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The Good?)




(황야의 무법자)

현 사회에서 가치평가의 문제는 엄연한 주관적인 평가의 영역, 어떤 객관적인 평가가 실제 불가능한 세계다. - 좋고, 나쁨, 추함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주어질 뿐이다. 어떤 기준점조차도 끊임없이 변경될 뿐이다. 그런데 이 변경되는 요소들은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순수하게 그 특정한 개인적인 인격적 요인으로부터 발생된 무엇이라기보다는 언제나 전체 사회적인 맥락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즉 이런 자치평가의 문제에서 주관적인 상대성과 평가는 순수 이론적인 - 윤리 도덕적 판단만으로 객관성으로부터 전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 판단의 객관성 자체가 나아가 그 가치평가의 문제에서 명확하게 구분되는 보편적인 평가의 문제까지 - 전체 사회적 구조에 대한 엄연한 평가의 한계- 곧 그 사회적 한계로 인해 나아가 그런 객관적인 판단 기준이 -지금 여기에서도 가능한가?라는 제한된 의미로서만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인물에 대한 평가는 곧장 사회 구조에 대한 인식과 반성과 성찰로부터 매번 되묻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 그런점에서 지극히 동어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획득되어지는 변증법적인 문제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언제나 그것은 동어반복적이다. 
단지 그런 평가의 문제를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 그 문제와 모순을 인격화하는 수준에서만 정당하게 받아들여 질 뿐이다. 그러함에도 그 개인으로부터 책임을 전가하는 정치적 형태까지 정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여기의 가치판단의 문제는 언제나 전체 사회 구조적인 판단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대의(정의?)는 없다. 정의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낡은 서사의 구조가 이제 지탱될 수 없이 그저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 다시 반복되어 실험되는 웨스턴 영화라는 순수 형식적 규정이 - 이제는 자기 비하적인 평가로만 받아들여지는 - 반복 아닌 반복이 나아가 - 그것에는 더이상 영웅이 없다. - 그렇게 영구가 없는 영구의 영화... 그 일탈된 서사로부터 각기 인물이 상징하고 있는 가치판단은 하나의 비웃음의 요소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 비웃음은 곧 이전의 서사 자체를 비웃는 것.. 나아가 '정치' 자체를 비하하고, 그것에 관계하는 주체의 비웃음의 전략으로 순수하게 냉소적으로 응답하게 한다. 
하지만 냉소는 답이 아니며, 그 조차 극복해야할 무엇일 뿐이다. 

그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주어진 삶의 구조가 이미 어떤 불의와 한계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냉소를 피할 수 없지만 그것조차 정당한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모순을 회피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현실이며, 그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 그것을 너만이 알고 있는 상식은 아니며, 그것을 알고 있다고 잘난척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남북 전쟁 자체가 흑인 노예 해방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규정과는 다르게 하나의 (제국주의의) 정치적 연장의 의미로서만 - 전쟁이야 말로 정치의 연장이나 정치는 전쟁의 연장일 뿐이다라는 오랜 고견과 같은 의미로서만 그것은 언급된다. 모든 전쟁은 그런 점에서 비극적이다... 그것은 애초에 올바른 '대의'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자본과 권력의 이해 관계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었을 뿐이다.)

그런 사회 구조 - 서사 속에서 조형되는 인간은 절대적인 선함 악함 추함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그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언급하지 않는한 그 서사 속의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평가되는 것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까지 정치에 대한 견해들은 오직 냉소만이 가득하다... 여전히 되물어야 하는 것은 구조적인 것일 뿐이다.



- The good인 블러디에게 추한 놈이 소리친다. 

헤이! 블러디!? 니가 누구인줄 알아!? 

"너는 더러운 개.새.끼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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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그런 더러운 방법을 쓸 줄 몰랐어!!? 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응? 
니가 어떻게 좋은 넘일 수 있어? 

"너는 더러운 개.새.끼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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