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섭의 단순히 실수로 보기에는 의도적으로 보인다.


 

1. 길벗님이 안용복 관련하여 박병섭이 안용복 사건의 재검토 논문을 다음의 것을 참조하였을 것이다.(그림은 표제를 크기를 작게 하기 위하여 편집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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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작성 일자는 이에 표시한 것처럼 2010년. 그리고 논문에서 박병섭은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안용복의 공술을 둘러싸고 한일간에서 큰 견해차가 있으나, 그 중 중요한 쟁점에 관하여 검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제1차 도일 때 안용복은 호키주로부터 울릉도와 자산도가 조선 땅으로 정한 서계를 받았다고 공술을 했으나, 이는 그의 허언일 것이다.
(2) 제1차 도일 때 안용복은 자산도(우산도)를 경유했으나, 그 사실을 그는 몰랐으며, 자산도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3) 제2차 도일 때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일본인을 쫓아냈을 뿐만 아니라 자산도까지 뒤쫓았다고 공술했으나, 무라카미 가 문서에는 그런 기술이 없으므로 1696년에는 그런 사실이 없었을 것이다.
(4) 그러나 그 전 해인 1695년에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일본인과 만나 그들을 쫓아낸 가능성이 있다.
(5) 안용복의 제2차 도일의 목적을 이케우치 사토시는 그가 쓰시마 번에서 받은 냉대를 호소하기 위한 것이며 울릉도의 소송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쓰시마 번의 냉대 외에 울릉도를 일본 땅으로 만들려는 계책이나 쓰시마 번의 여러 기만적인 행위를 호소하는 것도 그의 목적이었다.


 

위의 결론 중에 (2)번항(추가, 3번항까지)이 길벗님이 주장하는 논거로 안용복은 우산도 및 독도에 대한 지리를 몰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 그런데 minue622님은 나이토우 세이추우의 독도논리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기술하셨다.


 

3. 안용복은 일본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는가? 일본측 사료. 나이토우 세이추우의 독도논리, 부록 2 '오키의 안용복'에서 인용.

안용복이 일본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기록은 호우키국에서 귀국한 후에 붙잡혀 비변사에서 취조당한 공술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그 공술의 신빙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료가 없다. 단 비변사에서 동행한자들도 비슷한 내용을 진술했다는 것에 머물고 있어, 안용복의 공술에 문제성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인 만큼, 일본 측 특히 당사자인 돗토리번의 기록과 대조해볼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돗토리번에는 이케다가(池田家)의 문서를 비롯하여 <인부연표(因府年表)>나 <죽도고> 등의 관계사료가 있어 호우키-이나바 양국에서의 안용족의 족적이나 돗토리번이 보인 대응에 대해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이미 <다케시마(독도)를 둘러싼 조일관계사>(2000년 多賀出版)에서 인백(因伯) 양국에서의 안용복읠 다루어 해명한 일이 있다.

이 안용복에 대해 1696년(元禄)년 5월에 오키국에 착안했을 때의 취조기록이, 톳토리현 오키군 아마초우(海土町)의 무라카미가에서 금년 5월에 발견되었다. <원록 9 병오년 조선주 표착일권지각서 元禄九丙午年朝鮮舟漂着一卷之覺書>라는 것이다 (361~362쪽)


minue622님이 인용하신 무라카미가에서 금년 5월에 발견된 그 '금년'은 몇 년도이며 '무엇'이 발견된 것일까?


 

3. 박병섭이 논문을 쓴 2010년보더 5년 전에 즉 2005년 5월에 무라카미가에서 기존의 해석을 뒤엎는 자료가 발견되었고 내가 minue622님의 글에 쪽글을 단 것처럼 나이토우 세이추우는 자신의 기존 논리를 뒤엎는 '학자적 양심'을 발휘하였다. 그 5월에 발견된 자료를 아래에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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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에 따르면 안용복은 일본에 건너온 목적을 묻자 “영주에게 소송하기 위해”라고 답하는 등 시종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주장했다.


「元祿九丙子年朝鮮舟着岸一卷之覺書」라는 제목의 이 기록에는 안용복이 당시 일본이 말하던 ‘다케시마(竹島)’는 울릉도, 마쓰시마(松島)는 ‘자산(子山ㆍ당시 독도의 조선명)’으로 모두 강원도에 속한 섬이라고 설명한 뒤 두 섬이 표시된 조선 8도 지도를 제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일본측 자료에서는 ‘자산 (또는 우산도ㆍ于山島)’이 어느 섬인지 분명치 않았으나 안용복이 “다케시마와 조선은 30리, 다케시마와 마쓰시마는 50리”라고 위치를 설명한 것으로 보아 현재의 독도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기록 끝에는 조선8도가 적혀있고 강원도에는 주석으로 “이 도에는 다케시마와 마쓰시마가 속한다(此道中竹道松島有之)”고 기록돼 있어 일본측도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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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minue622님이 주장한 '올해 5월'의 5월이 같은 2005년도 5월자 한국일보 기사이다.(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505/h2005051801234321950.htm)


 

 


2005년도에 발견되어 발표된 기사인데 역사전문가인 박병섭이 5년 뒤에 논문을 쓰면서 그 사실을 누락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까?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어 '자신의 기존 논리를 뒤엎는 학자적 양심'을 보인 나이토우 세이추우에 비해 박병섭은 내놓고 기만행위를 했거나 아니면 학자로서는 너무 게을렀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