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hina님의 반론(http://www.skepticalleft.com/bbs/board.php?bo_table=01_main_square&wr_id=68401)에 대한 반박을 중심으로(산마로님 포함)

1. 입헌주의 민주주의 개념과 관련하여

일단 헌법적 논의는 접어두고 athina님의 견해 그러니까 헌정적 자유주의(자유주의+법의 지배)와 민주주의  개념을 가지고 비판을 해보고자 합니다.

일단 헌정정 자유주의에 대해서 athina님은 [견제받는 권력-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공평한 룰에 의해 통제할 수 있는 권력, 사법권의 독립, 자본주의(시장 경제), 타인으로부터의 신체와 생명의 불가침]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라고 표현하고 있죠.

먼저 athina님이 쓰시는 민주주의 개념부터 분석해 보도록 하죠. 다수의 지배라는 형태의 민주주의는 사실 극히 편협한 이해에 해당됩니다. 왜냐하면 다수의 지배는 결국 루소식의 민주주의론 그러니까 인민주권론을 전제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다수결의 원리는 민주주의의 운영원리로 다수의 지배와는 다른 의미임) 그리고 루소식의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로 이어졌고 그것은 곧 권력분립을 부인하는 논리와 연결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동시에 이것은 사회주의국가에 민주주의의 정의로 쓰이는 개념이죠. 사회주의국가가 권력집중을 택하는 이유도 다 이러한 루소식 직접민주주의론에 근거하여 복수정당을 부정하고 일당독재를 하기 위함이죠. 왜냐하면 의사결정있는 인민의 다수(이론적으로는 민중계급이 되겠죠)가 결정한 현실적 의사가 일반의사이고 그 인민의 단일한 의사만 존중되면 되기 때문이죠. 동시에 다수의 지배는 나치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던 상대 민주주의와도 통하는 의미입니다. 민주주의에는 어떤 구속적 가치도 없고 오직 다수에 의해 결정은 항상 옳다는 이론을 말합니다. 나치가 다수의석을 차지한 이후 모든 정당을 해산하고 일당독재를 하고 유태인을 무차별하게 죽여도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게 바로 상대 민주주의론이죠.

그에 비해 영미프랑스 헌법학계 통설에서 말하는 민주주의개념은 기본적으로 로크나 시에스식의 국민주권 그러니까 대의제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권력분립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정의할때 민주주의는 "정당성의 원리"를 의미합니다.(국가권력의 창설과 그 행사되는 권력의 최후적 정당성이 국민의 정치적 합의인 자유 평등 정의에 귀착되는 통치원리) 대의제가 기관구성권과 정책결정권을 분리하고 자유위임을 그 개념본질적 요소로 할때 민주주의는 당연히 "정당성의 원리"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결합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인 것입니다. 제가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를 말할때 항상 국민주권과 대의제원리를 강조한 것입니다. 이러한 민주주의 개념하에서 권력분립 기본권보장과 같은 자유주의적 내용과 결합이 모순없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민주권론 국민주권론논의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그 결론만 적었습니다. 질문을 하시면 구체적으로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산마로님이 의회제도=대의제도=국민주권 연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셨는데 여기서 의회제도는 의회주의라는 독특한 영국의 헌정을 쉽게 표현한 것으로 명예혁명 이후 버크나 블랙스톤에 의해 완성된 대의제론과 영국헌정사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초창기 의회는 사자나 단순대리였지만 버크나 블랙스톤의 대의제주장에 의해 대의(또는 대표)로 바뀐거죠. 아무튼 제가 쓴 주장은 통설적 주장입니다.

여기서 athina님이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이지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athina님이 말하는 민주주의 그러니까 다수의 지배(상대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에 의하면 박정희의 모든 행위는 민주주의적인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치의 모든 행위도 다수의 지배논리에 의하면 정당한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정선거든 머든 선거에 의해 당선이 되었고 또 유신헌법도 국민투표도그 구체적인 과정이 어떠하든 90프로 이상으로 통과되었기 때문이죠.(이런 주장을 한 것이 법실증주의자 였습니다. 사실의 규범적 효력 이런 말을 그런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죠.) 그리고 정작 박정희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를 다 파괴시켰음에도 athina님은 박정희가 오히려 입헌주의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결국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볼때 athina님의 주장은 정반대로 되어야 합니다. 박정희는 조금씩 발전되어가고 있는 자유민주주의헌정질서를 철저히 파괴시켰다 그러나 그의 모든 행위는 다수의 지배(국민투표상 다수가 찬성했음)였음으로 민주주의다라고 말입니다.

