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pedia(http://en.wikipedia.org/wiki/Phrenology)에 따르면 골상학은 18세기 말에 시작되었으며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

 

a.       That moral and intellectual faculties are innate(도덕적, 지적 능력들은 선천적이다)

b.      That their exercise or manifestation depends on organization(그런 능력들의 실행 또는 발현은 조직에 달려 있다)

c.      That the brain is the organ of all the propensities, sentiments and faculties(뇌는 모든 성향들, 감성들, 능력들의 기관이다)

d.      That the brain is composed of as many particular organs as there are propensities, sentiments and faculties which differ essentially from each other(뇌는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성향들, 감성들, 능력들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특정한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다)

e.      That the form of the head or cranium represents the form of the brain, and thus reflects the relative development of the brain organs(머리 또는 두개골의 모양은 뇌의 모양을 반영하며 따라서 뇌의 각 기관들의 상대적 발달을 반영한다)

 

 

 

“phrenology”의 어원을 따져보면 “마음에 대한 지식”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것이 한국에서는 “골상학(骨相學)”이라고 번역된다. 이 번역어는 골상학에게는 불행이다. 왜냐하면 골상학의 여러 명제 중 하나(e)만 두드러져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명제가 엉터리라는 것이 지금은 명백해졌다.

 

따지고 보면 골상학이라는 번역어의 역할이 그리 컸던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영어권에서도 골상학 하면 보통 마지막 명제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으며 사이비과학의 대표 주자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나는 골상학에 사이비과학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것이 골상학의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부차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a, b, c, d가 골상학의 핵심 명제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b와 c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천명한 것이다. 마음이 어떤 신비로운 작용 때문이 아니라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임을 명시한 것이다. 이것이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겠지만 여전히 종교가 과학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던 18세기라는 시점을 고려하면 이 자체로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a는 인간의 정신적 본성에 대한 선천론을 표명하고 있다. 그리고 d는 대량 모듈성(massive modularity) 테제와 비슷하다. 이 두 테제는 Cosmides & Tooby를 중심으로 한 진화 심리학의 핵심 테제들에 포함된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학자들이 거부하는 테제들이기도 하다. 즉 여전히 논란거리인 문제에 대해 골상학자들은 Cosmides & Tooby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나의 관점에서는 200년 앞을 내다 본 선견지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도덕적 능력이 선천적이라는 골상학자의 주장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20세기의 심리학계는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극단적인 선천론을 취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인간의 양심 메커니즘이나 죄책감 메커니즘은 시각 메커니즘만큼이나 선천적이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심지어 여러 기본적인 규범들 – 예컨대, “강간은 나쁘다”, “정당한 이유 없이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나쁘다”, “살인은 나쁘다” – 도 선천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양적인 판단 – 예컨대, “강간은 웬만한 폭행보다 나쁘다”, “살인은 강간보다 나쁘다” – 도 선천적이라고 본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자연 선택에 의해 주조되었다고 본다. 물론 이런 나의 입장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앞으로 내가 풀고자 하는 과업이다.

 

다른 쪽 극단에는 행동주의 심리학이 있다. 행동주의에 따르면 죄책감 메커니즘도 선천적이지 않다. 그것은 부정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의 산물이다. 물론 규범도 후천적인 교육의 산물이다. 양쪽 극단의 중간에는 죄책감 메커니즘은 선천적이지만 규범은 후천적이라고 보는 식의 입장이 있다. 골상학자들은 이런 스펙트럼에서 선천론의 입장을 취한 것이다.

 

대량 모듈성 테제와 관련된 스펙트럼을 살펴보자. 한편으로는 Cosmides & Tooby를 중심으로 한 극단이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수백, 수천 개의 선천적 모듈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쪽 극단에는 빈 서판론이 있으며 그 입장에 따르면 뇌에는 몇 가지 예외(시각, 청각, 성욕, 식욕 등)를 제외하면 오직 학습 메커니즘만 있을 뿐이다. 골상학자들은 이 논쟁에서 대량 모듈성의 테제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골상학에는 세 가지 부류의 명제들이 있다. b와 c처럼 현대 과학에서는 당연시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당연해 보이지 않았던 명제들이 있다. 그리고 e처럼 당시에는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지만 현대에는 과학계에서 무시당하는 명제가 있다. 그리고 a와 d처럼 현대에도 논란이 되고 있는 명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만 부각해서 골상학을 사이비과학의 전형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부당하며 가혹한 평가다.

 

라마르크의 진화론을 구성하는 명제들 중에서 “생물이 진화했다”는 명제 빼고는 건질 것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마르크를 사이비과학자의 전형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학역사가들은 라마르크를 비롯하여 다윈 이전에 활동했던 진화론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윈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는 골상학이 라마르크의 진화론보다 건질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평가를 해 주어야 한다.

 

 

 


2009-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