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아래, 노무현을 전두환과 수구꼴통에 비교하는 진정한(?)진보님께서 왕림하셨다가 가셨군요. 저런 진보님들에게 2006년 5월 경에 제가 올렸던 글이 있어 퍼옵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좀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가져와 봅니다.

1. 이 글의 목적

어떤 블로거님의 대분에 보면 ‘진영논리를 넘어서’라는 구호가 나온다. 내가 이글에서 하고싶었던 것은 바로 그말이다. 진영논리를 넘어서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고 사실을 내 의도에 맞추어 왜곡하지 말자는 것이다. 보수도 진보도 진영논리를 넘어서서 바른 말을 할 때 함께 발전할 수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여기서 ‘바른 말’이라는 것이 어떤 말이냐는 것에는 주관이 들어갈 수 있다. 내가 이글에서 애초에 하고 싶었던 요지가 바로 그 ‘바른 말’에 대한 것이다. 진영논리를 넘어서 바른 말을 하자. 그리고 그 바른 말이라는 것은 이런 이런 말이다... 이렇게 논지를 이어가고 싶었다.



2. 허황된 레토릭-노혜경은 악마고 평택은 광주인가?

노혜경은 부적절한 말을 부적절한 타이밍에 했다. 방금그 전문을 읽어보았는데 결국 성형수술에 준하는 수술을 하느라고 60바늘을 꿰맸는데 언론은 이를 선정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60바늘부터 대문에 건다.. 라는 요지다.

틀린 말 아니다. 그러나 민감한 시기에 적절하지 못한 단어선택, 그리고 사실관계도 잘못알고 있는 글이다. 예컨대 어떤 봉합수술도 성형수술과 동시에 하는 경우는 없다. 얼굴일 경우 성형외과 의사들이 최대한 흉터를 줄이기 위해 성형에 준하는 수술을 하지만 이는 성형수술이 아니고 봉합수술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는 그렇다. 최대한 흉터를 줄 인후 나중에 다시 흉터를 지우는 수술을 해야하고 이 수술을 성형수술이라고 칭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몇몇 뉴스에서 “성형수술을 함께 했으며”, “성형에 준하는 수술이었으며”, “성형수술에 쓰이는 실을 사용했으며” 등등의 발언을 해서 사안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이 뉴스를 접한 노혜경은 박대표가 성형수술을 받은 것인데 언론이 너무 선정적으로 보도한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대한 코멘트를 저렇게 표현 한 것이다.


서투르고 부적절 했다. 그러나 노혜경의 발언의 진의는 무엇인가? 실제로 언론이 제목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뽑지 않았나? 그건 사실관계가 아닌가? 일반인들은 60바늘을 꿰매었다고 하면 심리적인 충격을 받지 않을까? 노혜경이 오버해서 나선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녀가 박대표의 고통을 비꼬고 비웃고 힐난 했던 것일까?


보수언론은 정확하게 여기서 팩트를 뒤틀고 여론을 호도한다. 더구나 박대표는 자연인 박대표가 아니다. 어느 누가 자연인 박대표의 피습에 가슴 아프지 않을까? 만일 노혜경이 박대표 옆에 있었다면, 그리고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면 그녀를 업고 정신없이 뛰었을 것이다. 누가 그러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노혜경의 비판의 초점은 언론이었고 그가 비판한 박대표는 자연인 박대표가 아니라 야당의 대표 박대표였다. 이 맥락을 무시하면서 언론은 여론을 통해 마녀사냥을 벌인다. 노혜경은 악마라도 되는 양 말이다.


내가 하고픈 말은 이러지 말자는 말이다.


반면에 평택범대위나 기타 진보지식인을 보자. 평택이 광주란다. 어제 광주가 고향인 분과 잠시 통화를 했다. 그분의 집안은 한국현대사의 굴곡으로 그늘져 있는 분이다. 그런데 그분은 이를 한 마디로 일축했다. 평택이 광주라니, 광주를 팔아먹지 말아라. 그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듣고 머리끝까지 화가 솟구치더라.


