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헌주의에 개념과 관련하여.
 
근대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 관련된 논의를 보고 생각난 것 위주로 몇자 적어봅니다.
 
일단 근대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가  자유주의( liberalism)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athina님이 말한 영미법상의 법의 지배(the rule of law)와도 상당히 연결되는 것도 사실이죠.(하지만 원칙은 형식적 법치주의와 더 친화성이 있고 영국만 예외적이죠.)
 
이것은 입헌주의라는 것이 자유주의, 형식적 법치주의(영미법상의 법의 지배는 독일법상의 실질적 법치주의와 통하므로 영미는 예외)의 결합품인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입헌주의가 민주주의적 요소를 배제하고 성립할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입헌주의에는 이미 국민주권론을 내포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국민주권론은 이른바 형식적 민주주의론(즉 nation주권론)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제도론적으로 보면 의회제도)를 전제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래 근대입헌주의라고 말할때 그것은 이미 자유주의, 형식적 법치주의(영국은 예외적으로 법의 지배). 그리고 대의적 민주주의의 결합품인 것입니다. 그리고 입헌주의가 발단하는 과정을 보더라도 이러한 3가지가 결합해서 서로 보완하고 제한하면서 발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근대입헌주의는 자유민주주의라고 약칭되는 것입니다. 이건 헌법학계 통설입니다.
 
그에 비해 athina님은 개념상 자유주의+법의 지배만을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 또는 헌정적 자유주의(constitutional liberalism)라고 보고 있는 것이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입헌주의(자유주의+법의 지배)를 민주주의와 대립시켜서 보고 있다는 거죠.
 
이렇게 athina님이 입헌주의와 민주주의를 대립시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박정희가 민주주의는 못했지만 입헌주의는 오히려 더 강화했다고 주장을 펼치기 위함이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솔직히 헌법개정사만 제대로 공부해도 절대로 박정희가 athina님이 개념하시는 그 입헌주의의 옹호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는 것이죠. 오히려 뒤에 자세히 논증하겠지만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모두의 적이 바로 박정희 였다는 사실을 athina님은 전혀 모르시는 듯 합니다. 즉 각론에서 구체적으로 볼때 박정희가 입헌주의자 즉 자유주의+법치주의자였다는 것은 철저히 부정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죠.
 
2. 대의제 민주주의와 의회주의 그리고 박정희 평가
 
1) 근대입헌주의와 민주주의와의 관계
 
일단 근대입헌주의의 세가지 요소중에서 먼저 대의제 민주주의론을 보도록 하죠.
 
자 일단 국민이 바로 주권자라는 국민주권론에는 우선 계몽주의적인 또는 자유주의적인 생각이 그 기본 밑바탕에 자리 잡습니다. 따라서 국민주권론부터 자유주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전체 국민의 대표하는 사람들이 의회를 구성해서 그들의 전체 국민으로 부터 무기속위임을 받아 국정을 운영하는게 바로 대의제 민주주의죠.
 
사실 서양만의 독특한 제도가 바로 의회라는 제도인데 이것은 그 당시 귀족계급 승려계급 시민계급등 계급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의 모임입니다. 이러한 의회로 영국에서는 팔리아먼트, 프랑스에서는 삼부회, 이탈리아는 코르데스등이 미약하게 존재했는데 이 의회제도가 국민주권론,대의제민주주의론과 결합하면서 이것이 급속도로 실질화 되어 가게 됩니다.
 
