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진보를 생각한다(김창호)> 서평

-조중동과 가장 처절히 싸운 戰士의 성찰과 대안이 담긴 묵직한 책-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김창호 전국정홍보처장이 동녘 출판사에서 <다시 진보를 생각한다>라는 책을 냈다. 11월 10일 저녁에는 출판기념 토론회를 했다. 나는 박순성 교수, 정상호 교수, 김민전 교수와 함께 토론자로 나갔다. 이 글은 그 토론 요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355면짜리 정치 비평서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사회정치철학적인 현실비평서’다. “우리 사회의 근본 프레임을 바꾸는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한 교과서를 쓰고 싶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절절한 소망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책 <노무현 이후-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미처 답을 쓰지 못하고 간 난제(과제)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답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실 정치 분야에서는 민주당의 혁신, 국민참여당, 시민주권 모임, 민주통합시민행동 등이 그 답안으로 제출된 것 일 텐데, 글쎄 노전대통령이 채점을 한다면 몇 점이나 줄지?? 내 예상으로는 아무래도 점수가 좋게 나올 것 같지가 않다. 내가 관여하고 있는 책이나 담론 분야 점수는 모르겠다.

 

참여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사람들이 낸 책은 적지 않다. 2009년에 출간된 책 중에서 기억나는 것은 이렇다. 김병준 전정책실장의 <지방자치론>, 이용섭 전장관/의원의 <초일류 국가를 향한 도전(2009.9)>, 정세균 대표의 <정치 에너지 -더 진보적이고, 더 민주적이며, 더 서민적으로-(2009.9)>, 이병완 전비서실장의 <박정희의 나라 김대중의 나라 그리고 노무현의 나라(2009.9)>, 유시민 전장관의 <후불제 민주주의(2009.3)> <청춘의 독서(2009.10)> 등이 있다. 정치적 급은 좀 떨어지지만 강동원 전감사의 <공기업 판도라의 상자1,2(2009.9)>도 있다. 이 중에서 이른바 친노로 불릴 정도로, 노대통령과 철학, 가치, 정서도 비슷하고, 정치적 운명도 함께하다시피 한 사람은 김병준, 이병완, 유시민, 김창호 정도다. 김병준의 책은 대학 교재이며, 유시민의 책은 대중 정치 교양서라고 보아야 한다. 애초부터 지식사회나 진보개혁 리더들을 주 독자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병완의 책은 참여정부에 대한 변호, 노대통령과의 추억, 자신의 연설문 등을 짜깁기 한 책이다. 그런데 김창호의 책은 참여정부에 대한 성찰과 진보 혁신(재구성)의 길을 수미일관한 논문적 체계로 서술했다. 집필 기간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3~4년은 되어 보인다. 책에서 다룬 주요 화두를 머리 속에서 그 기간 동안 계속 이고 다녔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게 중에는 10~20년간 다듬고 숙성시킨 생각도 보인다. 몇 페이지만 들춰봐도 엄청난 땀(통계, 자료, 고증, 깊고 넓은 독서 등) 냄새와 사색의 냄새가 난다. 주 독자층도 일반 대중이 아니라 최상층 독자층; 지식 사회와 진보개혁 리더들이다.

 

이른바 친노 인사가 낸 책으로서 상층 독자층을 대상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면서, 논문적 체계를 가진 정치비평서는 2007 2월에 낸 조기숙 수석비서관의 <마법에 걸린 나라>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때가 때인지라 참여정부에 대한 부당한 폄하에 대한 억울함, 진보 진영에 대한 답답함과 서운함 등이 강하게 묻어나다 보니 성찰과 대안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이래 저래 김창호 처장의 <다시 진보를 생각한다>는 참여정부(친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사들이 낸 책 중에서 격이 다른 책이다. 그 메시지가 옳든 그르든……

 

책의 핵심 메시지는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만드는 사업을 진보의 중심에 놓자는 것이다. 즉 진보 에너지를 제도권 내 정당 활동으로 축소시키지 말고, “생활세계의 진보적 재구성”으로 확장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자는 것이다. 그 근거지는 “진보적 시민공동체”이다. 요컨대 “진보적 시민공동체운동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하방정치’(지역 정치, 지방선거 등)”를 전개해 나가자는 것이다.

