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쯤 M 시의 모 성당에 사제로 계시는 신부님께서 미디어몹의 몇명을 초대했습니다. 신부님은 그냥 아무추어 글쟁이들을 한번 보시고자 한 의도였지만 그냥 모이면 맹숭하니까 신과 기독교를 주제로 토론 모임을 가지자고 누군가 제안하였고 우리는 모여서 밤새도록 신과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글은 그 모임에 대한 에필로그입니다. 다른 분들이 워낙 정리를 잘 하셔서 딱히 제가 글 올릴 필요는 없었지만 일일일문을 충실히 하기 위한 시도라고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날, 우리는 사제관에서 보로도산 와인과, 17년산 발렌타인과 하이네켄 생맥주를 마시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불가지론자의 변명

                         - 부제 : 일일일문의 어려움...

어제것 까지 미리 올려놓있지만....... 오늘 것은 미리 준비못하였네요.
연 이은 미팅에 언어들이 머리 속에서 춤을 추다가 어느새 망각의 늪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왜 이렇게 많은 미팅을 하면서 생산성은 전혀 없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 건지... 참... 세상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의 불행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 자.. 어쨌거나 일일일문(一日一文)은 계속됩니다.


우리는 며칠전 M시에서 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에오윈님은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신으로부터 멀어진다고 하셨어요.

맞아요. 그날 제가 느낀 것으도 그런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전 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종교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신에대한 생각, 느낌, 신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그 경험은 노래와 문학과 신앙과 간증으로 표현될 수는 있겠지요. 그리고 그 개인의 지극히 진실한 체험을 듣고 우리는 감동하고 내 안의 신성과 조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토론을 통해서는 우리는 다가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신은 지극히 높거나 지극히 낮은 곳에 있어서 우리는 그 희박한 공중으로 올라갈 수도 저 깊고 조밀한 지층으로 하강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전 할말이 있습니다.

전 3대째, 아니 정확하게는 4대째 개신교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고등학교때는 작은 교회에서 학생회간부를 한 적도 있네요. 어머니는 카톨릭이셨지만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제게 기독교는 늘 두려운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러가지 기억들이 있지만 그 중 한가지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하게 지내곤 했던 얼굴이 창백할 만큼 하얀 친구에 관한 기억입니다. 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그 아이의 창백한 얼굴을. 가늘게 떨리던 유난히 빨간 입술을.



어느날 그 아이가 제게 집으로 가자고 초대를 했어요. 자기 엄마, 아빠가 날 꼭 보고 싶어 한다고. 그 이유는 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전 그 친구가 여호와의 증인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 친구의 집으로 가서 어머니 아버지가 신심을 다해 성경을 설명하고 절대로 순대나 선지국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친절하면서도 엄숙하게 설명했을 때, 제가 느낀 감정은 칼처럼 날카롭게다가오는 낯설음이었습니다.

아니요, 그들이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책을 펴들고 자상하게 설명하는 친구 부모님은 정말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열심히 저를 대해 주셨어요. 그러나 전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어떤 불편함, 위장 깊은 곳에서부터 먼가 꿈틀거리는 불편함을 느껴야 했어요.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위장은 그들의 말을 소화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어렵고 힘들었죠.

내 친구의 동생은 장애아였어요. 정신지체장애... 말을 잘 할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사실도 그 집에 초대받기 전까지 몰랐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님도, 그 친구도 자신의 동생을 사랑한다고, 그 아이는 천사라고 내게 말하였지만 그말 역시 제게는 몹시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전 외롭게 자랐고, 홀어머니 밑에서 늘 혼자 지내곤 했지만 한번도 스스로를 남에게 꾸미려고 했던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니요, 전 소심하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하여 무척 민감했습니다. 그러나 타인 앞에서 내가 아닌 어떤 것이 되고자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요.

그래요, 맞습니다. 그들에게 느낀 감정은 그들이 자신이 아니고자 한다는 느낌, 맞아요, 그들이 부정직하다는 느낌, 아니, 그것과는 좀 다르군요...그들 스스로는 대단히 정직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부정직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느낌, 그래서 뭔가 더 그들에게 내 생각을 말하기가 어려운 그런 느낌...

