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54~60년까지 20프로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북한은 1946년 무상몰수 무상분배 형태의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중요한 것은 이때 소유권이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1956년 사유재산권 을부정하는 협동농장이 완성된다

이때까지 북한 내부의 분배구조는 매우 좋았다. 46년 농지개혁으로 농민들이 자기 땅을 가지게 되었고 10년동안 소유권을 가진채 유지된다. 그결과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나아가 이시기 천리마운동 3대혁명 운동의 결과 중화학공업 비중도 70프로 이상 이루어지게 된다. 제철 기계 조선 광업 전기 화학 등 모든 분야를 아울렀다. 그 결과 60년대 20프로 이상의 고성장을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북한은 70년대 정치적으로 김일성 우상화가 이루어지고 동시에 특권계층이 생기면서 경제활력을 잃게 된다.열심히 일해봤자 소수의 특권층이 실제적으로 가져가는 구조이고 또 국가소유형태라 개인에게 실질적 떡고물이 떨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80년 90년대까지 쭉 이어진다. 결국 경제는 개판이 되고 만다.

이런 과정은 정확히 남한의 경제발전과 관련되어 중요한 시사점을 주게 된다.

남한 역시 6.25 발발 직전 53년 농지개혁을 하게 된다. 다만 유상몰수 유상분배 형태였다. 이승만 집권시절 산업시설의 대부분이 북한에 있었는 관계로 5%대 성장률을 기록한다. 동시에 전후 복구시기라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사실 박정희 때는 본격적인 경제성장이 딱 이루어질 시기였다. 그 당시 장면정부에서 이미 경제제일주의를 바탕으로 국가주도의 경제발전을 계획하게 된다. 북한이 70년대 유일지도체제와 주체사상을 확립하고 정치적으로 독재에 빠졌듯 남한 역시 유신을 통해 박정희일인독재체제가 완성된다.

북한이 46~60년간 일차 경제성장을 이루었는데 남한은 53~70년까지였다. 초창기 경제발전은 사실 민주화의 전진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여기서 민주화는 권력 자원의 합리적 배분 분배의 기초가 된다.) 하지만 2차 경제성장은 그렇지 않다. 어느정도 경제성장 이후에 민주화를 바탕으로 한 분배의 개선은 매우 중요하다. 북한은 70년대 김일성 유일독재체제로 80년 90년대까지 쭉 이어간 반면 남한은 박정희 독재체가 일단 무너졌고 비록 신군부가 들어섰지만 권력이 교체되었고 동시에 80년대는 민주화의 태동기이기도 했다. 그 결과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진전으로 노동소득분배에서 실질적 개선이 이루어졌고 동시에 신군부세력은 과거 박정희 시절 잘못된 중화학공업부분에 대해 대대적인 산업조정과 부실기업 정리를 하게 된다. 물론 이시기 일본에서 들어온 차관으로 사실상 아이엠에프 상태를 넘길 수 있었다.

이것은 남한의 민주화가 제 2차 경제성장의 진정한 추동동력이었음을 의미한다.(동시에 박정희 독재체제가 무너지고 비록 신군부였지만 권력이 교체되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80년대 이 시기는 노동소득분배율이 급격히 개선되면서 동시에 GDP성장률의 급격한 우상향을 기록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80년대 후반 중화학공업 즉 제철 전자 반도체 자동차 등에 대규모 투자가 일어났다, 3저호황과 함께 중화학공업이 급격히 성장하고 동시에 90년대 성장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동아시아 전체적으로 80년대 후반 중화학공업에 과잉투자가 일어났고 이것은 나중에 아이엠에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한은 아이엠에프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의 끊임없는 진전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반면 북한은 60년대 그나마 민주주의를 유지하다가 70년대 독재로 변하고 그 뒤 계속 독재체제게 유지되면서 경제도 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신화는 실질적으로 그렇게 민주화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이제 남한의 추가적 경제성장은 경제민주화와 복지에서 찾아야 한다. 동시에 그걸 바탕으로 혁신경제와 평화경제를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 선진국 문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