 

김창호의 주장을 축구에 빗대서 얘기하면, (다른 담론들이 전술, 기술 강화론 이라면) 이는 기초 체력 강화론 이라고 할 수 있다. 히딩크 감독이 2000~2001년에 강조한 그것 말이다.

 

진보의 기초 체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런데 이것이 축구로 치면 전술.기술.팀워크 등에 해당하는 가치, 비전, 전략, 정책, 정무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데까지 나간다면 곤란하다. 사실 참여정부 인사들은 대체로 ‘(참여정부는) 최선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보개혁 세력의 힘 내지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기르는 것이 진보 부활의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말한다. 김창호의 얘기도 크게 보면 이런 범주에 속한다. 적어도 전술.기술을 경시하고 기초 체력 강화에 치중하자는 얘기로 오해 받을 소지가 있다.

 

어쨌든 내가 현실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린지 모르지만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그리고 지금의 제 진보개혁 정치세력 공히 전술.기술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 단적으로 참여정부에 대해 말한다면, 그 처지가 도덕주의라는 무기를 주요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열악한 상황이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쓸 수 있는 무기는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모르는 사람(좌파)들의 멋진 정치적 상상-대폭적인 증세와 복지 재정 확충, 지지 층에 대한 각종 물질적 이익/이권 제공 등-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우리 나름의 거래 정치 내지 이익 정치(以夷制夷 정치) 여지는 컸다고 생각된다. 단적으로 학교 시스템을 약간만 바꿨다면 꽤 괜찮은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교장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금 보다 훨씬 합리적인 교원 평가 시스템도 도입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외고, 특목고로 인한 사교육비 고통도 훨씬 경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비록 어리석기 짝이 없는 전교조가 극력 반대했다 하더라도…… 또한 정부조달 시스템을 개혁하여 대기업이 아닌 벤처중소기업을 훨씬 많이 배려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인생을 고시원 쪽 방에서 소모적으로 불사르는 청년들의 숫자도 훨씬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나치게 높은 대학진학률도, 청년 실업률도, 3비층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한국의 강고한 반동적 경제사회 구조와 지극히 높은 기대. 요구 수준을 감안 할 때 보수로의 정권 교체를 막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하더라도, 진보가 이 정도로 사분오열, 지리멸멸, 앞날 캄캄 하게는 되지 않을 방법은 있었다고 생각된다. 노무현이 부엉이 바위 위에 서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이런 생각=가설을 <진보와 보수를 넘어>(2007), <희망한국프로젝트>(2007), <노무현 이후> 등에 담았다)

 

길게 내 우려를 서술하긴 했지만 확신컨대 김창호의 핵심 메시지는 배타적인 기초 체력 강화론(전술.기술 무시론)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다양한 활동 없이, 즉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운동 이나 자기 헌신 없이 오로지 노무현을 팔면서 그 추모 에너지를 제도권 내 정당 활동 또는 상층 정치 활동에 매진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또한 낮은 곳으로 하방해서 긴 호흡으로 새로 시작하자는 것일 것이다. 진보 운동과 진보 정치의 기본을 충실히 하자는 것일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나는 진보 운동 혹은 진보 정치의 기본은 상층 정치를 멀리하고 낮은데로 임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참여정부 고위 인사들이 지방선거에 대거 나오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기본에 충실한 정치는 대중이 절실히 염원하지만, 정치 세력(지도자들)이 힘들어서 잘 안 하거나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대중운동이 그 하나다.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성과, 한계, 오류를 정확하게 평가 반성하는 것도 하나다. 거대하고 복잡한 한국 사회의 모순.부조리 구조와 나아갈 길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도 하나다. 노무현이 대중들에게 감동을 준 그 기풍; 진정성, 책임성, 치열한 탐구성, 두터움, 대의에 대한 사심 없는 헌신 등을 구현하는 것도 하나다.