물론 그 당시 시민계급의 대표자가 선거를 통한 공식적인 위임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민계급을 대표하는 관념은 나름대로 있었습니다. 마치 8-90년대 민주화운동당시의 김대중 김영삼을 일반국민이 시민계급의 대표자로 인식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찌보면 오늘날 촛불집회에 나가서 연설하는 시민대표자들은 바로 athina님이 입에 침이 달토록 칭찬하는 입헌주의를 사수하기 위한 시민계급의 대표자와 동격인 것입니다. 좀 앞으로 잡는다면 적어도 동학혁명당시 전봉준과 같은 인물을 들 수 있습니다. 서양의 시민계급이 중소상공인 자영농민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동학의 경우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힘들어하는 자영농민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시민계급성을 어느정도 가진다고 봅니다.(개념적으로도 농민은 노동자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영농민 그러니까 자영업자입니다.) 그리고 서양이 프로테스탄트와 연결되었듯이 동학도 천도교와 연결되고 있습니다.(다만 서양과 차이가 있다면 중상공인의 참여문제일 겁니다.) 나아가 동학은 프랑스혁명적 성격까지 내포하고 있죠. 동학을 자꾸 사회주의적 또는 극좌파적 시각에서 보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온전히는 맞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입헌주의적 전통의 면에서 보면 새로운 시각이 열릴 것으로 봅니다.
 
아무튼 이들 시민계급의 대표자들은 선거를 통해서는 대표자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시민사회일반의 신뢰를 통해 대표자로 나간 것이죠. 물론 이러한 대표가 가능했던 것은 그 당시 카톨릭과 대립했던 프로테스탄트 종교적 지도자가 시민계급의 대표자로 쉽게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종교적 지도자들도 실제 선거라는 형태를 통해 지도력을 확보해갑니다. 물론 처음에는 재산정도나 학식정도를 통해 선거권 피선거권을 제한했습니다. 이러한 결론이 가능했던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것이 이론적으로 제한선거제와 연결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통선거를 이상으로 하는 사상적 움직임은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결국 선거권은 꾸준히 확대되는 역사적 경로를 거치게 됩니다.(영국의 경우1830년대 전체인구의 5프로수준에서 1900년에는 50프로 가까이 그러니까 성인남자들은 전부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합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관념상으로는 국민이 주권이고 자기들은 그 국민들 특히 시민계급의 대표자라고 하지만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실제 권력은 군주세력이나 교황세력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계급의 대표자들은 국민주권론을 주장하는 한 혁명으로 나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물론 명예혁명은 피를 거의 흘리지 않았죠. 하지만 그전에 청교도혁명등에서 이미 상당한 피를 흘렸습니다. 대표적으로 시에스는 그의 "제 3신분이란 무엇인가?"에서 열렬히 혁명 나아가 군주세력 타도를 독려합니다. 여기서 시민계급이 주권자로써 명실상부하게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입헌주의인 것이죠. 청교도혁명이나 명예혁명 나아가 프랑스혁명등이 괜히 일어난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2)대의제 민주주의와 의회주의 관점에서 본 박정희 평가
 
그러면 이러한 관점하에서 박정희 나아가 김대중과 김영삼에 대한 평가를 해도록 하죠.
 
먼저 박정희의 쿠데타 부분입니다. 이것이 청교도혁명이나 명예혁명 나아가 프랑스혁명과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다 아실 것입니다. 혁명이라는 것은 국민주권론하에서 나온 개념인데 이미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에는 합법적이고 국민에 의해 위임받은 장면정부가 들어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박정희의 쿠데타는 입헌주의와 전혀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입헌주의에 대해 중대한 도전일 뿐이죠. 마치 1848년 2월 혁명에 의해 수립한 프랑스 제2공화국을 나폴레옹 3세가 다시 과거의 제정으로 돌려놓은 것과 같은 행태거든요. 이러한 체제가 바로 보나파르트즘이라고 불리는 초창기 파시즘체제입니다.(솔직히 그 내용을 보건데 유신헌법은 보나파르트시즘 당시의 헌법보다 못한 형태입니다. 파시즘이나 제정도 얼마든지 헌법이 있다는 것은 이제 아셨겠죠?) 물론 박정희는 3공화국헌법하에서는 당장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69년도 3선개헌 72년도 유신헌법하에서 중임연임제한 규정을 철폐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을 통해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하므로써 사실상 제정이나 다름없는 헌법개정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져.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지 않았다면 헌법상으로 영구집권이 가능하게 되어 있어죠. 이러한 박정희식 정부형태에 대해 그래서 뢰벤슈타인은 입헌주의적 정부형태에 대비해서 전제주의적 정부형태에 가깝다고 보았고 우리나라 통설도 거기에 동의하고 있죠.
 
