 그 당시 한국의 관료조직은 조선시대부터 중앙집권적 관료문화가 이미 있었으므로 상당히 원숙한 단계였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을 설명함에 있어서 한국은 식민지를 거치면서 중상주의적이지만 시장경제를 어느정도 경험했고 나아가 좋은 인적자본이 있었으며 더구나 자본가그룹이 이미 존재했고 무엇보다도 미국의 자본주의에 편입되는 운명에 있었다는 점이 가장 컸다고 봅니다.

그리고 2공의 민주당이 파벌싸움만 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자유당의 몰락으로 여당과 야당이 새로이 정립되는 시기였으므로 너무나 당연한 진통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혁명이 있는 뒤에는 원래 각종 의견이 쏱아지는 시기입니다. 이것은 서구의 모든 혁명기에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을 단지 파벌싸움으로 몰아 붙이는 것은 민주주의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4.19 이후에도 계속 민중들이 들고 있어나 혼란이 계속되어 주길 바랬지만 박정희가 원하던 데모같은 건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하더군요.(언론에서 정부비판은 좀 있었다고 함. 특히 혁신계쪽에서. 그런데 나중에 이 혁신계가 박정희에 의해 철저히 숙청당하게 되어 한국 정치사에서 일정기간 사라지게 됨.) 그만큼 혁명 이후 일정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안정기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도 이제 막 1년도 안된 정부에게 무능하다 어쩌다 하면서 군대를 동원한 것은 그야말로 사적인 이익을 위한 쿠데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그 당시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얼마 후에 예편될 운명이었습니다.)

간단히 이정도만 언급하고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좀 더 자세히 적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