 

나는 김창호 처장의 책에 흐르는 정신과 대체적인 방법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지방 선거(정치)와 시민공동체를 너무 중시하는 듯한 입장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지방 선거는 악전고투를 하더라도 수많은 진보의 정치 인재들이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할 전장은 맞지만, 마오쩌뚱이 농촌을 석권하여 도시를 포위하는 방식처럼, 지방 정치를 석권하여 중앙 정치를 변화시킨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다 아는 얘기지만, 보수 정치세력은 재정과 이권이 흐르는 길(지역=선거구) 주변에 집중 포진해 있다. 따라서 지역, 특히 감시가 느슨한 (수도권에서 먼) 지방에 뿌리가 깊다. 보수 정치 세력은 지역에 뿌리내린 토건업자와 자영업자의 상층을 기반으로 하기에 지방 선거에는 특별히 강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진보는 공적 가치가 흐르는 길 주변에 집중 포진해 있다. 이 길은 주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에 모여서 와글와글 웅성웅성 대며 공적 가치를 공유한다. 따라서 진보는 관심이 전국구다. 아니 코스모폴리탄이다. 당연히 지역에 이해관계도 적고, 관심도 적다. 대도시의 경우 수틀리면 이사해 버린다. 따라서 광역단체장, 시장, 군수, 구청장이 누가 되든 얻을 이익이 상대적으로 적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보수 이익집단(업자들)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엄청난 물질적 이익이 왔다 갔다 한다. 게다가 한국의 지방권력은 상대적으로 약하기에(교육, 조세, 경찰, 검찰 관련 권능, 주요한 규제권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다) 지방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는 지방 정치에서 조직된 이익집단의 입김이 강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래서 지방은 시간이 흐르면서 영.호남을 가리지 않고 재정과 이권을 쫓는 토호들의 비중이 점점 높아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보가 지방자치를 포기해야 한다거나, 지방자치의 권능을 왜소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진보 정치에 불리한 구조를 감안하여 더 현명하게 대처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선거판(선거구)을 작게 하기 보다는 크게 하는 것이 그 하나다. 단적으로 한국은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는 구의원, 시의원, 도의원 선거 보다는 인터넷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댈 수 있는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광역단체장 선거, 시장선거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를 감안하면 진보는 가능하면 판을 키워야 한다. 선거구든, 권능이든……

 

김처장이 강조하는 핵심 문제의식은 공정무역 운동 같은 시민운동을 발전시켜, 무수히 많은 참여자, 지지자를 조직하여 하나의 해류를 만들어, 노동당과 보수당이라는 배를 태우고 가는 영국 시민운동의 사례로 뒷받침했더라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말과 글만 가지고 본다면 노전대통령과 친노 인사들은 선비적 문제의식이랄까 선비적 명분 정치에는 투철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상인적 현실 감각이랄까, 상인적 거래/이익 정치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나는 김창호 처장의 ‘아래로 내려가자’, ‘기본에 충실하자’는 주장이 상인적 거래/이익정치와 결합하면 훨씬 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진보의 미완의 큰 정치 전략; (민주주의, 공화주의에 더하여) 자유주의, 시장주의의 합리적 핵심 흡수,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을 선도하는 벤처중소기업과 지식근로자의 결집, 3비층의 견인, 철학, 가치 측면에서 진보의 (중도로의) 확장=유연화 등도 강조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이 책은 현재까지 나온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의 저작 중에서 가장 공력이 많이 들었고, 메시지도 가장 묵직한 책이다. 또한 보수의 핵심 조중동과 가장 처절히 싸운 전사의 성찰과 대안이 담긴 가치있는 책이다. 대한민국과 진보의 앞날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꼭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