자 그러면 의회주의 관점에서는 어떠할까요? 민주주의 기본은 의회주의아닙니까? 입헌주의의 기본중에 기본은 의회주의입니다. 박정희하에서 의회주의가 어떻게 유린되었을까요? 대통령제하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국회해산권이 처음 들어갑니다. 거기다 국회의원정수의 1/3 추천권이 대통령에게 있네요. 기존에 있던 국회의 국정감사권이 폐지됩니다. 물론 박정희는 5,16이나 10.17등을 통해 여러분 국회를 해산시키고 국회의원을 감금폭행 합니다. 그리고 국회회기도 단축해버립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국회의원 1/3을 아에 선출하도록 합니다. 이것은 의회제도가 완전히 유린당합 것입니다. 이러한 객관적인 증거를 높고도 박정희가 입헌주의에 공헌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어이가 없는 대목인 것이죠.
 
반면 김대중 김영삼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그들이 입헌주의의 영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3. 이제 법치주의 또는 법의 지배를 보도록 하죠
 
1)법치주의의 내용
 
근대입헌주의에서 형식적 법치주의 또는 법의 지배(영국의 경우만)를 필수적인 내용으로 합니다. 더욱이 이것은 영국의 보통법지배와 관련되어 발전한 것이고 독일의 행정의 법률적합성과도 연결되는 대목이죠. 확실히 영국의 보통법지배는 자유주의적인 측면이 결합된 것으로 그들 헌정에서 독특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통법지배를 바탕으로 사법부 독립을 확보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보통법제도는 13세기말 사법제도의 정립과 더불어 발전한 것으로 판례법을 중심으로 생겨난 것이며 국왕까지 구속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17세기에는 의회제정법의 우위라는 사상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법의 지배는 보통 형식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인권보장적 성격을 가진 실질적이고 절차적인 성격을 띄져.
 
아무튼 형식적 법치주의와 관련되어 중요한 것은 법치주의의 요소들 입니다.
 
근대입헌주의와 관련된 법치주의 요소로는 권력분립제도(제도적 요소) 법치행정의 보장(형식적 요소) 사법부의 독립(보장적 요소)등을 요소를 들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요소로 위헌법률심사제도 들긴 하지만 이것은 영국을 제외한 일반적인 나라의 경우는 없었던 것이므로 보통 근대입헌주의헌법의 내용이 아닌 현대사회국가헌법의 하나로 보는게 일반적입니다. 즉 영국의 경우만 처음부터 실질적 법치주의인 것이죠.
 
2)법치주의 관점에서 본 박정희 평가 
 
일단 박정희는 71년에 헌법상 근거없는 위헌적 비상사태를 선포한 적이 있고 또 4공헌법은 헌법의 일부규정을 정지할 수 있는 국가긴급권을 대통령에게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대해여 긴급조치를 할 수 있게 하고 있고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서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사전예방차원에서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고 국회통고절차나 승인절차가 모두 불필요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사법적 심사의 대상도 되지 않습니다.
 
나아가 대법원장을 포함한 법관의 임명과 보직 파면을 대통령 권한으로 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사법부 독립이 보장되지 않고 사법부가 행정부아래로로 들어가 버린 시절이 바로 4공입니다. 그리고 파면시 법관에 대해 징계처분만으로 가능하도록 했습니다.(원래는 법관은 징계에 의한 파면은 불가) 동시에 사법행정권도 대통령에게 귀속시켰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 의회는 사실상 형해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결국 권력분립원칙 사법부독립등이 철저히 유린당한 때가 박정희때죠.
 
그렇다면 법률에 의한 행정이라도 제대로 되었을까요? 무슨 법률에 의한 행정입니까? 입법부 자체가 허수아비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법률보다는 긴급조치등 행정처분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기 때문에 법률에 행정은 그 의미가 없죠. 이 정도면 가이 조선시대 왕보다 더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했던 것이죠. 조선시대 왕도 붕당정치하에서 엄격한 견제와 통제를 받았는데 말입니다. 도대체 박정희시절에 입헌주의를 이야기 한다가 얼마나 넌센스인지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죠. 나아가 박정희가 입헌주의를 유지 발전시켰다니 말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죠.
 
