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안 것은 고 장준하 선생(이하 모든 사람 존칭 생략)의 장남 장호권의 인터뷰를 읽고서였습니다.(*1) 장호권의 발언에 따르면 자기의 어머니가 천주교 신자인데 '같은 천주교 신자인 박근혜'라고 했기 때문입니다.(참조로 박근혜의 천주교 세례명은 율리아나, 불교 법호는 선덕화(善德華)입니다)

 

박근혜. 장호권의아버지 변사와 관련된 박근혜를 바라보는 시점은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과거를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두번째는 '박근혜는 당시 어리기 때문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세번째는 '박근혜는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입장은 밝혀야 한다'




저의 박근혜에 대한 시각은 세번째와 비슷합니다.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박정희의 후광을 입어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오른 시점에서, 현재 새누리당은 계보상으로 보아 과거 박정희의 공화당의 '적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계보 때문에 연좌제는 폐기해야 마땅한 악법이지만 박근혜는 박정희와 '정치적 연좌제 죄'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박정희의 공화당 --> 박정희의 양아들이라는 전두환의 민정당 --> 전두환과 518 학살 공모자인 노태우의 민정당 --> 김영삼의 노태우와의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신한국당 --> 그 이후의 신한국당은 당명만 바뀌었지 그 구성 인원이나 면면, 그리고 대한민국에서의 역사에의 인식이 비슷


 

그러나 박정희의 정치적 연좌제를 묻고 또한 새누리당이 공화당의 계보를 잇는다고 해서 제가 박근혜를 비토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물론, 호남 네티즌들이 박근혜에게 투표를 할 수 있는 것과 제가 박근혜를 비토하는 것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설명한 것처럼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1. 약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호남에의 차별은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2. 내가 호남 차별을 이해하고 그들의 정서를 이해한다고 해도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정치적 측면'에서 나는 제 3자이다.
3. 왜냐하면 나는 테제의 선후를 판단한다면, 사회적 차별이 호남에의 차별보다 먼저 극복되어야 할 테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호남인들은 호남의 차별 극복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 차별은 보완관계에 있고 호남차별 극복은 정치적 요소가 크므로 오히려 극복하기 쉬운 테제이다. 내가 호남차별 극복 방식에서 진중권의 방식을 옹호했다가 강준만의 방식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선회한 이유이다.

부언하자면, 오히려 호남인들 중에 호남의 차별 극복보다 사회적 차별을 부르짖는 것은 기만이며 위선이다.

예를 들자면, 특히 개신교 신자들에게서 종종 발생하는데 자기 가족이나 자식들에게는 최선을 안하면서 교회의 기부금을 왕창 내거나 또는 사회에 왕창 기부하는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내 선배 중에 이렇게 대책없는 선배가 있다. 하도 얼척이 없어서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신차리라고 뺨을 몇 대 때렸기까지 했다. 뭐... 내게 진 빚을 갚지 않고 거액기부를 해서 열이 받아 그런거지만.... 결과? 선배들 사이에서 선배 패는 후배로 소문나서 왕따 ㅜ.ㅜ;;;)


내가 친노나 노빠를 증오하는 이유이다. 내가 위선적인 개신교 신도 선배의 뺨을 때린 것과 같은 정서이다.  나는 호남인이 박근혜에게 투표하는 것을 이 사회에의 폭력 행위로 간주하지만 말콤X의 폭력의 정당성을 거론하면서  호남의 박근혜의 투표가 정당함은 이미 설명한 적이 있다.




 

호남인의 박근혜에의 투표는 이 사회에의 폭력이지만 정당성이 있다고 했지만 저는 여전히 호남인의 최선의 선택은 기권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뭐, 내가 남의 장래를 놓고 왈가왈부할만큼 현명하지도 않고 미래를 예측하는 힘도 없으니 강권(?)을 할 수도 없고 강권을 해서도 안됩니다만. 각설하고,




 

장호권의 '박근혜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라는 것을 사실관계를 들어 확인해 보겠습니다.

1973년 3월 김대중 납치 사건 발생
1974년 8월 육영수 피살 (당시 박근혜 나이 만 24세)하자 프랑스 유학 중이던 박근혜가 귀국하여 퍼스트 레이디 역할 수행
1975년 4월 사법살인이라는 인혁당 사건
1975년 8월 장준하 의문사

 

박근혜는 김대중 납치 사건 발생 당시 프랑스 유학 중이었고 육영수 피살 후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수행했지만 1년 내에 발생한 사건이고 '정황상' 그 어린 나이에 저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는데 가담할 수도 없었고 가담하지도 않았을거라 판단합니다. 따라서 장호권의 두번째 주장인 ''박근혜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라는 말은 '맞다/라고 판단해도 큰 오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호권의 세번째 시각인 '박근혜는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입장은 밝혀야 한다'에 대하여는 장준하 의문사 뿐 아니라 인혁당 사건 역시 마찬가지로 '입장을 밝혀야 한다(정확히 표현하자면 과거에 입장을 밝힌 적이 있기 때문에 입장을 다시 밝혀야 하다... 입니다만)


