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소년님의 본글과 이에 따른 댓글들을 보고,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정치성향, 유전자, 그리고 아크로 : http://theacro.com/zbxe/?mid=free&page=2&document_srl=634423)

 

일반적으로 서민, 중산층, 지배계급의 비중을 <60 : 30 : 10>으로 가정해보면, 투표를 통해서 나타나는 정치적 성향은 좌파적 선택이 항상 압도적으로 다수여야 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자본과 임노동의 대립이 격화되고 이에 따라서 노동대중(서민대중)의 계급의식(정치의식)이 점차적으로 각성되어 간다고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당연한 결과여야 한다. 혹은 적어도 역사적으로 지속적으로 좌파적 선택의 절대적 비중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주장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와 마찬가지로 노동대중(서민대중)의 계급의식의 경향적 증가 또는 이를 반영하는 좌파적 선택 비중의 증가 현상은 분명한 형태로 목격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진보 대 보수'라는 개념보다 '좌파 대 우파'의 개념이 보다 정확한 것 같으므로 이 표현을 사용함)

 

이는 합리적 선택을 가정하고 있는 주류경제학이나 도킨스류의 이기적 유전자론에 비추어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좌파정부가 우파정부보다 서민대중 혹은 중산층에 정치적, 경제적으로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대세적인 선택은 우파정부가 우세한 것으로 귀결된다. 개인의 정치적 선택이 여러 가지 복잡한 의사결정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고 해도, 적어도 좌파적 선택이 많은 경우 우세를 형성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많은 경우 우파가 우세를 점하고 있는 결과를 보인다. (서민대중의 계급의식(정치의식) 각성이 덜되어서 그렇다라는 계몽주의적 사고는 책임을 전가하는 구차한 변명에 불과해 보인다.)

 

 

필자는 1차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특정한 집단의 유전자(혹은 유전자군)와 이에 따른 구성원의 정치적 성향의 분포를 직관적으로 보면 좌파 : 중도 : 우파의 비중이 <37 : 30 : 33> 정도로 구성된다고 본다. 37 30 33은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수치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나온 수치는 아니다. 진화론에서 도킨스류의 유전자 수준 선택론과 대립하고 있는 (이기적 유전자 수준 선택을 포함하는) 다수준 선택론(혹은 집단선택론)으로부터 유추된 것이다.

 

특정한 집단의 정치(집단의 대외적 문제와 대내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 집단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배분하는 의사결정)적 성향이 유전자적으로 <대부분의 구성원이 우파인 집단><대부분의 구성원이 좌파인 집단>, 그리고 <좌파, 중도, 우파의 구성원이 정규분포를 보이는 집단>을 비교할 때 정규분포를 보이는 집단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다면, 집단 구성원들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유전자 빈도가 정규분포를 보이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집단 내의 서민대중 60%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좌파적 선택이 자신에게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는 그러한 선택을 하는 구성원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존하도록 유전자 빈도가 결정되는 집단 수준의 선택압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 정규분포를 보인다면, 예를 들어 좌파 : 중도 : 우파의 비중이 <35 : 30 : 35>이 되어야 하겠지만, <37 : 30 : 33>으로 우파적 성향의 비중이 상대적 많은 이유는 좌파적 의제는 주로 집단 내부의 구성원과 관련된 문제가 많고, 우파적 의제는 주로 대외적인 문제와 관련된 경우가 많으며, 특정한 집단의 괴멸적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요소들은 주로 대외적인 문제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대외적인 문제와 관련된 부분에 상대적으로 조금 더 많은 자원이 배분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자신이 좌파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비주류의 삶을 살 각오 혹은 적당히 타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결국 정규분포를 조금 벗어나는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중은 항상 역사적으로 '중도'를 실현한다. 대중은 시대적 과제에 맞게 우파와 좌파 정치인이나 정당을 번갈아 선택하고 그 결과로서 '중도'가 실현되고 사회가 발전한다. 우파는 어쩔 수 없을 때 좌파의 의제를 받아들이면서 변화한다. 단순하게 과거의 주도적 우파의 입장에서 현재의 주도적 우파를 보면 급진좌파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중도를 실현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은 존재하기도 어렵지만, 존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1차적, 유전자적으로 결정되는 집단 구성원들의 정치적 성향은 주어진 대내외적 환경(문화)에 따라서 변형된다. 해방 이후 남한의 정치사에서 우파가 극도로 우세했던 것은 누구나 알다시피 북한이라는 과거에는 좌파적 위협,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남한이라는 집단을 괴멸시킬수 있는 대외적 위협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그러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성향이 균형을 찾아간다고나 할까. 한반도에서 적어도 남한은 북한의 존재까지도 고려된 균형상태를 유지해 왔으며, 앞으로도 통일이 될 때까지는 그러한 성향이 잔존될 것으로 보인다.