4. 자유주의 관점을 이제 보도록 하죠.
 
1) 인권과 사유재산권의 절대성,  자유방임적 경제질서
 
입헌주의는 그 기본이 자유주의 사상을 기반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적었습니다. 즉 그것은 개인의 자유권(신체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재산권)등을 천부인권을 보는 것이 입헌주의전통입니다. 이것은 근대입헌주의당시 프로테스탄트세력이 주도했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가 성립되었던 것이죠. 특히 종교의 자유나 재산권등은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계몽주의사상가들은 언론출판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등을 많이 주장을 했죠. 더구나 국왕의 과세권에 대한 합리적 통제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명예혁명등이 일어났으므로 재산권에 대해서 천부인권적 의미를 부여했죠. 물론 자유방임적인 경제질서를 그들은 주장했습니다.
 
자 이 부분은 인권의 측면과 사유재산제측면 그리고 자유방임적 경제질서 측면을 검토해 봐야 할 것입니다.
 
2)박정희와 자유주의
 
그렇다면 박정희는 진정 자유주의자일까여? 아니요 그 반대입니다. 그는 독일과 일본의 파시즘체제인 군국주의적 전통을 배운 사람이고 실제 그는 남로당계열에 있었을 정도로 자유주의와는 무관한 사람이라는 것이죠. 오히려 전형적인 국가주의 그것도 군국주의적인 속성이 다분했고 실제 그의 정책도 그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그는 인권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습니다. 일단 인신과 관련된 구속적부심제도를 폐지합니다. 그리고 임의성없는 증거능력부인조항도 삭제합니다. 긴급조치는 영장주의를 형해화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어떨까요? 검열제금지규정과 집회허가금지가 삭제되어 이제 검열과 집회허가가 자행될 수 있게 되었고 실제 그렇게 했습니다.
 
재산권에 있어서도 보상기준을 법률에 위임하여 정당보상이 아닌 입법보상으로 축소시킵니다. 동시에 군인 군무원등의 이중배상청구 금지 규정을 신설합니다.
 
나아가 기본권제한이 본질적내용침해금지규정을 삭제해 버립니다. 따라서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도 제한할 수 있게 만든것이 4공헌법입니다. 동시에 모든 개별기본권에 개별적 법률유보조항을 두어서 그 제한강도를 강화시킵니다.
 
그렇다면 박정희의 경제정책이 자유시장적 경제질서였을까요? 아니져 철저히 국가에 의해 지도된 경제질서였습니다. 도대체 박정희한테서 무슨 자유주의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까?
 
5. 결론
 
1) 입헌주의의 정의
 
입헌주의라는 것은 원래 자유주의적 사상에 기초해서 주권자인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분립하고 나아가 대의제원리에 입각하여 운영되는 헌정적 원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권영성씨의 교과서상에도 입헌주의의 기본원리라고 해서 주권재민의 원리, 기본권 보장(개인의 자유와 권리보장), 법치주의, 대의제 원리, 권력분립의 원리등을 들고 있습니다. 즉 입헌주의에는 주권재민과 대의 민주주의가 당연히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죠.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기존의 입헌주의하에서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가가 현대 입헌주의의 주요 논의이다. 자유주의를 민주주의와 개념적으로 분리해서 볼 수 있다 하더라고 그것들은 입헌주의하에서는 역사적으로 서로 결합되어 발전되어 왔고 결코 분리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헌정적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개념상으로는 분리시켜 볼 수 있고 자유주의나 민주주의 개별적인 논점을 또 분석해 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자유주의 독단이나 혹은 (직접)민주주의 독단의 논리로 흐를 위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상호 서로 결합되어 서로의 부정적 요소를 제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인 것이죠. 
 
결국 어떤 헌정질서가 자유주의는 있고 민주주의는 전무하거나 민주주의는 있고 자유주의는 전무하다면 그것은 근대적 입헌주의가 아닌 것입니다.
 