 

물론, 서른이 되기 전에 설사 독재자였다고 하더라도 양친 부모를 다 잃은 박근혜 입장은 같은 인간으로서 동정이 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마 이런 저의 정서는 국민들에게 많이 퍼져있을겁니다. '홍도야 우지마라'라는 트로트 노래가 노래방 애창곡 상위에 아직도 랭크되고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애창곡으로 꼽히는 이유가 우리나라 가족 구성 상 '오빠와 누이동생' 누나와 남동생'이라는 혈연 관계가 '형제 남매 지간의 정 중에서는 가장 끈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가 대게 남매로 구성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따라서 박근혜는 때릴수록 지지자층이 더 올라갈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이번 전태일 기념관 방문 시도 그 것을 비토해서 국민들에게 '때린다'라는 인상을 주는 대신 쌍용자동차에 대하여는 왜 방문 안했느냐......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져야 했습니다. 때릴수록 커지는 지지도...... 그게 박근혜에 대한 '오빠' 또는 '남동생'에 대한 애틋한 정이 연유한 까닭이겠지요.


 

어쨌든, 장준하 의문사 및 인혁당 사법살인 후에 일어났던 '반민주적인 사건들' 역시 박근혜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그러나 박근혜가 30살이 채 안된 나이에 양친 부모를 잃은 아픔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인혁당 사법살인으로 인하여 그들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난사는 박근혜에 대한 동정심을 훨씬 상회하고 분노까지 느끼게 합니다. 왜 그들이 그런 험난한 인생역정을 걸어야 했는가...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근혜의 입장은 단호할 뿐 아니라 해괴하기까지 했습니다. 인혁당 사건을 재심한다는 노무현 정권 당시의 발표가 있자 박근혜는 단호하게 '대법원 판결까지 간 것을 재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노무현 정권이 순수한 의도로 인혁당 사건을 재심했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판단 근거가 몇 개 있는데 그 부분은 이 글의 논점과는 별개이므로 설명을 생략하고, 어쨌든 억울하게 죽어갔을지도 모르는 그리고 그로 인하여 오랜 시간을 고통받아야 했고 그 고통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그 아픔을 달래는 아주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이 사형을 선고해,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해서 '사법살인'이라고 불리우기까지 하는 그런 사건을 두고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박근혜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심을 엷게 만들었습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그래도 박근혜는 생활고를 겪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러나 인혁당 사법살인으로 살해당한 유가족은 '빨갱이의 가족'이라는 사슬을 쓰고 그 사슬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과 함께 극심한 생활고를 겪여야 했는데 너무도 간단한 대답...... 18시간만에 사형을 집행한 사건을 두고 대법원에서 판결까지 났으니 재심 불가.....라는 박근혜의 단호함........... 그 것이 내가 박근혜를 비토하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만일, 이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근혜의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인간적인 동정심마저 엷게 만드는 발언만 아니었다면 저는 박근혜를 비토하는 두번째 이유, '장준하가 박정희를 야단친 사연'에 얽힌 진실 정도는 잘못되었지만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있을겁니다. 과거보다는 미래가 중요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전개되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해야한다'는 당연한 전제를 생각한다면, 박근혜의 인혁당 사건에 대한 시각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가 박근혜를 비토하는 두번째 이유인 '장준하가 박정희를 야단친 사연'을 설명하겠습니다. 백기완의  《한국현대사의 라이벌》(역사비평사, 1991) 211~212페이지(*2)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 선언을 하는 바람에 모든 군사작전이 백지화되었다. 광복 직후 그(장준하)는 광복군 대위로 진급했다. 앞서 8월 14일 이범석, 장준하, 김준엽, 노능서 등은 서울로 향하는 미군기에 편승해 서해 상공을 날았으나 미국과 일본의 방해로 회항했다. 장준하 일행은 다시 중국 시안으로 되돌아갔다가, 그해 11월 23일 임시정부 주석 김구 등 임정요인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경기도 김포군 김포공항에 내렸다. 이후 그는 김구의 비서로 정치, 사회활동을 시작하였다.
 

1945년 9월 초순 광복군 장교인 장준하는 중국 서안에서  박정희를 만났다는 주장이 있다. 장준하의 측근인 이철우의 증언에 따르면 장준하는 박정희를 질타했다고 한다.