또한 athina님은 헌정적 자유주의에 대해 정적인 측면에서 기술적인 것으로 이해하다 보니 그 안에 같이 있는 민주적 요소가 녹아 있는 것과 그 형성과정의 동적인 측면을 놓치시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 권력분립이나 법치주의에 대한 단순 기술적 이해는 대통령이 사실상 국회의원을 다 임명하고 법관을 다 임명함에도 형식적으로 구분되어 있으니 괜찮다거나 아니면 실정법에 있으니 어떤 법도 가능하다는 실정법만능주의를 불러오게 되고 그런 생각이 실제로 나치와 같은 합법적 불법정부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죠. 최소한 국민주권과 대의제민주주의측면이 가미되지 못하면 그러한 것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즉 극우적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촛불집회나 용산시위에 대한 이해에서도 athina님은 그것이 직접민주주의 요소로 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은데 그러한 것은 직접민주주의적 요소가 아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직접민주주의가 가지는 진짜 위험은 공산당일당지배와 같은 것이지 촛불집회시위나 용산시위와 같이 국민의 일반적 정치참여가 아닙니다. 모든 정적을 제거하고 모든 정당을 해산시키고 모든 언론을 은밀히 통제해서 시민들의 자유로운 토론에 기초한 input작용을 봉쇄함으로써 의회내에서 서로 다른 정견이 표출되지도 또 깊이 토론되지도 못하게 하여 단 하나의 단일의사만이 마치 국민의 의사로 둔갑하는 것이 가장 큰 위험한 것이죠. 공산주의나 나찌주의자들이 했던 방식이 그런 거였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그 자유의 성격상 극우에서 극좌까지 모든 정치적 의견에 관용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루소식 직접민주주의는 오직 단일한 의사만이 존재해야 한다고 보아서 권력집중을 주장했던 것이고 그러한 단일한 의사를 결정하는 주체는 역사적으로 항상 스탈린이나 히틀러 나아가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 였습니다. 법치주의라는 자유주의요소가 오히려 자유로운 의사형성과 언론의 자유를 막는 용도로 쓰여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2. 역사적인 내용과 관련하여

athina님은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고대 그리스를 들 수 있다면, 헌정적 자유주의의 기원으로 로마 공화정('제한 정부'와 '법에 의한 지배')를 들 수 있습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도 athina님이 말한 민주주의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져. 그러나 근대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간접 민주주의(그 대표적인 것이 대의제죠)입니다. 결국 athina님의 주장에는 대의제적 요소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논지를 전개하고 있으신 거죠. 나아가 로마 공화정에서 최초의 성문법인 12표법이 나오고 시민법이 제정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귀족과 평민간의 평등한 권리확보노력에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평민이 자신들의 호민관(대표자)를 통해 보호받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죠. 여기에도 사상적으로 미약하지만 자유와 민주의 결합이 보입니다.(자유민주주의의 맹아정도로 볼 수 있겠네요. 왜냐하면 국민주권에 기초한 대의적 사상이 근대처럼 완성되지는 못했기 때문이져.) 그리고 귀족과의 투쟁도 그 궤를 같이하죠.(시민혁명기에는 군주와 일부대귀족 교황세력 등에 대한 투쟁이였죠.) 그리고 로마 공화정이 붕괴되어 가는 과정도 원로원 그러니까 귀족세력이 라티폰티움과 같은 대토지를 소유하고 점점 정치권력을 확대해가면서 붕괴되었죠. 즉 평민들이 오랫동안 계급전쟁에 의해 획득해 갔던 민주헌장이 공문이 되어 버린 것이죠. 이것은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그들 치하에 형성된 족벌재벌이 초창기 이승만장면에 의해 도입되었던 자유민주헌정을 몰락시켜가는 것과 유사하죠. 이제 로마는 드뎌 삼두정치를 지나 제정시대로 넘어갑니다. 박정희가 유신헌법 발표이후 전제적 대통령이 된 것과 비슷한 케이스이죠. 참고로 로마시대 로마법이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연법사상의 영향이 켰습니다. 그리스의 스토아학파에 그 사상적 연원은 있지만 실제로 구체화한것은 바로 키케로였습니다. 그리고 이 로마법이 나중에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대제에 의해 집대성되어 오늘날 민법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죠. 그리고 자연법과 관련된 사상적 흐름은 나중에 계몽주의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칩니다.