이해할수 있나요? 내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서 그들, 그상황을 뎌야 했는지?

현관문을 나와서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는 길이 무척 멀었어요. 현관까지 그 애 부모님이 따라나왔고 그 친구가 나를 엘리베이터까지 바래주었거든요. 그 애는 내손을 잡으면서 내가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애타게 바라보았어요. 나는 그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야 했어요. 그러나 한 마디도 말할 수는 없었어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가 갈께, 라고 말할 때, 그애의 눈에 퍼지는 절망감을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나요? 여린 갈색의 눈동자가 불안에 떨며 내 눈에서 한 줄기 동의의 그림자, 낙엽의 부스러기같은 희망의 그림자을 찾는 그 아이의 눈빛을 상상할 수 있나요?

나는 아직도 그 아이의 그 눈빛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눈빛에 화답하고자 노력하면서도 끝내 그 아이에게 동의의 빛을 주지 못했던 그 순간, 차갑고 냉혹하게 닫히던 엘리베이터의 문 소리를 기억합니다.

스르르륵......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와 한참동안 현관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서있었습니다. 그 현관을 나오면 위에서 그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어요. 왠지 울고 싶었어요. 그러나 울지 않았습니다. 만일 운다면 그건 그 아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모욕이 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머리 위로 그 아이의 시선을 송곳처럼 느끼면서 걸어갔습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애달프면서도 따가운 느낌은 아파트를 벗어나서도 한참동안 내 머리위의 피부에 맴돌았습니다.

그래요. 내게 기독교는, 신은 늘 그런 것이었습니다.

아시겠나요? 내가 왜 불가지론자인지?

그 아이는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그 집은 적어도 가난한 우리집보다는 훨씬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내 어린 가슴으로도 그 아이가 가진 불행의 깊이와 넓이는 내가 짊어진 외로움보다 훨씬 큰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불행의 옆에 감히 다가설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가진 불행은 그저 불행이었다면 그 아이가 가진 불행은 불행을 부정하는, 불행을 불행이 아니라고 외치는 그런 종류의 불행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감당하고 있는 불행은 내가 견디고 있던 정직한 불행-전 내 당시에도, 그 후에도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고 그런 종류의 불행에는 결코 다가서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혹시라도 제가 그 아이의 동생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난 비록 어렸지만 삶의 여러 형태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 '천사같은 아이'에게는 그저 어린 아이가 느낄 수 있는 보통의 연민을 느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 감돌던 그 낯설었던 분위기, 피부위를 따끔하게 만들던 이질감, 말못하는 자신의 아이를 보며 눈물지으며 기어이 천사라고 부르던 그 부모님들의 야릇한 표정.. 그것이 힘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요.

신은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의 갈색 눈에도, 그날의 엘리베이터 안에도.

그러나, 감히 신을 알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날의 엘리베이터와 그 아이의 갈색 눈동자, 그리고 그 안에 퍼져나가던 절망감, 그리고 그것을 허용했던 신의 무심함.
만일 신을 안다면, 전 그날의 모든 일들과 그리고 그 이후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서도 전 뭔가 할 말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소소한 모든 기억 속에서 전 신의 임재를 증언할 수 없습니다. 그날 그곳에서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았을 그를, 그 보다 더 훗날 더 큰 절망에 빠졌던 나를 바라보 았을 그를, 그리고 어쩌면 나보다 더 큰 절망에 빠졌던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얼 그를.

그래서 그날, M시에서 나는 불분명한 불가지론자를 자처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어느 다른 시간 대, 다른 결론을 가진 인물들과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 한대도 마찬가질 듯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M시를 둘러 싼 산은 아무런 말 없이 우리 모두를 받아 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머리 속은 제 각각의 언어로 소용돌이 쳤지만 달리는 차창 밖에서 흐린 풍광 속, 젖은 빛의 단풍들은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들의 모든 언어들을 땅에 눕히고 있었죠. 자신의 가장 내밀한 실재 속으로.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공간 속에서 각자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언어가 빈틈을 보일 때마다 아름다운 M시의 실재가 깃들었던 것 같습니다.

불가지론자의 언어는 언제나 항상 이렇게 어지럽습니다. 그게 제가 불가지론자로 자처하는 이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