 ------------------------------------------------------------------------------------
"박정희는 전형적인 일본식 군대 방침을 독립군에게 강요했다. 이에 장준하 선생이 ‘너 뭐야’하고는 반말로 욕을 했대요. 그랬더니 이 사람이 나와서는 경례를 딱 붙이더랍니다. 하도 화가 나서 아무 생각없이 모자를 휙 벗겨서 땅에다 밟고는 ‘너는 독립군 모자를 쓸 자격이 없어, 독립군 훈련을 일본식으로 해?’ 하고 야단을 쳤답니다. 그랬더니 고개를 푹 꺾고서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하는데 일본말로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더 감짝 놀라서 상부에 보고를 했답니다. 일본 군대 출신들이 피난민 대열에 끼어 있다가 광복군에 들어왔는데, 이 사람들이 일본군의 밀정일지 모르니 전부 제거하자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 장준하 선생이 그 사람이 박정희였다는 것을 어떻게 기억하냐면, 잘못했다는 말을 일본말로 했다는 것, 딱 한가지예요."
 
5·16 군사정변 후에 박정희가 장준하를 만나자고 청해 왔어요. 그런데도 장준하 선생은 ‘내가 왜 군대 반란을 일으킨 놈을 만나느냐’면서 만나지 않았는데 신문에 난 박정희를 보니 낯익은 얼굴이더랍니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 등 몇사람을 사상계 사무실로 불러서 ‘이 사람은 내가 옛날 만주에서 만나본 일본군이다. 행적을 알아보자.’고 발언을 한 겁니다. 이 이야기가 박정희에게 들어갔고, 그것이 개인적으로 장준하를 싫어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답니다.
------------------------------------------------------------------------------------


어쩌면  만일, 장준하의 의문사에 박정희가 연관이 있다면, 장준하는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정치적 적 때문이 아니라 박정희의 친일 행각을 넘어(*3) 뼈속까지 친일(*4)이었던 과거가 밝혀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이 됩니다.


 

내가 내가 박근혜를 비토하는 두번째 이유입니다. 그러나 나는 올해 대선을 포기할 것입니다. 저는  안철수를 지지하지만 그건 사회 공개념 측면에서 지지하는 것일 뿐 안철수가 나의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으며 문재인은 정말 가망없다고 생각하고 박근혜는 최소한 두가지 이유 때문에 내가 비토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지금이라고 박근혜가 인혁당 사건에 대하여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저는 '수구꼴통'이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박근혜에게 투표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지금 민주당은 '장준하 의문사'만 거론할 뿐 그보다 더 심각한 '인혁당 사건'에 대하여는 거론조차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일들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민주당과 박근혜.................. 나는 이 둘의 차이를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박근혜를 비토하면서도 민주당에 투표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이익이 없을 안철수.............


 

저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할 후보가 없는 경우,  투표 기권은 정치권에 대한 또 하나의 유효한 메세지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1) 《고성국의 정치in》[51]故장준하 선생 장자,장호권씨 "박근혜 용서는 하겠다. 그러나 잊지는 말자"”, 《프레시안》, 2010년 10월 25일 작성.

*2) 장준하의 의문사 : http://ko.wikipedia.org/wiki/%EC%9E%A5%EC%A4%80%ED%95%98

*3) 박정희의 친일행각 : 저는 혈서 사건 당시에 그 것을 거론한 당시 오마이뉴스의 편집장이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의 발언 '혈서는 증명되지 않았지만 확실시 된다'라고 한 발언을 두고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증명되지 않은 사건'을 두고 미리 확정지어 보도하는 언론....... 내가 그 이후로 오마이뉴스는 쳐다보지도 않게된 계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썼다가 조금 논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크로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산하님도 저에게 뭐라고 했던 기억이 나던데 좀 얼척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마이뉴스 편집장의  '혈서는 증명되지 않았지만 확실시 된다'라는 발언 이후 찾아본 결과로는 그 혈서가 실렸다는 만주일보를 서울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혈서가 실린 날짜 이전의 날짜분까지만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아마, 박정희가 훼손 시키지 않았을까...... 그리고 식민지사관의 서울대 역사학자 4인방의 충성의 표시로 없어지지 않았나...라고 생각했지만 설사 훼손시켰더라도 확인이 안된건 안된거니까요.)


 

그러다가 나중에 제가 저의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오마이뉴스 편집장의 발언 후에 3개월인가 지나 그 혈서가 진짜 보도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당연히 저는 입장을 바꾸어야 했는데 과연 오마이뉴스가 언론으로서 잘한 짓일까요? 그런 추태가 아직까지 이어져서 이제는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조중동만큼이나 소멸시키지 않았나............ 싶습니다.


 

*4) 백기완의 저서 중 제가 인용한 부분의 가능성 여부는 여러분들이 각자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