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복 사건을 두고 여기 아크로에서 수많은 논쟁이 오갔습니다만, 상호 이해를 통한 생산적인 결과물은 커녕 감정적 충돌만 난자합니다. (저도 과격한 언사를 했던 점에는 반성하고 사과를 드립니다)

이 논쟁이 워낙 중구난방으로 튀고, 각자의 주장이 상이하고 강조점이나 그 강도가 달라 생산적 토론을 위해 논쟁에 참여한 분들이 기본적인 fact에 동의하고 토론을 계속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제 나름으로 안용복 사건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가 정리한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반론하실 것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 주십시오.



<안용복 사건을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우리측 논리>

1. 안용복 사건을 우리측이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안용복이 비변사에서 진술한 다음의 내용입니다.


“저는 본디 동래(東萊)에 사는데, 어미를 보러 울산(蔚山)에 갔다가 마침 중[僧] 뇌헌(雷憲) 등을 만나서 근년에 울릉도(鬱陵島)에 왕래한 일을 자세히 말하고, 또 그 섬에 해물(海物)이 많다는 것을 말하였더니, 뇌헌 등이 이롭게 여겼습니다. 드디어 같이 배를 타고 영해(寧海) 사는 뱃사공 유일부(劉日夫) 등과 함께 떠나 그 섬에 이르렀는데, 주산(主山)인 삼봉(三峯)은 삼각산(三角山)보다 높았고, 남에서 북까지는 이틀길이고 동에서 서까지도 그러하였습니다. 산에는 잡목(雜木)·매[鷹]·까마귀·고양이가 많았고, 왜선(倭船)도 많이 와서 정박하여 있으므로 뱃사람들이 다 두려워하였습니다. 제가 앞장 서서 말하기를, ‘울릉도는 본디 우리 지경인데, 왜인이 어찌하여 감히 지경을 넘어 침범하였는가? 너희들을 모두 포박하여야 하겠다.’ 하고, 이어서 뱃머리에 나아가 큰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본디 송도(松島)에 사는데 우연히 고기잡이 하러 나왔다. 이제 본소(本所)로 돌아갈 것이다.’ 하므로, 송도는 자산도(子山島)로서, 그것도 우리 나라 땅인데 너희들이 감히 거기에 사는가?’ 하였습니다. 드디어 이튿날 새벽에 배를 몰아 자산도에 갔는데, 왜인들이 막 가마솥을 벌여 놓고 고기 기름을 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막대기로 쳐서 깨뜨리고 큰 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들이 거두어 배에 싣고서 돛을 올리고 돌아가므로, 제가 곧 배를 타고 뒤쫓았습니다.'


위 안용복의 진술에서 “松島는 자산도(우산도)로서, 그것도 우리 땅”이라고 안용복이 말했다는 이 단 한마디가 우리측이 내세우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근거입니다.


2. 당시 조선 조정은 안용복과 박어둔의 진술은 범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피하고자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진술했다고 보고, 안용복의 진술을 믿지 않았으며, 현재의 (역사)학자들도 안용복의 진술에는 거짓이 섞여 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3. 안용복 사건은 조선과 일본간의 울릉도 분쟁이지 독도 분쟁이 아닙니다. 조선은 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이나 그 이후에 일본측에 독도(일본의 송도)에 대해 우리 땅임을 요구한 적도 없으며, 그것을 적은 서계를 일본에 보낸 적도 없습니다. 일본은 당시에 독도(송도)는 언급조차 없이 울릉도도 자기 땅이라면서 조선이 울릉도에서 물러갈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4. 일본(에도막부)으로부터 울릉도(죽도)를 조선 땅으로 인정한 서계를 받았다는 안용복의 진술은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안용복은 일본으로부터 받았다던 서계를 빼앗겼다고 하여 가지고 올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있으며, 조선 조정도 안용복의 이 진술을 믿지 않았고, 일본의 기록 어디에도 서계를 주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또한 안용복의 도일 일정을 살펴보아도 물리적으로 에도막부에 갈 수 없는 상황임이 드러나 안용복의 서계는 거짓임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5. 우리측 논리는 안용복은 자산도(우산도)를 일본이 당시에 독도로 칭하던 마쓰시마(松島)라고 하였고, 우산도는 독도를 의미함으로 따라서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안용복은 마쓰시마(松島)를 어떻게 인식했고, 언제 알았을까>

6. 안용복은 1차 도일 전 울릉도에 머물 때 우산도를 2번 보았다고 했음으로 이 때 이미 우산도를 인식하였습니다. (이 때 우산도는 독도, 죽도, 일본이 말하는 마쓰시마 등 어디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현재 존재하는 어느 섬일 것이지만)

또한 이 때까지 안용복은 마쓰시마(松島)에 대한 인식은 없었으며, 일본이 독도를 마쓰시마라고 부르는 줄 몰랐습니다.


