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32872.html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 교수 인터뷰 중 일부분..

독일 아마존에서 순수 철학 분야로 검색 순위에 오르 내리고 있는, '피로 사회', '힘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내가 아는 유일한 한국 이름의 중견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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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피로하다는 것은 갈등이 아니다. 피로에는 ‘나-피로’와 ‘우리-피로’가 있다고 본다. 나-피로는 모든 걸 나에게 끌어들이는 과잉된 자기무장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내가 품고 있던 내면의 폭탄이 터진다. 이것이 바로 ‘소진’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자기무장을 철거하는 상태의 피로함이 있다. 자기를 철거하는 순간 타자와 다른 곳이 보인다. 이런 상태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피로사회>에서 나는 자기를 무장해제시키는 피로가 가능하고, 이를 통해 다른 방식의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존의 ‘규율사회’에서는 지배자가 “너는 해야만 돼”라며 피지배자를 착취함으로써 고통을 안겨줬다. 이에 대해 피지배자들은 연대를 통해 지배자를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사회, 또는 ‘성과사회’에서는 “너는 할 수 있다”는 정언이 지배한다. 이 시스템에는 지배자가 없다. 이 때문에 시스템에 책임을 전가할 수가 없고, 내가 해내지 못하면 자기 자신에게 책임 전가를 할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우리’가 형성될 수가 없고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나 혁명이 불가능하다.

신진욱: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사회체제와 제도, 또 힘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성과와 업적을 강조하는 측면도 있다. 말하자면 타인에 의한 고통, 특히 사람들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는 타인들에 의한 고통도 있지 않은가? ‘자기착취’로 보이는 현상이 실은 착취자와 착취사회에 저항할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이 현실에 적응한 결과는 아닌가?

한병철: 소진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오히려 권력이나 돈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더 많다. 곧 무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무력감에서 빠져나오려는 시도의 결과다. 타인착취 시대의 착취자는 자기착취 시대의 착취자와 다르다. 피로사회, 성과사회에는 우리가 제거할 수 있는 자본가와 같은 타인착취자가 없다. 자본가 스스로 자기착취를 하기 때문이다. ‘착취자와 대다수의 사람’으로 구분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발상인데, 여기에서 벗어나야 피로사회의 새로운 현상과 문제를 볼 수 있다. 가난한 서민들이 자기착취를 하는 것은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을 착취하는 것이다."

..... (중략) 

나의 피로사회 담론은 정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피로사회의 희생자는 분배를 못 받은 서민만이 아니라 수입이 많은 매니저, 교수들이다. 적은 양의 파이를 차지하는 대다수만이 아니라 가장 많은 양의 파이를 차지하는 소수도 희생자다. 신 교수는 분배를 적게 받는 사람들을 희생자로 보지만, 나의 피로사회 담론에서는 분배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조차 자신을 착취한다. 마르크스주의적인 범주를 가지곤 내가 말하는 피로사회를 이해하기 힘들다.

......

하지만 피로사회의 자기착취는 성형수술에 비유할 수 있다. 성과에 희열을 느끼고 더 많이 하다가 쓰러지고 만다. 성격이 다르다. 보상을 받는 승자 역시 결국엔 쓰러진다. 승자와 패자의 도그마적 도식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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