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결국 뉴턴의 이론을 물리쳤다. 여전히 고등학교에서는 뉴턴 물리학을 가르치고 공학자들이 뉴턴 물리학을 응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물리학자들은 뉴턴 물리학보다 아인슈타인 물리학이 더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이 순전히 과학적이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과학자들은 늘 특권을 원했다. 그런데 자신의 이론을 대중도 쉽게 이해하면 그 특권이 위협 받는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늘 대중이 알기 힘든 이론을 원했다. 그래야 그 이론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특권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는 뉴턴의 이론보다 훨씬 더 어려운 수학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연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것이 특권에 대한 과학자들의 욕망과 부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상대성 이론은 이런 과학자들의 특권에 대한 욕망의 산물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과학자들의 권력 욕망의 산물이다. 니체와 푸코는 옳았다.

 

그런 권력 욕망 때문에 상대성 이론을 구상하고 발표했다는 점을 아인슈타인이 의식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권력 욕망이 아인슈타인의 무의식 속에서 작동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의 무의식 속에서 그런 권력 욕망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태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왜 절대 다수의 물리학자들이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으로 개종했는지를 따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상대성 이론이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물리학자들의 권력 욕망만 작동한 것이 아니다. 20세기의 시대 정신 역시 중요한 요인이었다.

 

20세기는 문화적 상대주의가 큰 힘을 얻은 시기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월한 백인의 유럽과 그보다 열등한 황인종의 아시아와 그보다도 더 열등한 흑인의 아프리카로 세상이 나뉘었다. 적어도 유럽과 북미의 백인들은 세상을 그렇게 보았다. 하지만 20세기에 사람들의 생각은 점점 바뀌었다. 어떤 문화권이 다른 문화권보다 더 우월하다는 식의 절대주의가 두 문화권이 서로 다를 뿐이라는 상대주의에 점점 자리를 내 준 것이다.

 

물리학자도 이런 시대 정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절대적 시공간에 바탕을 둔 뉴턴의 물리학보다는 상대적 시공간에 바탕을 둔 상대성 이론에 더 끌리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물리학자들의 무의식적 생존 전략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이론을 지지해야 20세기 사회에서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20세기는 불확실성의 세기이기도 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과학이 꾸준히 진보하며, 이 진보는 인간 삶의 꾸준한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론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면서 그런 낙관론을 힘을 잃었으며 사람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규모 공황과 전쟁에 불안해하게 되었다.

 

이것이 뉴턴의 절대적인 물리학이 무너지는 데 한 몫 했다. 사람들이 점점 더 절대적인 것에 대한 확신을 잃게 된 것이다. 물론 물리학자들도 이런 불안을 공유했으며 그런 불안 때문에 뉴턴 물리학보다 덜 절대적인 아인슈타인 물리학에 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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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 좀 쳐 봤다.

 

그런데 이런 장난 같은 이야기를 정말로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예컨대 대충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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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심리학은 자본주의 사회와 그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이기적 유전자론을 살펴보자. 유전자들은 서로 경쟁을 한다. 그 경쟁의 목적은 더 많은 복제다. 여기에서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또는 자본들)은 서로 경쟁한다. 그 경쟁의 목적은 더 많은 자본이다. 즉 자본의 복제가 목적이다. “유전자 사이의 경쟁”은 “자본가 사이의 경쟁”이 유전자에 투영된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간 본성이 고정되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자연 선택이라는 자연 법칙의 산물이니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고정되어서 더 이상 다른 체제로 이행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체제라는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와 비슷하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알게 모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이론에 투영될 수밖에 없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특히 인간의 이기심, 공격성, 외부인 혐오 등이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자본가들의 탐욕과 그 탐욕에서 비롯하는 전쟁까지도 정당화한다. 어차피 이기심, 공격성, 외부인 혐오 등이 불가피한 인간 본성이라면 그런 본성 수준의 악에서 비롯된 사회적 수준의 악도 불가피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체제 또는 자본가들을 탓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물론 진화 심리학자들이 의식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반영하려고 하거나 정당화하려고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들은 자신이 순수하게 학문을 추구한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무의식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련 체제가 붕괴하면서 자본주의 극복에 대한 희망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것은 진화 심리학이 학계에서 그리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과학자도 대중도 공산주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는 듯 보이자 더 대담하게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물론 이것도 무의식적 수준에서 일어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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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 이론이 인기를 끌게 된 사회학적 이유에 대한 나의 장난과 진화 심리학이 인기를 끌게 된 사회학적 이유에 대한 그들의 진지해 보이는 담론을 비교해 보라. 나는 둘 사이에서 차이를 못 찾겠다.

 

나는 상대성 이론에 대한 나의 사회학적 설명을 검증할 생각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장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화 심리학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을 제시한 사람들도 그것을 검증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냥 그럴 듯해 보이는 이야기를 제시하면 그것이 곧 진리라고 믿는 모양이다. 그들이 진화 심리학을 두고 그럴 듯한 이야기만 양산하는 사이비과학이라고 비난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재미 있는 일이다.

 

 

 

이기적 유전자론은 유전자 수준에서 자연 선택을 따진다. 만약 유전자 수준의 자연 선택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유전체내 갈등(intragenomic conflict)를 이해할 수 없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이기심, 공격성, 외부인 혐오에 대해서도 연구하지만 인간의 이타성, 도덕성 등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사실 이타성은 이기적 유전자론자들과 진화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주제다. 아마 초창기에 이 주제가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동물이 보이는 이타성이 자연 선택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친족 선택 이론, 상호적 이타성 이론, 핸디캡 원리 등이 제시되어 이 수수께끼는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나는 사회적 요인이 과학 공동체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요인을 연구하고 싶다면 우선 그 과학 공동체에서 하는 주장과 그 근거에 대해 상당히 잘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진화 심리학 비판자들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과학 공동체에 끼치는 사회적 요인에 대한 분석 역시 과학적이어야 한다. 뭔가 그럴 듯한 이야기를 제시하고는 그것을 그냥 믿으라고 한다면 제 정신인 사람 중에 누가 믿겠는가?

 

물론 과학 비판자들 중에는 과학적 지식의 특권을 부정하며 과학적 지식만큼이나 신화적 지식도 진리에 가깝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사람이 그럴 듯한 이야기를 제시하는 수준에서 만족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내가 왜 바보들의 합창까지 비판하면서 내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가?

 

 

 

이덕하

201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