7. 안용복을 울릉도에서 일본 오키섬으로 잡아간(안용복의 1차 도일) 오야가의 배는 독도(마쓰시마)를 거쳐 갔음이 일본의 기록에 나옵니다. 그러나 안용복이나 박어둔은 독도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본 우산도가 독도라고 생각했다면 잡혀갈 때 우산도를 거쳤으며 보았다고 했을텐데 그런 진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안용복은 “도중에 바다 한가운데 섬을 보았는데 죽도보다 자못 컸다”는 진술만 했습니다. 안용복이 보았다는 이 섬은 죽도(울릉도)가 독도보다 318배 정도 큰 것을 감안할 때 아무리 착각을 한다 하더라도 결코 독도가 될 수 없습니다. 아마 오키섬이나 일본의 어느 섬일 확률이 높습니다. 안용복이 보았다는 이 섬을 독도라고 주장하는 박병섭의 논문은 잘못이라 여겨집니다.


8. 안용복이 1차 도일(잡혀간 사건)하고 조선으로 송환된 다음의 조사에 나타난 진술로 보면, 마쓰시마(松島, 독도)에 대해 인식했다는 내용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1차 도일 후 조선에 와서도 아직 독도에 대한 인식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2차 도일 전 울릉도에서 왜인을 만나 “송도는 자산도로서 우리 땅”이라고 한 말에서 안용복이 말한 송도가 과연 독도를 의미하는지는 의문입니다. 독도에 대한 인식이 잡혀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산도(우산도)를 독도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이 부분은 전적으로 제 추론이며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9. 안용복은 2차 도일시에는 조선팔도지도를 소지하고 갔으며, 일본 관리들에게 이 지도를 보여주며, 울릉도(죽도)와 우산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0. 안용복이 2차 도일 전이나 그 이후 1900년까지 우리나라 고지도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를 표기한 지도는 있으나, 독도를 나타낸 지도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안용복이 소지해 간 조선팔도지도는 울릉도, 우산도만 표기된 지도이고 독도를 나타낼만한 섬을 표기한 지도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11. 안용복이 2차 도일하여 일본관리가 심문한 기록에는 <이것을 松島라고 한다는데, 이것도 팔도의 지도에 쓰여 있습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안용복이 조선팔도지도의 어느 섬을 가리키며 松島(마쓰시마)라고 말했다고 보여집니다.


<우리측이 안용복 사건을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때 넘어야 할 산>

우리측이 안용복 사건을 독도는 우리 땅의 근거라고 주장할 때 넘어야 할 과제들은 다음의 4가지가 됩니다. 이 중에 단 하나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안용복 사건을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하는 근거로 내세울 수 없습니다.


12. 안용복의 진술은 당시의 조선 조정도 믿지 않았으며, 지금의 역사학자들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또 안용복이 받았다던 일본(에도막부)이 울릉도를 조선 땅으로 인정한 서계는 없었던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렇게 조선 조정도 믿지 않았고, 지금의 우리나라 역사학자들도 안용복이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안용복의 진술에 나온 단 한마디를 근거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증거로 삼을 수 있는가에 답해야 합니다.


