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주장(statement of facts) 보도에서 언급된 자의 권리가 침해될 때, 언론윤리 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언론사가 사실확인에 주의의무를 충실히 기울였느냐"다. 주의의무를 충실히 기울였으면 그 보도가 진실이 아니라도 면책된다.

택시기사 제보와 관련해서 정준길-금태섭 협박의 진실에서 금태섭의 주장은 "정준길이 택시 안에서 안철수에게 불출마 협박을 했고 정준길은 새누리당 차원에서 행해진 불법사찰을 통해 정보를 입수한 것을 바탕으로 나(금태섭)에게 협박했다"는 것이다.

한겨레가 새누리당의 불법사찰과 안철수 불출마 협박을 말한 금태섭의 발언을 보도하는 것은 언론윤리에 위반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실을 한겨레가 주장하는 식으로 보도를 하려면 한겨레는 그것이 사실인지 팩트체크를 충실히 해야한다. 

한겨레신문은 이러한 금태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택시기사 제보'건을 금태섭의 주장을 강화시키기 위해 편집 배치했다. 나는 한겨레신문이 "사실주장 보도에서 언론윤리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즉,  한겨레신문은 두가지 팩트와 관해 한겨레의 입장으로 하여 주장하는 데에서 주의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째는 한겨레는 택시기사의 말이 맞는지에 관해서 사실확인을 위한 주의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는 한겨레는 새누리당이 불법사찰을 했으며 정준길이 이를 통해 얻어진 정보를 가지고 금태섭에게 안철수 불출마를 협박했다는 것. 과연 한겨레는 이 두가지 사실주장에 대해서 사실확인을 위한 주의의무를 제대로 수행했는가? 

사실확인을 위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할 상황이나 처지라면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한 채 단순 전달 보도로 그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 그걸 넘어서서 어떤 입장과 논조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사실 주장을 하려면 사실확인을 위한 주의의무를 다 해야 한다. 

나의 이런 주장에 대해 "언론 현장을 무시한 법리 중심의 접근"이라고 하거나 "한겨레의 보도는 진실을 알기 위한 단서를 마련한 것으로서 의의가 있다"는 식으로 논점을 회피할 것은 아니다. 논점은 사실확인을 위한 주의의무를 다했냐 안했냐 이 말이다.

사실확인을 위한 주의의무는 모든 언론의 당연한 의무다. 이 의무를 수행했느냐 안했느냐를 따지고 있는데 여기서 왜 '법리'가 나오고 '언론현장을 무시했다'는 말이 나오는가? 언론의 기본적인 의무를 위반하면서 진실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당시, 그 글에 바로 이은 글에도 밝혔다시피 정준길이 택시를 타지 않았다는 것은 참말일 가능성 보다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짐작일 뿐, 증거가 없거나 부족한 상황에서는 '거짓말이다'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겨레의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의의무 수행의 흔적은 '좌회전 발언' 뿐이다. 나는 이것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설령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할지라도 '새누리당의 불법사찰과 안철수불출마 협박'에 대해 사실확인을 한 흔적이 없다고 했다.

내 글에 대한 반론은 택시기사의 말이 맞는지 및 새누리당이 불법사찰을 했고 그 정보로 금태섭에게 안철수 불출마를 협박했다는 주장이 맞는지 사실확인을 위한 주의의무를 했다는 것을 보여서 반박하면 된다. 이걸 놔두고 왜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2. 이에 대해 늘상 그렇듯이 논거에 대한 반박으로 주장을 공격하지 않고 인신공격으로 주장을 공격하는 이들도 있다. 내가 마치 정준길은 참말을 했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내가 마치 안철수를 공격해서 박근혜를 편들기 위해 글을 쓴 것처럼 하고 나를 공격한다.

그는 진영논리를 기초로 나의 주장을 정치적 동기 내지 부도덕한 동기의 산물로 간주하고 아예 언급할 가치를 못느낀다는 듯, '선-악 대결'의 구도* 속에서 자신이 선하고 정의로운 진영에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논점과 논거를 무시한다.

그리고는 "너는  새누리당 편드는 나쁜 놈이야" 이렇게... 나의 주장을 비도덕적이고 악한 동기에서 비롯한 것으로 간주하고 모든 이성적 토론과 진실 확인을 위한 노력을 쓸 데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의 공격은 인신공격일 뿐이다. 

내 주장의 논거를 분석하고 논거를 재반박하라는 나의 요구에 그는 간단하게 "엘리트적 위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신공격으로 이성과 진실을 외면하는 일체의 억압은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이탈리아의 뭇솔리니 같은 파시즘만 있는 게 아니다. 

법철학을 공부해보면 정의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세상이 다원적이기 때문에 정의는 절대적일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라드부르흐는 절대적일 수 없는 정의를 보완하기 위해 합목적성과 안정성을 가져와서 그 세가지를 융합한다.

다원적 세계에서 진짜 정의라 할만한 것은 이성과 진실이다. 이성과 진실을 외면한 일체의 억압, 뭉뚱그림은 파시즘이다. 그는 정의롭고 선한 사회를 구현한다면서 반새누리를 외치고 있는데, 이성과 진실을 외면하면서 새누리를 반대한다면 오히려 세상은 불행해질 것이다.


* 정치를 '선-악의 대결 구도'로 보는 것이 안철수의 정치관이다. 이러한 안철수의 反政治主義的 정치관은 시민운동가로서는 어쩔지 몰라도 정치인으로서는 부적합하다고 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이는 파시즘으로 쉽게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