프랑스 혁명은 헌정적 자유주의 측면에서는 엄청난 퇴보로 보인다는 부분도 조금 그렇습니다. 이런 주장에서는 당연히 청교도 혁명도 엄청난 퇴보가 되어야 겠죠. 그러나 자유민주주의가 피흘림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믈론 혁명기에는 항상 오버슈팅이 일어납니다. 크롬웰(독립파)이나 로베스피에르(자코뱅파-그안에서는 중간)와 같은 급진파가 득세하기도 하죠. 그리고 이들은 오히려 독재를 하는 등 혁명의 진정한 대의를 망치기도 합니다.(자유민주주의에 역행)

일단 청교도혁명이후 크롬웰이 독재로 나간 것은 자신의 원래 대의를 저버린 것이었습니다. 즉 그는 원래 의화파내부에서 독립파에 속했던 인물임에도 같은 의회파인 장로파의원을 강제로 축출하고 나아가 의원 40명으로 구성된 잔여의회를 통해 찰스 1세를 죽이는 것에 이용하고는 해체해버립니다. 그 이후 새 의회를 만들지만 크롬웰파가 주동이 되어 자진해산함으로써 사실상 견제세력이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더구나 그의 독재로 인한 결과로 국민의 신임을 잃게 되고 그가 죽은 이후에 왕정복고를 불러 옵니다. 물론 기존의 청교도 혁명이 성과도 부분적으로 퇴색하죠. 그리고 기존의 왕당파가 득세하는데 이들이 국교회를 지지하는 토리당을 구성하고 과거 청교도혁명을 주도했던 청교도들이 휘그당을 만들어 최초의 정당(의회내 복수정당이 처음 나옴)을 만들게 됩니다.(우리나라는 지역적 이념적으로 갈라지는데 최초의 영국정당은 종교적 이념적으로 갈려졌죠.) 물론 말도 할 것 없이 찰스 2세는 과거 혁명전으로 돌려놓으려는 각종 정책을 취합니다. 하지만 청교도혁명이라는 자유민주적 헌정은 오히려 제임스 2세가 상비군을 도입하고 의회제정법을 무시하자 토리당 역시 왕을 비난하기 이릅니다. 왕위계승문제와 관련하여 토리당과 휘그당이 연합하여 메리를 지지하고 그 남편 윌리암부부가 군대를 이끌고 오자 제임스는 왕印을 템즈강에 버리고 프랑스로 망명함으로써 유혈없는 명예혁명이 이루어진 거죠. 이로서 영국은 명실상부하게 의회정치발전의 기초를 세우고 내각책임제가 도입되어 왕은 형식적 지위로 됩니다. 그 이후 버크와 블랙스톤에 의한 대의제적인 바탕하에 영국의 입헌정치는 이어지죠. 그 이후 영국은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선거권 확대 나아가 정권교체(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간)등을 경험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꽃을 피워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볼때 청교도혁명은 결코 자유민주주의의 퇴보가 아닙니다. 더욱이 athina님의 개념하시는 다수의 지배로서의 민주주의 즉 직접민주주의나 상대민주주의는 당연히 아닙니다. 오히려 청교도 혁명 명예혁명은 전형적인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크롬웰은 처음에는 자유민주주의자였지만 나중에 독재를 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배반한 것입니다. 마치 김영삼이 삼당3당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배반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국교회지지의 왕당파들이 과거에는 군주제를 지지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적이었지만 나중에 토리당이 되어서 휘그당과 합심하여 제임스2세를 몰아낸 것은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킨 것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한때 김종필(충청)이 박정희를 지지하므로써 자유민주주의에 적으로 있었지만 나중에 DJP연합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에 기여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진전시킨것과 같은 것입니다.(오늘날 박정희 지지도가 과도하게 높은 것은 과거 지역적으로 공화당이 영남+충청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재임기간중 언론을 통한 비판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비극적을 죽음으로써 그의 모든 행위가 몇십년간 불문에 붙여진 것도 그 이유겠죠. 나아가 현재 주류언론이 박정희를 밀고 있으니 당분간 박정희 신드롬은 계속 될 것 같네요. 하긴 스탈린 신드롬도 러시아에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산마로님은 영국에서 현실적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분리되었다고 하시는데 이것은 athina님의 개념으로 입헌주의를 정의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입헌주의에 대해 대의제를 전제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고 이 대의제하에서는 제한선거도 당연히 허용되는 것입니다. 다만 민주화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보통선거화되어서 점점 더 확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지금의 대의제는 다 보통선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즉 대의제하에서는 제한선거든 보통선거든 다 가능합니다. 그런의미에서 영국헌정사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설사 그것이 제한선거라서 어떤 면에서는 귀족적인 것이 보이더라도 과거 귀족정과 다른 것은 이미 그들 헌정의 근본정신이 국민주권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크가 대의제를 주장할때 그것은 로크식 국민주권론을 전제하고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헌정적 자유주의란 측면에서는 엄청난 퇴보였고 루이 16세의 왕정보다 혁명 정부는 훨씬 더 견제받지 않는 정부였다고 athina님을 말씀하시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봅니다. 솔직히 루이 16세때 평민들은 그들 수입의 50프로를 각종 세금명목으로 빼앗겼지만 혁명정부하에서는 그런 부분이 차차 개선되어갔기 때문입니다. 견제받지 않은 것은 그들이 저항권을 행사함으로써 국왕을 처벌하는데 있었을 뿐 인민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그들도 결국 법에 의해 견제받았습니다. 더구나 인권선언은 의회파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라파예트가 기초한 것입니다. 그리고 1791년 헌법은 시에스의 영향을 받아 대의제적 요소만 받아들이고 직접민주주의요소를 일체 배제합니다. 영국같은 경우 청교도혁명이후 수평파들의 노력에 의해 1647년의 인민협정이 의정되고 나아가 자유민주주의는 개념내재적으로 극우부터 극좌까지 모든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복수정당이 형성되게 됩니다. 