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하나 들죠.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욱일승천하던 당시의 일본인들에 대한 공적인 평가란 어떤걸까요? 아마도 "식민지 민중들을 차별하고 수탈하고 학살하고, 그것에 협력한 사람들" 정도로 정리하면 그닥 틀리지 않을겁니다. 이것에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동의할 것 같고, 세계인들도 대동소이하리라 예상합니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인사들이나 국민들도 수긍하는 것일테구요.

그런데 사실, 당시의 일본인들 중에서 저 공적인평가와 실제모습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당시의 일본 전체 인구중에서 만명이 채 안될거라는데 백원겁니다. 천황 이하 정치인들, 군부 장성들, 고급공무원들 이외에 나머지 보통의 국민들이 과연 그랬을까요? 까놓고말해 본인들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일본이라는 나라가 굴러갔겠죠. 그나마 "협력했다"고 부를만한 것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인데, 당시 일본의 선거제도는 25세 이상의 남성들만 참여할 수 있는 제도였고, 그것도 1925년 이전에는 "일정한 국세를 납부하는 남성"이었습니다. 남녀노소 포함한 전체 인구의 10% ~ 20% 남짓됐다고 하더군요. 그런 선거조차도 다른 선택지가 없는 투표였을테고, 체제 전복을 꿈꾸는 반란을 결심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아무 생각없이 그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자는 평범한 일상이었고, 강요된 삶이었을겁니다.

그런데도 당시의 일본인들에 대한 공적인평가란 이처럼 냉정하기 짝이 없는 것이죠. 보통의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한 평가일테고, 내심 동의하기도 쉽지 않을겁니다. 사실 한일갈등이라는것도 결국은 그것 때문 아니겠습니까?  반성없는 쪽빠리들이라며 때론 욕설도 퍼붓는 한국인들 vs 우리도 피해자인데 대체 뭘 잘못했길래 맨날 사과하고 반성하라고하지? 아무한테나 욕해대는 조센징들 ㅅㅂ... 대략 이런 구도이죠.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비판자와 방어자 모두 공적인평가와 사적인평가를 의도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이고 공적인평가를 사사로운 일본인 개개인들에게 적용시키면 당연히 "ㅅㅂ 나는 아니거든?? 내 부모 내 조부모들도 아니거든? 농사만 열심히 지셨거든?" 이라는 반발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공적인평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을 사적인평가로 치환시키고서 "ㅅㅂ 나는 아니거든?" 하고 반론하는 것 역시 뻔뻔하고 양심없다는 질타를 받거나, 쓸데없는 논란만 가중시킬 뿐이겠죠. 아무리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적 없는 일본인들"이 대다수이고 많다 해도, 자기 부모나 조부모는 결코 그런 적이 없다 해도, 당대의 일본인들 전체에 따라 붙는 위와 같은 공적인평가를 피해갈 수 없고, 그 꼬리표를 떼려는 시도는 "진실과 역사에 대한 저항"에 다름아닐 것입니다.

아크로에서 벌어지는 영호남갈등에 대한 논란도 이와 마찬가지이죠. 영남인들에 대한 공적인평가는 반드시 있을겁니다. 제가 정확히 정의하고 기술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야권진영에 속한 국민들이라면 대부분이 동의할 그런 공적인평가는 쉽게 도출할 수 있을테고, 아마도 영남분들 입장에서는 그리 썩 유쾌하거나 기분좋은 내용은 아닐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공적인평가를 사적인평가로 전환하여 영남인들 전체를 "사적으로" 싸잡아 인신 공격하는 것도 오류이고, 그런 오류를 핑계삼아 정당한 공적인평가마저 사적인평가나 공격으로 치환하여 "나는 그런적 없거든? 전체를 욕하지마 ㅅㅂ"  하는 태도도 그리 현명하거나 보기 좋은 일은 아니겠죠. 양쪽 다 무의식적으로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의도적으로 그렇다면 그건 매우 야비한 것입니다.

아크로는 공론의 장이니, 적어도 그 안에 등장하는 "영남인들" 이라면 당연히 공적인 평가의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는게 전제되어 있다고 봐야하고, 이것을 곡해시키고 흔드는 논리를 구사하는 것은 "물타기"에 다름아닐 것입니다. 더불어 공적인평가를 빌미삼아 회원 개인에 대한 '사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것 역시 공론의 장에서 지양돼고 퇴출되어야 하는 것이겠죠. 저 역시 혹시 그런 적은 없는지 조심토록 하겠습니다. 이거부터 우선 명확하게 정리가 돼어야, 보다 생산적인 논의가 비로소 가능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