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니 이번 대선에서도 '호남의 반새누리당 몰표'는 변함없이 행사가 될 것이고, 우리는 개표방송을 보면서 "여전히 지역구도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쯧쯧쯧" 이라는 정치평론가들의 뻔하고 익숙한 멘트들에 고개를 끄덕거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남은 70%의 지역주의자들과 30%의 민주시민들이 사는 곳"으로, "호남은 90%의 지역주의자들과 10%의 수구꼴통들이 사는 곳"이라는 평가를 또 다시 역사에 남기겠지요. 더불어 "그래도 우리는 30%쯤은 민주시민들인데, 호남 니네들은 한명도 없네? 당체 전라민국이냐 뭐냐?" 라고 기세등등하게 비난하는 목소리들을 향후 5년동안 또 다시 들어야만 할 것입니다.

유독 호남만은 민주당을 찍으면 지역주의 런닝맨, 새누리당을 찍으면 수구꼴통, 진보정당을 찍으면 빨갱이, 기권하면 유권자의 권리를 포기한 뭐뭐뭐... 그 어떤 선택을 하든 정상적인 민주시민이 될 수 없는, 단 한명도 정상적인 민주시민이 살지 않는 유령의 땅이라는 이 지독한 ''반호남'의 프레임이 유지되는 한, 호남유권자들의 경이로운 반새누리당 투쟁은 결코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지역차별을 없애달라는, 민주공화국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가 "지역주의자의 꼰대질"로 규정되는 한 더 더욱 그렇겠지요.

그러나 모든 것은 변화하고, 호남도 언제까지 "어떤 선택을 해도 손해뿐인" 이 구도를 스스로 감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 지난 총선때 어떤 새누리당후보가 광주에서  40% 이상의 지지를 얻고, 진보정당의 후보들이 호남에서 민주당후보들을 누르고 당선이 되고, 안철수같은 민주당밖의 외부인사가 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변화의 징조들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요.

그렇다면, 호남의 정치적 지향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변화가 가장 유리할 것인지 살펴봐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그와 더불어 한국 정치 전체도 그에 호응하여 변화하겠지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피로한 호남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의 당근을 핑계삼아 대거 새누리당지지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박근혜가 DJ 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고, 민주화에 대한 호남의 노고를 상찬하고, 파격적인 지역개발과 일자리창출 공약, 더불어 전향적인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등으로 밀고 들어오면 당연히 "저 등신같은 민주당을 계속 지지해야만 하나" 라고 회의할 수 밖에 없고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렇게 호남은 튀지 않는 평범한(?) 지역이 되겠지요. (한국정치를 짓눌렀던 오랜 지역구도가 해소되었다고 기뻐하시는 분들의 만세소리가 들리는거 같네요. 닝구들도 사라질테니 아크로도 정화가 되겠지요.)

그 결과는 새누리당의 안정적인 장기집권이 될 것입니다. 이탈한 호남유권자들만큼 새로이 충원되지 못한다면 당연한건데, 집토끼도 내주는 현재의 야권에 산토끼를 끌고와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을 턱이 없지요. "호남이 변해야 영남도 변한다'던 친노들의 주장을 보란듯이 개소리로 만들면서 새누리당의 브레이크없는 질주가 시작될겁니다. 차후 90% 이상의 확률로 이렇게 될거라고 저는 예측합니다. 그것도 조만간의 미래에.

그렇다면 과연 위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안철수가 그 답이죠. 안철수라는 요상한 정치인이 아니라, 안철수가 너무나도 쉽게 차지해버린 한국정치의 빈 공간을 누가 어떻게 메우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요. 그 빈 공간은 민주당이 안심하고 비워놓은채 허송세월하고, 진보정당들이 '진보정치 코스프레'를 하느라 비워놓은 그 공간이죠. 그 비어었던 공간에 무엇을 채워넣었어야 하는지 한번만이라도 고민했었다면 이토록 허망하게 안철수에게 내주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럼 그 빈 공간에 채워넣어야하는 정치의 새로운 내용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한국형 진보정치"라고 나름대로 정의합니다. 독재 vs 반독재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누가 더 능력있는지, 누가 더 한국 사회를 정교하게 진보시킬 수 있는지 치밀한 정책과 공약과 집행력으로 경쟁해야하는 시대이죠. 유신과 독재를 불러내고, 진보적 구호를 외치는게 진보정치라고 착각하는 한 안철수가 차지한 그 빈 공간에 결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낙동강벨트는 낙동강이 아니라 바로 그 빈 공간앞에 그어져 있던거죠.

그러한 새로운 정치를 가능케하는 물적 토대는 "양극화된 사회"입니다. 졸업푸어 웨딩푸어 하우스푸어 실버푸어 기타 등등 온갖 종류의 푸어들이 그 빈 공간안에서 새로운 정치를 계속 불러내고 있는 것이죠. 양극화된 사회라는, 분명하게 존재하는 이 물적 토대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경제민주화 복지 노동차별 지역차별 남녀차별 기타등등 모든 정치적 이슈들을 죄다 하나로 묶어 집어삼킬 것입니다. 이미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눈치까고 뛰어들었고, 그 대항마로써 안철수가 호출된 것이죠. 안철수가 그럴 능력이나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런 새로운 정치의 주체와 동력은 호남은 물론 여타 지역의 모든 푸어들의 정치사회적 연대라고 믿습니다. 이들을 하나로 묶고 참여시킬 수 수 있는 정치세력과 노선과 프로그램과 콘텐츠들이 시급히 조직되어야만 합니다. 민주 vs 반민주에서 진짜진보 vs 가짜진보 이런 구도로 전환이 되어야만 하는거죠. 민통당이 "친노의 꿈"을 위해 낙동강앞에서 해매고 있고, 진보정당들은 시망해버린 지금의 상황에서는 너무나 힘든 일이겠지만, 이걸 못해내면 호남은 물론 한국의 미래도 암울한 가시밭길일겁니다.

저는 재작년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 논쟁이 한창일 때는 정말 희망에 들떠 있었습니다. 민주당이 그렇게 쭉 업그레이드되던지, 진보정당들이 환골탈퇴해서 무시무시한 공룡으로 변신하던지 그 누구든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는데 반드시 성공할거라고 믿었죠. 그러나 한쪽은 친노들에게, 한쪽은 유시민에게 철저하게 망가졌습니다. 이제는 안철수가 뭐라고 한마디할까 쳐다보기 바쁘고, 박근혜가 언제 쳐들어올까 전전긍긍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죠. 그런데도 문재인과 안철수같은 근본없는 정치양아치들에게 미래를 기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지옥의 전야제와 다름이 아닙니다.

시간이 별로 없네요. 미래가 시궁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