13. 안용복이 말한 송도가 독도를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안용복의 말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안용복은 송도는 자산도(우산도)라고 하면서 우리 땅이라고 주장했음으로 우산도가 독도라는 것을 우리측이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문헌이나 고지도에 나타난 우산도는 울릉도나 죽도를 나타내는 내용은 많으나, 독도를 의미하는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우리측은 우산도가 독도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14. 안용복이 2차 도일시 갖고 간 조선팔도지도에 독도로 생각될만한 섬이 그려져 있지 않다면 안용복이 말한 송도(마쓰시마)를 독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안용복은 일본관리에게 조선팔도지도에 그려진 섬을 가리키며 松島(마쓰시마)라고 했음으로 우리 고지도에 독도를 나타내는 섬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야 안용복이 말한 마쓰시마는 독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고지도에는 우산도까지만 그려져 있지 독도를 나타내는 고지도는 없습니다. 우산도를 마쓰시마(독도)라고 주장하려면 13항에서 말했듯이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참고로 안용복 사건(1694년, 1696년) 뒤의 1711년에 조선 조정이 수토관으로 보냈던 박석창이 울릉도를 둘러보고 그린 울릉도와 그 주변 섬들의 지도를 링크합니다. 제가 첫 번째 링크하는 글의 필자는 박석창의 지도에 나오는 우산도를 독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지도를 잘 보시고 우산도가 독도인지 죽도인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박석창의 지도는 우산도가 아래쪽에 위치해 있어 우산도가 울릉도 남쪽에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지도 오른쪽에 子北, 아래쪽에 東卯가 표기되어 있음을 상기하시고 통상 우리가 북쪽을 위쪽으로 놓게 보게 되면 우산도는 울릉도의 동쪽에 위치한다는 것을 유념하십시오. 이에 따른 설명은 두번째 링크로 걸어 드립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ms1530&logNo=10032700058

http://theacro.com/zbxe/free/624041

위의 박석창의 지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우산도는 현재의 죽도임이 거의 확실하며, 독도는 명백히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수토관 박석창이 안용복 사건이 있은지 10여년 뒤(1711년)에 울릉도를 찾아가 그린 지도에 나타난 우산도가 죽도임을 나타내고 있는데,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본(1696년) 우산도가 독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15. 당시의 조선 조정은 독도에 대해 거론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일본측에 독도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일본에 보낸 서계에는 울릉도만 나오지 독도는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문서에는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용복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울릉도 공도화 정책을 유지했고, 독도를 관리했다는 기록은 커녕 독도를 인식했다는 기록조차도 없습니다.


<안용복이 말한 송도를 독도라고 해석할 때의 우리에게 돌아오는 부메랑>

안용복이 말한 松島가 독도를 의미한다고 한다면, 안용복의 진술에는 왜인이 松島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나옴으로 우리는 일본이 먼저 독도를 이용하고 관리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안용복의 진술에 따르면, 울릉도에 왜선이 많이 정박한 것을 본 것으로 볼 때 송도에는 왜인이 수십명은 살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들은 본디 송도에 살았다고 말하고 있으며, 가마솥을 걸어놓고 기름을 다렸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것은 적어도 왜인들이 송도를 근거지로 어업활동을 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일본은 이미 수십명이 독도에 살면서 울릉도까지 어업활동을 했다는 뜻이 되는데, 만약 일본이 이것을 독도에 대한 점유 혹은 이용의 역사적 증거로 제시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안용복이 말하는 송도가 독도라고 우리가 주장하는 순간, 일본은 독도에 대한 확실한 역사적 증거를 우리측으로부터 확인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용복 사건 이전에 독도를 이용했다거나 관리한 기록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독도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우리 스스로 일본에게 헌납하게 됩니다. 이건 완전한 자폭이지요.

* 저는 안용복이 말하는 송도가 독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왜인이 울릉도 근처에서 어업활동을 하면서 독도를 근거지로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울릉도는 조선의 공도화 정책으로 조선인이 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왜인들이 울릉도에 진출해 어업활동을 했습니다. 왜인들이 울릉도에 근거지를 두고 울릉도 부근에서 어업활동을 하면 되는데 굳이 90km나 멀리 떨어진 독도를 근거지로 할 이유가 없습니다. 수척의 배가 울릉도에서 활동했다면 그 인원이 먹고 살면서 지내기는 독도는 너무 열악합니다. 식수도, 땔감도, 집을 지을 재료도 부족한 바위 섬을 왜 근거지로 쓰겠습니까? 울릉도, 죽도와 같이 훨씬 더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이 있는데 말이죠. 또한 독도를 근거지를 두고 울릉도에까지 들어와 어업활동을 할 수도 없습니다. 독도에서 울릉도까지 거리는 당시에는 87.5km로 하루 걸리는 거리입니다. 이 거리를 왕복하려면 이틀이 걸리는데다 뱃길도 험난해 사고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지경인데 울릉도 어업활동을 위해 독도를 근거지로 삼겠습니까?