나아가 신문등의 발달이 정당정치의 발전과 더불어 그 궤를 같이 하죠.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견해들이 표출되고 입법회의시대에는 페이양파 지롱드파와 자코뱅파의 대립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국민공회시대에는 지롱드파와 자코뱅파가 대립하게 됩니다. 그런데 루소의 사회계약설은 사유재산재에서 생긴 모든 불평등을 악으로 규정하고 계급제도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루소의 사상은 급진적 사회주의와 연결되고 가장 급진적이었던 자코뱅파가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 자코뱅파는 파리 하층민을 이용해서 지롱드파 간부를 모두 축출합니다. 그리고 공안위원회를 통한 일당독재가 이루어지죠. 이 자코뱅파의 일당독재가 나중에 사회주의자들의 직접민주주의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코뱅파 내부의 또 좌파인 에베트 우파인 당톤 중간인 로베스피에르 내부끼리 또 싸우다가 로베스피에르가 모두 죽이고 독재권력을 거머짚니다. 이것은 스탈린과 거의 비슷한 케이스죠. 그 뒤 로베스피에르는 너무많은 피를 봄으로써 민심을 잃고 결국 온건파의 반혁명에 의해 그 역시 죽게 됩니다. 이렇듯 프랑스혁명은 1791년헌법까지는 대의제적 전통을 지켰고 그 뒤 나폴레옹에 의해 계속 이어졌다는 점에서 헌정적 자유주의(athina님의 표현) 즉 자유민주주의(통설적 표현)의 퇴보만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나아가 인민의 실질적인 자유에서 오히려 독재정부였던 나폴레옹 시절에 더 보장받을 수 있었다는 athina님의 주장은 인과관계의 오류입니다. 왜냐하면 나폴레옹의 개혁정책은 기실 시민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던 사상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았고 나아가 그는 그러한 사상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려고 했기 때문이죠.(대표적으로 대의제 주창자였던 시에스가 나폴레옹의 통령정부에 참여합니다. 나아가 그 자신이 자코뱅파였고 루소와 볼테르를 탐독한 점등은 나중에 그가 제정으로 가게 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나폴레옹은 박정희와 상당히 다르다고 봅니다. 다만 나폴레옹이 제정으로 나아간 것은 비판받아야 겠죠. 오히려 나폴레옹은 우리나라에서 이승만과 비슷한 위치라고 봅니다. 이승만이 원래 독립협회출신으로 근대자유민주주의 사상에 어느정도 정통했고 그 이후 한국에 자유민주주의헌법을 정착시켰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자신은 독재를 했더라도 말입니다. 더욱이 나폴레옹은 제정에 들어가는 해에 근대민법의 효시인 나폴레옹 법전을 만들 정도였고 나폴레옹 법전은 전형적인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산물로 근대적 소유권과 계약이 자유, 법률상 평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의 관계에 있어서 이들은 서로 비슷비슷하게 발전해 갑니다.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발전해가죠. 다만 경제적으로 산업혁명은 꾸준히 발전하지만 시민혁명은 중간중간 독재나 제정으로 곤혹을 경험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경제발전은 자유민주주의냐 독재냐는 무관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합니다. 적어도 산업혁명이 먼저 있고 나서 시민혁명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거죠. 본격적인 산업혁명은 1660년경에 나왔고 시민혁명은 그중에 청교도 혁명은 1640년대에 이미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시민혁명에 의해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에 대한 속박이 제거된 이후 공업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인 매뉴팩튜어가 힘차게 전개되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athina님은 결국 경제발전을 헌정적 자유주의와 거의 비슷하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듭니다. 즉 이것은 박정희시절 독재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발전했고(특히 그 경제발전을 시장경제로 봅니다) 따라서 헌정적 자유주의도 강화되었다는 논리구조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박정희 시절의 경제발전은 자유민주주의냐 또는 독재냐와는 그리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경제발전에 관해서는 그 당시 적어도 국민적 컨센서스가 이루어지던 때이므로 자유민주주의하에서도 당연히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분야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4월 혁명이후 장면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경제분야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박정희시절 많은 경제관련 법률안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가지고 그것을 법의 지배와 연결시키는 것도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법체계는 사실상 이승만정부시절 기본적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민법 행정법 형법 헌법 상법 국회법 법원조직법 정부조직법 민소법 형소법 등등 말입니다. 이것은 박정희시절에 부분적으로 개정을 통해 발전시켰을지라도 대부분의 근대법에 필수적인 체제는 1공때 이미 모두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그런면에서 나폴레옹이 로마법을 근간으로 근대민법을 만든 것은 박정희와 다르게 평가받을 수 있게 됩니다.) 아니 이러한 법체계는 일제시대부터 꾸준히 발전되어 온 것입니다.(우리 법체계가 대륙법계인건만 봐도 그렇죠) 박정희만 특별난 건 아니라는 거죠. 단지 재임기간이 많아서 특별법수가 많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논함에서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장면이 계속 정권을 잡았어도 박정희만큼의 법은 당연히 만들어야 했을 겁니다. 더구나 박정희는 인권탄압관련 법도 많이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네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법치주의는 오히려 이승만에게 그 공을 돌리는게 맞다고 봅니다. 한국의 나폴레옹이 바로 이승만인 것입니다.

