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는 얼마 안 되지만, 닝구로써 경력이 쌓이고, 프로젝트 초기 멤버 중 유일한 기획자로서, 정치와 MMORPG에 대해 매우 비슷한 점이 많아서 자기 전에 간단히 쓰려 합니다. 

사실 MMORPG나 현실 세계는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 내부에서 서로의 욕망에 따라 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려 한다는 것이죠. 비슷한 것은 그 뿐이 아닙니다. 게이머는 게임 회사를 고르고 현실 세계의 국민은 정당을 고릅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다른 유저가 있음으로 인해서 자신의 부가 숫자가 아닌 만족감을 주는 부가 되죠.

이러한 유사성은 피상적인 것이고 그 내부로 들어가면 더욱더 유사한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96년 바틀러란 사람은 머드 게임의 플레이어를 각자의 성향에 따라 4개의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성취하고 하는 목표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지, 혹은 세계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지의 가로축과 컨텐츠를 성취하는 것을 재밌어 하거나 게임 외부의 요소에 관심을 두는 세로축이 바로 그것이죠. 이를 바틀러는 각각 모험가, 달성가, 수다쟁이, 킬러로 분류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인 성향 하나만 갖는 사람은 별로 없고 일정부분씩 중복된 성향을 지니지만 정규화된 모델링을 위해 이렇게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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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유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 달성가: 개발자가 만들어둔 것을 달성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유저들입니다. 레벨이 높다거나 좋은 아이템을 파밍한다거나 하는 사람들이죠.
  • 모험가: 개발자가 숨겨뒀거나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찾는 것을 즐거워하는 유저들입니다. 버그를 찾는 것도 이런 유형의 유저입니다. 개발자의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기 때문에 개발자 입장에선 상당히 골치아픈 존재죠.
  • 채팅족들: 이들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게임 클라이언트는 수 기가바이트의 채팅 프로그램에 불과하죠. 물론 게이머이기 때문에 게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그건 대체로 발화의 수단으로 사용합니다.(수다쟁이라고 번역했는데, 사진은 다른데서 퍼온 것이라 채팅족들이라고 되어 있네요.)
  • 킬러: 이들은 다른 사람을 집요하게 죽임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시하는 것이 목적이라서 도와줌으로써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런 것은 노력에 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죽임으로써 즐거움을 느낍니다.
각각의 유형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설명하면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그러나 생략하여도 대충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이 될 겁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도록 관련 링크를 달겠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구조 아닙니까?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상을 포기하더라도 점점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좋아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지루한 일을 끝나치고 친구나 와이프와 맥주 한 잔 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수학 공식이나 어려운 퍼즐을 푸는 데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바틀러가 이 사실을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틀러의 유저 유형 분류는 현실 세계의 인간의 즐거움 추구 유형 분류와 거의 동일합니다.

달성가=야심가
모험가=긱
채팅족=일반사람
킬러=비윤리적 인간(범법자 등)

여기서 현실에서 발생하는 첫 번째 문제가 나타납니다. 바틀러의 논문은 여기서 끝나지만 저는 각각의 유형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양한 수치로 구현하여서 시뮬레이션을 돌렸습니다. 수백가지의 시뮬레이션을 돌렸는데, 모든 시뮬레이션의 그래프는 거의 동일한 그래프를 그립니다. 초기엔 수다쟁이가 시너지를 일으켜 전체 인구가 증가하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수다쟁이를 사냥하는 킬러의 증가로 인해서 수다쟁이의 수가 급감하고, 결국 게임의 인구는 망가지게 됩니다. 킬러는 아무리 적은 수를 넣고 적은 가중치를 적용하여도 결국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다쟁이가 전멸 상태에 이르면, 그 다음엔 달성가, 킬러, 모험가 순으로 게임의 인구는 전멸하게 됩니다.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인들을 사냥하는 살인자, 사기꾼, 비윤리적 권력자 등에 의해 일반인들이 고통받게 되면 사회 전체의 불만이 커지게 됩니다. 그만 두고 다른 게임을 찾으면 되는 게임과 달리 현실은 그렇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사회적 불만은 끝을 모르고 커지게 됩니다.

결국 성공하는 MMORPG의 디자인이란 이러한 관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유형을 차지하는 사람이 서로에게 시너지를 발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행복한 사회란 구성원 각자가 각자의 방법으로 행복을 방해받지 않고 추구할 수 있는 사회겠죠. 최근 성공한 WOW의 경우 유저에게 달성가 형을 강요하고, 킬러와 모험가, 수다쟁이가 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초기엔 킬러가 적절한 수준의 장애물로 사용되었지만 서버 부하를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결국 킬러가 끼어들 공간을 줄여나갔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꾸준히 유저가 증가하는 추세를 그리긴 했지만 수다쟁이가 사라진 세계는 결국 활력을 잃고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유저가 게임을 고르는 것도 정치와 유사합니다. 유저는 게임 홍보사의 홍보 문구를 보고 게임을 고릅니다. 국민들도 정치인의 정책을 보고 정당과 정치인을 고릅니다. 홍보사의 문구와 게임이 전혀 다르고 재미도 없다면 게이머들은 그 회사 자체에 신뢰를 낮게 줍니다. 결국 어처구니 없는 홍보 문구를 사용한 게임은 점점 도태되고, 나름대로의 개성을 갖춰서 일부의 사람이라도 재미를 느끼는 게임만 남게 됩니다. 국민들도 정치인의 정책과 실제 행보가 전혀 다를 때, 정당과 정책에 대해 신뢰를 낮게 줍니다. 그런 일이 많아질수록 해당 정당은 점점 도태되고, 정상적인 정책을 향한 행보를 펼치는 정치인과 정당만 남게 됩니다. 어떤 게임 회사도 유저가 말하는데로 게임을 만들지 않습니다. 참고할지언정, 그대로 만들면 게임 망하는 건 분명하니까요. 모바일 선거의 문제죠. 유저들은 게임 회사가 망하든 말든 관여하지 않습니다. 모든 책임은 게임회사가 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저의 제안에 대한 선택 여부는 전적으로 게임 회사에 있습니다. 유능한 게임 회사는 좋은 제안만 받아들이겠고, 무능한 게임 회사는 나쁜 제안만 받아들이겠죠. 결국 장기적으로 게임의 수준은 높아지고, 유저들은 더 수준높은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좋은 게임을 만들려면 유저의 말에 휘둘려선 안 됩니다. 스스로의 실력과 재능에 맡겨야 합니다. 스스로의 실력과 재능으로 재밌는 게임을 만들 확률이 10%면 10개의 게임 회사 중 1개는 재밌는 게임을 만듭니다. 그러나 유저에게 맡기면 100% 망합니다. 게임 디자이너는 여러유형의게이머들이 자신만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라고 월급 받아먹는 것이죠. 국회의원들 그 많은 월급 받는 이유가 그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