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유난히 정치 개혁을 강조했다. 사실 정치 개혁은 양날의 검과 같은 거다.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개념이지만 동시에 모호하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정당 정치의 소양이나 경험이 없는 제3세력이 정치 개혁의 슬로건을 남용했다가 빠르게 몰락한 과거의 경험도 있다. 안철수가 말하는 정치 개혁은 그러한 한계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안철수의 인터뷰, 책, 기타 여러 자료를 종합해 봤을때 안철수는 "정치 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현 정치를 진단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정치가 사회의 요구를 담아내고 문제를 교정하는 제도로서 온전히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된 원인으로 특히 당파성, 정치적 흑백논리를 들고 있다. 이번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도 강한 어조로 네거티브 선거전, 극단적인 편가르기 논리를 비판했다. 

비교적 정확한 진단이지만, 만약 이에 대한 안철수의 인식이 "당파성은 나쁘다"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걱정이다. 왜냐하면, 한국 정치에서 "당파성"이라는 것도 사실 한꺼풀 벗겨보면 더 근본적인 요인이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소위 진보, 개혁 진영의 무능이라는 요인이다.

진보 개혁 진영의 무능이 한국 정치의 과도한 당파성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사실, 한국 정치에서 지금과 같이 극렬한 증오의 정치, 말의 정치가 본격적으로 창궐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때부터였다. 그 전에도 상대를 좌파나 파쇼로 매도하는 색깔론이 있었지만 모든 사안, 모든 정책에서 철저하게 편을 가르고 논리보다 당파를 과도하게 앞세우는 경향성은 노무현 때부터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당파성은 민주 정치의 필연적인 당파성 혹은 다양성과는 구별해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정당과 자본주의 정당이 대립하는 것을 부정적인 의미에서 당파성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것은 민주정치의 이념적 다양성에 속하는 영역이다. 노무현 때부터 대두한 당파성이란 실제로는 정책적 차이가 별로 없는 정치 집단이 권력 쟁취를 위해서 모든 사안을 분쟁화, 정치화, 극렬화 하는 일종의 정치문화적 경향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당파성의 정치 문화를 먼저 시작하고 퍼트린 것은 보수세력이 아니라 당시의 집권 세력인 열린우리당, 그리고 친노 집단이었다.

이러한 경향성은 과거의 정치 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거기에는 인터넷에 기반을 둔 정치 문화와 신문이나 책과 같은 구미디어에 기반을 둔 정치 문화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정치적 대립은 정치적 철학과 이념의 대립을 큰 축으로 하여 거기서 뻗어나온 정책이나 인사를 두고 전위(뱅가드) 싸움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시대의 정치적 대립은, 인터넷 시대의 일종의 포스트 모던 정치 투쟁이라고나 할까, 뱅가드 사이의 투쟁만 있을뿐 그 전제로서의 이념이나 정치 철학의 대립은 오히려 모호한 측면이 강했다.

이것은 노무현 집권 세력이 정치적 정체성에 있어서 한나라당과 별 다를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정체성이란 어떤 말이나 글로 드러나는, 표현된 정체성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노무현 집권세력은 시민단체, 486, 영남 친노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은 경제적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 기층 민중보다는 차라리 한나라당쪽에 가까웠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이해관계라는 것은 "선거 승리"밖에 없었다. 즉, 그들이 대의한다고 자부하는 기층 민중과 그들 사이에는 정치적 파이프 라인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한나라당에 대한 정치적 비교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구별의 언어"가 필요했다. 기층 민중과 아무런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은 집권세력은 보수 경제 관료에게 끌려다녔고, 그로 인한 양극화 해소와 서민 경제의 도탄에 대해 스스로를 변명할 언어와 논리가 필요했다. 그러한 구별의 언어로 내놓은 것이 "정당민주주의" "정치 개혁" "지역주의 해소" "과거사 청산" "친일청산" "권위주의 타파"와 같은 사회문화 리버럴의 언어와 구호들, 그리고 "조중동"를 주요 타겟으로 한 증오의 구별짓기 였다. 그리고 이러한 당파성이 진보 개혁 진영에게 끼친 해악은 이루 말로 할수가 없다.  

그러므로 안철수가 정치 개혁을 위해 가장 먼저 할일은 정당의 대의 시스템을 원상 복귀 하는 일이다. 그것은 대의에 있어 명목과 실질을 일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면 말로만 그것을 주장할것이 아니라, 실제로 중산층과 서민을 대의하는 사람이 정당에서 지분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노조일수도 있고, 자영업자 협회일수도 있고, 중소기업 협회일수도 있다. 지금 처럼 아무런 대의의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지 않은 "직업이 정치"인 사람들로만 구성된 선거용 떳다방 정당, "편가르기의 영구 기관"은 안된다. 구체적인 정책 청사진, 사회공학(소셜 엔지니어링)은 그 다음의 문제다. 다시 말해 톱다운의 정치가 아니라 다운톱의 정치, 그리고 "정상 정치"를 해야 한다. 안철수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일단은 판단을 유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정치를 소셜 엔지니어링의 차원에서 보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 물론 그는 486 떳다방 정치인들로부터는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그 자리를 "리버럴 엘리트"로 채울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