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검증 문제와 관련된 이덕하님의 언급을 보면서 뭔가 불안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 포퍼 비판 노트를 보고 문제가 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좀 과격하게 말해서 이 분은 과학사 및 과학철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검증에 대해서 언급할 때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실험적인 입증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포퍼가 언급하는 입증 및 반증 개념이 이와 거리가 멀다는 점에 대해서 혼자 이상한 정의를 만들어내었다며 심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밑의 댓글에 언급했듯이 포퍼의 개념은 결코 혼자 고안해 낸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확실한 배경과 근거를 지니고 있다.

 

이를 설명하려면 20세기 초 비엔나를 거점으로 형성된 논리실증주의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당시 이곳의 학자들은 한데 모여서 모든 과학에 공통적인 절차를 파악해 내고 이로부터 통일된 과학을 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적인 작업은 지식의 영역으로부터 형이상학적 언급을 배제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 이유는 이 언급이 틀렸거나 잘못되어서가 아니다.  이것은 맞고 틀리고를 결정할 수 없는 무의미한 말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저 하늘 어딘가에 신이 살고 있다(하지만 절대로 사람이 만나볼 수는 없다)거나 만물의 진정한 이데아가 어디엔가 존재한다거나 죽은 다음에 가는 천국이나 윤회가 존재한다거나 이런 말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맞고 틀리고를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여기 대한 논의는 아무리 길게 해도 의미가 없고 따라서 인류의 지식에 털끝만큼도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이다. ‘논리철학 논고’에서 나온 “대답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는 말은 결국 이를 의미한다. (물론 비트겐슈타인 자신은 곧 논리실증주의자들 대다수와 심하게 거리를 두었지만…)

 

그러면 의미가 있는 언급은 무엇인가? 이들에 따르면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논리, 또는 수학적인 명제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볼 때 동어반복, 즉 "A는 A다"라는 말을 길게 늘여서 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문장 자체를 분석함으로써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결혼 안 한 남자는 총각이다"가 사실인지 파악하기 위해 실제 총각들을 조사해 볼 필요는 없다. 다른 하나는 경험적, 혹은 자연과학적인 명제인데 이는 문장과 사실간의 관계를 확인함으로써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서울 X동네에 살고 있는 김철수는 총각이다"라는 말이 사실인지 알기 위해선 직접 가서 봐야 한다. 이 작업을 검증이라고 부른다.

 

의미가 있는 언급을 이 두 가지로 제한한다면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온 수많은 문학작품들, 즉 시나 소설들은 여기에 속하지 않게 된다. 그럼 이들은 무엇인가? 여기서 약간 과격한 결론이 나오는데 이는 그를 작성한 사람이 정서적으로 고조된 상태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즉 "아!"하는 감탄사 이상의 의미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덕철학도 마찬가지, 이덕하님은 도덕의 교권이라는 의미를 과학 세계와 별도로 존재하는 엄밀한 세계로 보고 있는 듯 한데 논리실증주의에 의하면 이 역시 논리 또는 경험적 명제로 수렴될 수 있는 말들 (도덕을 다루는 논리라고 해서 별도로 취급해야 한다면 "코끼리가 호랑이보다 크고 호랑이가 고양이보다 클 경우 코끼리는 고양이보다 크다"라는 논리를 위해 동물논리학이란 말을 만들어야 하는가?) 을 제외하면 그냥 정서적인 흥분상태 또는 단순한 명령어 밖에는 남지 않는다고 한다.

 

자, 이러한 논리실증주의가 벽에 부딪힌 것은 어떤 점에서였는가? 논리적, 수학적 명제에 대해선 그다지 이의가 없었다. (물론 콰인이 논리적 명제와 경험적 명제가 그다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는 했다) 문제는 경험적, 과학적 명제였다. 인지능력의 기원에 대한 설명, 그 주관성과 편견의 가능성, 원자명제의 재분할 가능성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더 심각한 것은 관찰과 이론이 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연결시켜 주는 대응규칙이 필요한데 그 규칙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동일한 관찰로부터 천차만별의 이론들이 양산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론은 대응규칙을 포함하는 보다 보편적인 언급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검증의 의미는 전보다 더 느슨해졌다. (그래서 확증이란 말로 대치되기 시작했다) 이론은 어떤 식으로든 세계와 관계를 맺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논리실증주의가 논리경험주의로 변형되게 된 과정이다.

 

또 다른 난점은 유한한 수의 관찰로부터 어떻게 보편명제(모든 A는 B이다)인 이론을 끌어내고 이를 검증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사실 이는 오래 전 흄이 제기한 귀납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명제를 검증한다고 해보자. 까마귀 한 마리를 봤더니 색이 검다고 해서 이 명제가 검증된 건 아니다. 열 마리도 백 마리도 검증하지 못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까마귀를 다 조사해야 될까? 조사에서 빠져나간 흰 색 까마귀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이를 해명하기 위해 통계적 설명이 동원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과 인간이 유한한 시간에 조사할 수 있는 대상의 숫자를 비교하면 이 또한 큰 의미는 없었다.

 

사실 포퍼는 이 논리 경험주의의 세례를 받고 자란 사람이다. 그의 모든 개념과 이론은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가 여기에 공헌한 것은 당시까지 사람들이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했던 검증(확증) 개념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는데 있다. 그는 이론의 검증과 반증이 비대칭적이라는 점(아무리 많은 검은 까마귀도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명제를 확증할 수는 없으나 단 한 마리의 흰 까마귀는 이를 반증한다)에 주목했으며 논리적으로 볼 때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포퍼가 그 이전의 경험주의자들보다 대중들에게 더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그의 이론이 함의하는 철학적 개념이 과격하면서도 상당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감옥(무지)에 갇혀 있지만 더 큰 감옥으로 옮겨 갈수는 있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는 영원히 알 수 없지만 무엇이 틀린지는 알 수 있다. 그의 철학은 리버럴한 세계관과 반공주의에 이론적 토대를 주었고 그는 한동안 자본주의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스타가 되었다. 적어도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들고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쿤 이후의 과학철학계 동향에 대해서는… 시간이 난다면 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