그리고 울릉도의 안소(안용복 일행의 기지)에 있던 박어둔과 안용복을 잡아간 것으로 보아 이들 왜인들은 울릉도에 살았거나, 근거지를 마련했다고 보여집니다.

이런 정황들로 유추해 볼 때, 왜인들이 살았다는 松島는 죽도이거나 울릉도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의사소통의 문제로 안용복이 잘못 알았던 것으로 보이구요.


<제가 추론한 안용복이 말한 松島>

제가 숙종실록, 변례집요, 그리고 일본측 자료 등 안용복과 관계되는 자료를 바탕으로 2차 도일시에 일본관리와 나누었던 상황을 추정해 보고 안용복이 말한 마쓰시마(송도)가 어디를 말하는지 추론해 보았습니다.

1) 안용복은 우산도가 그려진 당시의 조선팔도지도를 가지고 일본으로 들어갔다.

2) 일본관리의 심문에 안용복은 가지고 간 조선팔도지도를 펼쳐 자기의 도일과정을 설명한다.

3) 일본관리는 자기들이 이미 인식한 독도가 그려져 있는 일본측 지도와 비교하거나 머리에 그리면서 안용복의 설명을 듣는다.

4) 안용복은 조선팔도지도에 나타난 울릉도를 가리키며, 강원도 소속이고 대나무가 많이 난다고 설명하고 조선 땅임을 이야기한다.

5) 일본관리는 안용복이 설명한 울릉도는 일본이 칭하는 竹島라고 인식한다.

6) 안용복은 조선팔도지도의 울릉도 옆의 우산도를 가르키며 강원도 내의 자산(우산)이라고 한다.

7) 일본관리는 일본 지도를 생각하며(혹은 일본 지도를 옆에 놓고 비교하며) 그것이 일본이 말하는 松島(독도)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서로 오해가 생긴 것이 아닌가 저는 추론합니다. 일본 지도에는 竹島(울릉도), 松島(독도)만 그려져 있는데 조선 지도에는 울릉도, 우산도가 동해에 그려져 있으니, 일본 관리는 울릉도는 竹島로, 안용복이 가리킨 우산도는 일본의 松島(독도)로 착각한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일본의 기록을 보면, <이것을 松島라고 한다는데, 이것도 팔도의 지도에 쓰여 있습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 안용복이 갖고 간 지도에는 우산도가 그려져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만약 안용복이 갖고 간 지도에 울릉도, 우산도 말고 또 다른 섬(독도)이 그려져 있었다면 松島는 독도가 맞겠지만, 우리의 고지도에 독도가 따로 표기된 지도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안용복이 소지한 지도는 우리가 보아왔던 고지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8) 안용복은 우산도를 일본에서는 松島라고 부른다고 착각했고, 국내로 돌아와서는 울릉도, 우산도를 우리 땅으로 인정하는 서계를 받았다고 (거짓) 진술을 합니다. 


위에서 제가 추론한 바에 의하면 안용복이 말한 松島는 우산도로 지금의 죽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추가1 :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본 우산도는 어디일까

6번항에서 언급했던 안용복이 1차 도일 전 울릉도에서 두 번 보았다는 우산도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다시 한번 추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용복이 우산도를 보고 진술한 내용에서 우리가 어느 섬을 나타내는지 알 수 있는 단서는 다음의 3가지입니다.

1) 북동쪽에 있다.

2) 두 번 보았다.

3) 하루 정도 거리이다.


위 세가지 사항을 하나씩 검토해 보겠습니다.