일말의 형식적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한 군사쿠데타정권이 항의하는 시민을 죽이기 위해 공수부대를 배치하여 발포한 사건과 군사시설을 짓기 위해 공병대를 파병해서 시위대와 대치한 것을 동렬에 놓고 비교할 수 있나?


물론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고 주민을 내쫒는 현 정권의 행위, 비판 받아 마땅하다. 부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노무현, 짜증나고 열 받는다. 그러나 우리 과장하지 말고 왜곡하지 말자. 노무현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좋은데 노무현=전두환이라는 어이없는 공식은 제발 자제하자.


내가 보기에 위의 주장들은 모두 허황한 레토릭이고 현실의 왜곡이고 사실관계를 비트는 짓이다. 그리고 얻는 것들은 선동이고 지지자들의 감정적 흥분이다.


그러나 양자에 심각한 차이 점이 있다. 조선일보의 저 허황한 레토릭에 여론은  호도된다는 것이다. 지금 각 게시판에 쏟아지는 노혜경 비판을 살펴보자. 사실관계에 관심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저 노혜경 죽일 년이다. 이 선동의 결과로 한나라당은 지방선거를 싹쓸이 할 것이고 조중동은 브라보를 외칠 것이다.


그러나 평택을 광주라고 외쳐서 진보단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여론의 동조? 평택사건에 대한 호의적인 재고? 노무현정권을 타도하기위한 시민의 궐기? 그것도 아니면 민노당의 지역선거 제패?


그럴까? 내가 보기에는 그나마 지지했던 사람들의 이탈과 진보세력에 대한 비웃음을 얻을 공산이 훨씬 커 보인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의 반응은은 그렇다.


다시 말해 조선일보와 비슷한 수사법을 구사해도 조선일보는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데 진보세력은 그러지 못한다는 말이다.


나는 노무현을 무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진보세력은 유능한가? 일전의 글에서 유능하다는 것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A를 얻기 위해 B를 했다.
유능한 경우 : A를 얻거나 혹은 A+C를 얻거나 적어도 A을 얻을 확률을 높인다.
무능한 경우 : A를 얻지 못하거나 혹은 오히려 얻을 얻을 확률이 낮아진다.

지금 진보세력의 행위가 유능한 것일까? 노무현 정권보다 나은 것일까? 내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이게 답답하다.



3. 노무현은 빨갱이다?

어제 후배한명과 이야기 했다. 지난번 내 포스팅과 관련해서다. 설마 노무현을 빨갱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겠냐? 그러자 그 후배가 말한다. 선배가 몰라서 그래요. 우리 집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버지는 북한 김정일에게 우리 나라를 넘겨 줄 요량으로 노무현이 북한에게 퍼주기를 하고 평택을 방치하고, 심지어 범대위와 내통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해요.


어이가 없었다. 그게 정말이냐? 그럼요.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아요.

그 후배의 아버님은 무려 교수님이시다. 스스로를 지성인이라 여기는 우리나라의 기성세대의 인식이 이러하다. 이 현실을 무시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수구꼴통이라고 레이블링 당하는 노무현을 다른 한쪽에서는 빨갱이라고 말한다. 

빨갱이라는 레토릭은 조선일보와 월간 조선의 레토릭이고 수구꼴통이라는 것은 진보세력의 레토릭이다.


무엇을 근거로, 왜 노무현은 이런 레이블링을 당해야 할까? 보수언론의 헛소리에는 잠시 귀를 닫자. 어차피 헛소리일 뿐이니까. 그러나 진보단체는 왜 노무현을 수구꼴통에 전두환과 동격이라고 외치나?


이라크에 파병하고, 재벌위주의 경제정책을 펴고, 개혁이라고는 하는 것이 없고, 강남 땅부자들만 돈 벌게 해주고,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그리고 평택에 군을 투입해서 노무현은 수구꼴통?


이라크에 파병한 정권은 많고 양극화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결과 전 세계에 불어 닥치는 현상이고, 부동산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노무현은 무능하고 그의 관료들은 아마추어틱하다. 그럼 수구꼴통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무능하고 아마추어틱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가?