동학항쟁과 관련되어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그러니까 시민혁명과 어느정도 연관된다고 보는 부분에 대해 적겠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갑신정변은 민의 기반이 없습니다.  그들은 조선이라는 군주국가의 관료일 뿐이지 어떤 민과의 연관성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일본 명치유신을 근대화의 모델로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명치유신은 어떤 국민주권적인 사고가 거기에 전혀 없습니다. 그에 비해 동학항쟁의 경우 그 종교적 성격 즉 인내천과 같은 인간평등사상이 있습니다. 명예혁명의 경우 청교도가 거기 참여한 것도 사실은 청교도교리와 어느정도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신이 특별하게 교황이나 군주에게 주권을 준 것이 아니라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하고 각 개인의 평등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무튼 그러한 사상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물론 로크식의 계몽주의적인 사고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있고 따라서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약하게나마 존재한다는 것이죠. 나아가 그들은 전봉준이라는 대표자를 내세웠습니다. 나름의 대표가 되죠. 나아가 그들은 일정부분의 폐정개혁안을 주장했습니다. 마치 의회가 군주에게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제시한 것과 같죠. 그리고 실제 관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유민주주의맹아는 독립협회에 이어졌고 독립협회 활동은 전형적인 자유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임스 메디슨에 대해서 보면 그 분은 전형적인 권력분립론자로써 연방의 권한보다는 주의 권한을 중요시하므로써 수직적 권력분립을 이루려 했던 분이죠. 거기다 반연방파로써 州權론자였지요. 그래서 당시 강력한 중앙집권적 연방국가를 만들려고 했던 알렉산더 해밀턴과 대립했구요. 제임스 메디슨은 그래서 토마스 제퍼슨과 같이 민주공화당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 민주공화당이 우연한 계기로 휘그당(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분열됩니다. 아무튼 제임스 메디슨은 가장 약한 대통령제를 주장했던 분입니다. 그런 메디슨이 박정희대통령과 친화적이라는 것이라는 의문입니다. 박정희와 친화적인 것은 연방파였던 알렉산더 해밀턴입니다. 물론 알렉산더 해밀턴이 들으면 기분나빠하겠지만요.