1. 북동쪽에 있다

혹자는 울릉도 동남쪽에 있는 독도를 안용복이 방향을 잘못 알고 그렇게 진술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안용복이 방향을 잘못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용복 일행이 머문 기간은 3/27~4/17로 이 시기는 춘분이 갓 지난 시점으로 해가 거의 정동쪽에 뜰 때입니다. 따라서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해가 뜨는 쪽을 모를 리 없었을테고 동쪽을 바라보면 독도는 오른 쪽에 위치할텐데 그것을 보고 북동쪽이라고 착각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설사 독도가 보였다고 하더라도 실제 동남쪽에 있지만  워낙 멀리 있기 때문에 동쪽에 있다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독도가 북동쪽에 위치했더라도 안용복은 동쪽에 있다고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죠.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안용복이 말한 울릉도의 북동쪽 섬은 죽도일 가능성이 높고 독도를 지칭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 두 번 보았다

안용복 일행이 울릉도에 안소(기지)를 두고 머문 곳은 울릉도 북쪽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안용복 일행이 안소를 둔 곳이 울릉도의 북쪽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왜인들이 주로 울릉도 남동쪽의 저동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이고, 이들이 서로 조우한 것이 안용복이 울릉도에 도착한 후 20여일(박어둔의 진술로는 3일)이 지난 뒤라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인들이 주로 울릉도 남동쪽에서 활동했다면 울릉도 북쪽(혹은 북서쪽)에서 활동한 안용복 일행을 금방 발견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안용복 일행이  북쪽(혹은 북서쪽)에 안소를 두고 활동했다면 독도는 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죽도도 쉽게, 혹은 자주 보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독도는 울릉도의 남동쪽 먼 바다에 있기 때문에 울릉도의 북쪽이나 북서쪽에서는 절대 볼 수 없습니다.

하나의 가능성은 안용복 일행의 배가 바다로 나와 가리는 것이 없는 곳에서 보았을 때 독도를 볼 수 있느냐인데 이것도 가능성은 거의 제로입니다. 꽃가루님께서 두 섬이 볼 수 있는 거리(시달거리)를 산정하는 공식을 올려준 것을 기억하십시오.

D = 3.9236 (√H + √h)

미국 국립지리정보원(NGA)가 제공한 공식입니다. D : 두 지점간 거리 (km), H, h : 관측자와 목표지점의 해발 고도(m)

울릉도 <--> 독도 : 87.4km, 독도의 서도의 최고 높이(H) : 168.5m, 해상에서 독도를 보는 높이(h) : 3m를 고려하여 서도의 최고점을 보려면 독도 어디까지 근접해야 하는지 계산해 보십시오. 계산을 해 보니 독도에 57.7km 정도 근접해야 서도의 최고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그나마 독도를 인식하려면 독도의 위쪽 절반(상층부)이 보여야 할텐데 그럴 경우는 42.8km 이내에 접근해야 합니다. 이것은 울릉도에서 독도 쪽으로 거의 30km 정도 나가야 서도의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이고 독도로서 인식하려면 45km를 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이 거리를 왕복하려면 최소 하루가 걸릴테고 뱃길도 험난할 것인데 안용복 일행이 미역이나 전복을 따러 울릉도를 갔는데 이렇게 먼 바다를 나갈 이유가 없었을 것으로 보여 안용복이 독도를 두 번씩이나 볼 확률은 희박하다고 봐야겠지요.

안용복 일행은 전복이나 미역 채취가 목적이지, 삼림이나 약초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높은 산으로 올라갈 이유가 없어 독도를 볼 수 있는 방향인 동쪽의 높은 쪽으로 와 봤을 가능성도 없습니다. 더구나 울릉도에서 독도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 40~60일 정도라 안용복이 독도를 볼 수 있는 울릉도의 동쪽의 높은 곳으로 왔다고 하더라도 독도를 볼  확률은 1/6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모든 정황을 보아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20여일 머물면서 독도를 두 번 볼 확률은 로또 당첨될 확률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안용복이 독도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는 또 다른 근거가 있습니다.

고종의 명을 받아 1881년에 울릉도를 조사하러 간 이규원이 10여일 울릉도를 머물면서 조사했지만 독도를 보았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입니다. 죽도와 관음도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는데 말이죠. 조사를 목적으로 간 이규원도 독도를 보지 못했는데 미역과 전복을 따러간 안용복 일행이 독도를 보았을 확률은 극히 적겠지요.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일기> http://gall.dcinside.com/list.php?id=dokdo&no=7369&page=1&bbs=


3. 하루 정도 거리였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 안용복이 말한 거리입니다. 안용복은 우산도까지의 거리를 하루 정도의 거리라고만 했지 자기가 본 지점이 어디인지, 뱃길을 기준 한 것인지, 육로로 걸어 가는 것을 기준한 것인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용복 일행이 안소를 울릉도에 두었기 때문에 울릉도(육지)에서 보고 거리를 대중한 것으로 생각했고, 육로에 대한 안용복의 거리 감각은 다음의 진술에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안용복이 본 우산도는 죽도일 가능성을 높게 본 것입니다.