 

 

직관적인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1차적인 좌파 : 중도 : 우파의 비중이 <35 : 30 : 35>이라고 가정하고, 투표에서 나타나는 영남의 우파적 선택의 비율을 70%, 호남의 좌파적 선택의 비율을 90%라고 가정(이 부분은 피노키오님이 언급했던 것을 차용함)하고 이에 따른 영남과 호남의 정치적 성향을 기계적으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영남에서 우파적 선택 70% 중에 우파적 기질에 따른 우파 선택이 35%이고, 중도층 30%는 모두 우파적 선택을 하고 좌파적 기질을 가진 5%도 기질과 어긋나는 우파적 투표를 한다. (여기서 기질과 어긋나는 투표가 발생하는 것은 설명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어느 정도 조정된 결과이다. 예를 들어 좌파, 중도, 우파의 비중을 <40 : 20 : 40>으로 가정하거나 <40 : 30 : 30>으로 가정하는 경우에는 기질 배반 투표가 발생하지 않는다.)

 

영남에서는 통상적이라면, 투표에서 좌파적 선택을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중도층의 절반인 15%와 좌파적 기질의 5% 합계 20%가 지속적으로 우파적 선택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우파적 의제는 많은 경우 '애국주의'와 관련되는데 이것도 정상적인 우파 35%를 설명하는 것으로 특별히 영남이 애국주의적인 문화가 상대적으로 우세하다고 볼만한 역사적 연원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닝구님들이 주로 이야기 하는 영남 패권주의에 따른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참고로 필자는 조상님들이 후손들이 명절 때 편하라고 지겟다리를 잘 내려놓은 수도권 출신임)

 

 

호남에서는 좌파적 선택 90% 중에 좌파적 기질에 따른 좌파 선택이 35%이고, 중도층 30%가 모두 좌파적 선택을 하고 우파적 기질을 가진 25% 조차도 기질과 어긋나는 좌파적 투표를 한다. (영남과는 다르게 합리적으로 어떤 수치를 가정해도 호남에서는 기질과 어긋나는 투표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호남에서는 통상적이라면, 투표에서 우파적 선택을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중도층의 절반인 15%와 우파적 기질의 25% 합계 40%가 지속적으로 좌파적 선택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40% 중에서 단순하게 영남의 20%와 대비하여 호남의 20% (저항적) 지역주의 투표 성향으로 가정한다면, 그래도 남는 나머지 20%는 뭘까요? (보다 정확하게 분석하려면, 투표 비율과 더불어 인구수나 투표자 수, 그리고 다른 지역의 정치적 성향까지도 고려를 해야 하겠지만, 시간이나 능력이나 관심이 여기까지 허락하는 관계로………..)

 

결론적으로 이는 광주민중항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정치적 각성 때문으로 보인다. 좌파적 의제의 대부분은 불평등을 개선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좌파적 정치적 각성은 그것 자체로 역진성이 거의 없다.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좌파적 의제가 실현되어, 즉 특정한 형태나 수준의 불평등 문제를 우파조차도 받아들여서, 이것이 집단사회의 전반적인 의식 수준으로 표준화되면서 해소되는 과정을 따른다.

 

 

좌파적인 기질을 갖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영남의 우파적 투표성향에 대한 개선은 호남에 미치지 못하는 적어도 20%에 해당하는 부류의 정치적 각성이 관건이다. 그리고 영남의 정치적 각성은 어차피 광주민중항쟁과 같은 전면적인 경험이 가능하지 않은 현재 상태에서는 원론적인 이야기 이기는 하지만, 재벌개혁이나 복지정책과 같은 좌파적 의제와 이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미시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일로 보인다. 영남에서 민주당 국회의원 몇 명이 더 나오거나 영남출신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이것이 영남에서 좌파적 의제와 결합된 정치적 각성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