무능하고 보수적이며 아마추어틱한 정권을 우리는 수구꼴통이고 심지어 군사쿠데타정권이라고 레이블링해야 한다면 우리 주변에 수구꼴통은 너무나 많다. 그런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규정한다. 그리고 사고는 다시 우리의 행위를 규정한다.  허황한 언어를 사용하고 과장된 언어를 사용할 때 우리의 사고는 조악해지고 행위는 현실과 충돌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변혁시켜야할 현실은 우리의 발 밑에 놓여 있는 것이지 저 높은 관념, 그것도 허황되고 현실과 유리된 관념의 세계에 노닐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물론 미시적인 현실을 분석하고 이해한다는 것과 현실에 매몰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할 때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예전에 학교에서 나는 일군의 선배들을 향해서 이렇게 외친 적이 있다. 당신들은 관념론자라고. 문건에 적힌 관념어들만을 보고 당장 학교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유물론자라고 여길지라도 관념론자일 뿐이라고. 현실과 관념이 충돌할 때에는 마땅히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맞지 않는 관념의 끝을 잡고 매달린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닐텐데.


4. 노무현을 비판하자. 그러나 바르게 비판하자.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난 노무현정권과 열린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대선에서는 노무현을 찍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보수주의자이고 좋게 보아야 휴머니즘을 가진, 혹은 온정적인 보수주의자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적 이념을 실현시켜줄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을 어느 정도 알게 된 내게 별다른 선택사항은 없었다. 이회창이 당선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나라당은 어떤 경우에도 정권을 잡아서는 안되는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정상적인 국가라면 한나라당은 이미 해체되었어야 마땅한 정당이다. 만일 역사가 바르게 청산되었다면 한나라당은 공중분해되었고 한나라당의 몇몇 정치인들, 그리고 두 전임대통령은 형장에서 사라졌거나 아직도 수감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의라는 것이고 그것이 당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국민들의 40%는 변함없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심지어 대통령을 탄핵시켰을 때도 한나라당은 상당한 의석을 차지했다. 평소 스스로를 ‘진보’라고 착각하시는 어떤 연세 지긋한 분은 그것을 ‘황금구도’라고 말했다. ‘사회주의정권’에게 갑자기 권력을 너무 많이 넘기면 안된다는 의견을 피력하시면서. 외국에 유학까지 갔다 오신분이 노무현정권을 사회주의정권이라고 말하는 이 현실. 모 목사님만 나무랄 처지가 아니다.

지금도 나는 노무현정권의 성립은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애초부터 나는 노무현이 진보를 위해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무능할 줄은 몰랐다. 노무현이라는 한 정치적 인물이 몰락하더라도 그를 대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경험, 그리고 아직도 우리 사회의 주류인 저들과 맞서 대중적인 힘을 결집시킬 수 있었던 경험은 소중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진정한 진보정권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망해 본다. 이 소망이 노무현정권의 의미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난 노무현을 비판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헛된 비판, 왜곡된 비판에 대해서는 비판 자체를 비판할 것이다. 그 비판이 노무현을, 이 정권을 다치게 해서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르게 비판하지 못한다면 그 비판은 오히려 진보를 향한 칼이 되어 돌아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수구꼴통이라고 레이블링하는 것에 대하여 내가 속상해 한다고? 노빠이기 때문에 그를 비판하는 것을 가슴아프게 여긴다고? 전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서프가 저렇게 망가지기 전에 나는 가끔 서프에서 노무현정권에 대한 비판을 하곤 했다. 그들이 경기하는 모습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저들은 이 정권이 저렇게 처참하게 망가지는데 일조한 무리들이다. 그러나 나는 진보세력의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무능한 정권이 만들어준 판에서 진보세력은 제대로 자리 잡았을까? 한총련이 유명무실해지고, 학생회가 비정치적으로 되는 이 상황을 보자.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일까?

바른 비판을 위해서는 바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진영논리를 넘어서서,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언어, 사실을 사실대로 표현하는 언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저들과 같은 수사법을 쓰면서 저들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