<드디어 같이 배를 타고 영해(寧海) 사는 뱃사공 유일부(劉日夫) 등과 함께 떠나 그 섬에 이르렀는데, 주산(主山)인 삼봉(三峯)은 삼각산(三角山)보다 높았고, 남에서 북까지는 이틀길이고 동에서 서까지도 그러하였습니다.>


울릉도의 동서, 남북의 길이는 각 10km 정도, 둘레는 56km 정도가 됩니다. 안용복이 동서, 남북을 각 이틀 거리라고 묘사한 것으로 보아 육로라면 자기가 본 지점에서 5~7km 정도의 거리에 우산도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안용복이 설사 독도를 보고 우산도라 했더라도 그 당시에는 안용복이 독도의 존재를 몰랐던 때라  독도의 크기도 모르는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면 200m 이상 올라가야 대강의 윤곽이 잡히나 그것도 조그마하게 보입니다. 보이는 물체의 크기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거리를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윤곽이 들어오고 대충의 크기도 가늠이 될 경우 거리 계산이 되는 것이죠.


이상에서 살펴본대로 안용복이 본 우산도는 죽도의 가능성은 높은 반면에 독도라고 보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추가2 : 안용복이 1차 도일시 바다 한 가운데에서 본 섬은 무엇일까

7번항에서 언급되었던 안용복이 1차 도일 때에 오가야의 배로 잡혀 가면서 보았다는 섬이 어디일지 추정해 보도록 할까요? 저는 본 글에서 오키 섬이나 일본의 어느 섬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제가 다시 추론한 바로는 울릉도(죽도)였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제 추론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안용복이 그 섬을 본 것은 붙잡혀 출발한지 하루만에 본 것이다.

2. 안용복이 왜인에게 붙잡힌 곳은 울릉도 북쪽 포구이다.

3. 북쪽 포구에서 오키섬이나 독도 방향으로 가려면 울릉도 서쪽으로 방향으로 틀어 다시 남쪽으로 오거나 동쪽 방향으로 갔다가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것이다.

4. 안용복과 박어둔은 잡힌 몸임으로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며, 첫 도일이라 방향감각이 없었을 것이다.

5. 박어둔은 심한 배멀미를 한 탓으로 어떤 섬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보아 이들의 몸과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6. 안용복이 본 섬은 죽도(울릉도)보다 자못 컸다.


안용복이 출발한지 하루만에 본 섬이라고 하지만 그 하루라는 것이 24시간을 의미하는 것인지, 잡혀 출발하고 그 다음 날 아침이라는 것인지 불분명함으로 울릉도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라고 추정됩니다. 설사 하루 거리를 갔다고 하더라도 독도에도 접근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여 그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섬은 울릉도, 독도 밖에 없고 오키섬이나 일본의 다른 섬은 볼 수가 없다고 보여지지요. 여기서 죽도보다 자못 컸다고 했으니 독도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울릉도만 남게 되는데 안용복은 어떻게 그 섬을 울릉도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제가 추정해 보건대 안용복은 울릉도 북쪽에서 붙잡혀 배를 타는 초기에는 심하게 당황하고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배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잘 알 수 없었을 것이고 밤이 지나 아침이 되었을 때 자기가 어디 쯤에 있는지도 모르고 방향감각도 상실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와중에 저 멀리 큰 섬이 보이자 그것을 저렇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울릉도라는 것을 몰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울릉도 남동쪽에서 울릉도를 바라보면 북쪽에 관음도와 죽도가 있어 안용복이 알고 있던 울릉도보다 크게 보였을 수 있고 보는 방향이 자기가 보아왔던 것과 달라서 섬의 모양도 울릉도와 다르다고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지구요.

저는 이런 정황들을 볼 때 안용복이 본 섬은 울릉도라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박병섭이 독도일 것이라는 것은 잘못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용복이 본 섬은 자기가 울릉도에서 보았다는 우산도도 역시 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