2)구체적인 케이스
 
인권과 재산권은 보장되면서도 국민주권이 관철되지 못하고 대의제적 요소가 전무하다는 것은 상상속에나 존재하는 국가이거나 국가권력에 의해 국민이 속고 있는 전체국가일 뿐입니다.(마치  북한처럼 자신들이 잘사는 줄 아는 것과 같죠.)
 
영국의 의회제도는 이미 주권재민과 대의제적 사상이 들어간 것이고 그런 사상적 발로에서 끝임없이 투쟁하는 과정에서 발전되고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회제도의 발전의 결과 의회제정법 우위사상(법치주의)이 생긴 것이구요. 권력분립이라는 것도 그러한 의회제도하에서 시민계급과 군주세력간의 대립가운데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제도화 된 것입니다. 미국의 권력분립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국민주권사상과 대의제적 요소에 의해 인권과 재산권의 보장이 더 확실해지고 완벽하게 되었던 것이죠. 
 
대만의 장개석이나 한국의 박정희 그리고 싱가포르 이광요등의 경우를 가지고 이것이 민주주의는 없지만 자유주의는 있는 경우로서 헌정적 자유주의(constitutional liberalism)또는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라고 athina님은 말씀하시지만 이들 나라의 국민의 인권과 재산권이 그들 헌정사에서 온전히 보장되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고(오히려 국가주의에 의해 철저히 침해되었음 따라서 자유주의 민주주의 이 양자 모든 면에서 즉 입헌주의가 철저히 유린당했지만 단지 경제성장이라는 결과만 있었고 그것 조차도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 더구나 국가자본주의의 히틀러나 사회주의하의 스탈린 김일성에서 보이듯 국가주의하에서 일시적 경제성장은 언제든지 관찰됨) 단지 냉전의 역학관계하에서 자본주의를 유지한 것 뿐입니다. 입헌주의 논의에서 자본주의를 인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자유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간단히 이야기하면 athina님은 경제성장이나 자본주의를 자유주의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죠.) 히틀러와 같은 국가자본주의도 얼마든지 존재했다는 것이죠. 히탈린와 같은 국가자본주의는 그 끝이 영미 제국가와의 전쟁으로 망했지만 박정희의 국가자본주의는 자신이 암살당하면서 그리고 진정한 입헌주의세력(자유민주주의세력+사회성가미=중도주의)이 나오면서 그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안 망하고 서서히 자유화의 길로 걷을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히틀러처럼 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거죠. 대만의 경우도 사실 우리와 비슷한 케이스이고 싱가포르는 워낙 국제도시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고 말입니다.
 
반대로 인권과 재산권이 개무시되면서 국민주권과 대의적 민주주의가 관철되는 경우는 가끔 보입니다. 이것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지는 어떤 고질적인 약점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단 대의제는 다수결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다수를 대표하는 자가 관용의 정신이 없어서 소수를 억압하는 경우 그 소수에게는 그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과거 영남패권주의가 극심한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죠.) 그런면에서 소수자 권리보호라는 실질적 민주주의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동시에 아프리카나 동남아 신생민주국의 경우는 종족분쟁등이 그러한 것을 더욱 가열시키죠. 
 
나아가 이러한 민주주의로서의 대의제가 보장되고 기본적으로 인권과 재산권이 보장되는 경우인 입헌주의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대의제의 속성상 무기속위임이고 따라서 경험적 의사를 대변하지 않아도 되므로 그 대의제의 의해 자본가계급이나 영남세력이 독식한 경우 반대세력인 노동자세력이나 호남세력은 실질적으로 국민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동시에 인권과 재산권에서의 침해가 언제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인 것이죠. 이것은 근대입헌주의하에서는 내내 문제되어 왔던 것이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한 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론, 실질적 법치주의론, 사회국가론인 것이죠.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조화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원칙은 자유(대의적)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일정한 헌법적 한계속에서 받아들이는 것이죠. 자유사회주의나 반대표제 논의가 그 중심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