나아가 자카리아 생각한 '동아시아 권위주의 정부가 보장한 헌정적 자유주의'는 '피지배자와 지배자를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질서 + 자본주의의 보장으로 인한 경제발전'인 것 같다고 하셨는데 이것도 좀 그렇습니다. 헌정주의 논의를 할때 아무도 경제발전을 가지고 말하지 않거든요. 거기다 '자본주의를 보장으로 인한 경제발전'이라고 하지만 박정희가 보장했던 것은 자유시장경제가 아니고 국가자본주의였습니다. 국가가 부분적을 개입하는 것을 넘어서 국가에 의해 완전히 지도되는 자본주의였죠. 이것은 말만 달랐지 사실상 스탈린의 사회주의경제와 다름 없습니다. 국가자본주의(극우)와 국가사회주의(극좌)는 그래서 서로 통합니다. 극과 극은 통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러한 체제에서는 얼마든지 경제는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전자는 박정희 자신 외에도 족벌재벌에게도 그 이익이 돌아가는 반면 후자는 공산당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는 것의 차이일 뿐입니다.  나아가 '피지배자와 지배자를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질서'부분에 대해서 athina님은 효율적인 치안을 확보하고 사유재산권의 제대로된 보장을 제공하며 외적과 화적패(혹은 조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정부이며, 관료 스스로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정치 깡패의 난립을 일소하며, 정부 관료가 깡패나 법관과 짜고 민간 기업을 자기들 맘대로 꿀꺽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통제하는 정부로 풀이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정희때 관료부패가 심각했었고 박정희자신이 군인출신의 정치깡패이고 그 스스로 중앙정보부를 통해 민간기업인의 재산을 강제헌납시켰을 정도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98&aid=0000062919&  http://www.hani.co.kr/section-021075000/2005/07/021075000200507260570082.html
 
그리고 자카리아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공한 이유는 도덕 의지가 아니고 1인당 국민소득이라고 강변하는 부분은 경제결정론적인 사고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승만정권당시에 이미 4.19혁명을 성공시켰는데 그는 그부분을 왜 빼먹는지 모르겠습니다. 4.19혁명은 성공시켰음에도 박정희가 그 줄기를 좌절시켰을 뿐입니다. 그 줄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25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거구요.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이 낮더라고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현실적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글을 참조하시는게 더 나을 것 같네요.
http://www.skepticalleft.com/bbs/board.php?bo_table=01_main_square&wr_id=10655

athina님은 일단 자유민주주의가 확립된 사회에서 독재를 배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그런 선진국에서의 민주주의 그 자체도 '헌정적 자유주의(혹은 입헌주의)'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자유민주주의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그 헌정과정에서 독재의 유혹을 떨쳐버려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확립되기 전에는 독재가 허용되어도 괜찮은게 아니죠. 한국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와 관련하여 권영수 교수는 박정희부터 전두환까지는 아에 공화국으로 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원래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체제가 가장 지속가능하고 검증된 체제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자체가 헌정적 자유주의에 의해 통제되는 것은 이미 자유민주주의의 결합관계가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단순히 다수의 지배가 아닌 정당성의 원리로 보는 것이야 말로 극단적 민주주의를 통제하는 지름길입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함으로써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고 이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민주의 단순합을 넘어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athina님은 자유주의로 민주주의만를 통제하시려 하시만 그 반대로 가능해야 합니다. 그 자유주의 특히 경제적 자유주의가 국민주권의 관점에서 항상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