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님과 토론하고 있었는데, 댓글이 길어져서 본글로 따로 올립니다.

길벗님의 마지막 댓글입니다.
바오밥님/

님은 마쓰시마가 독도라는 근거로 안용복이 거리를 이야기한 것을 제시했습니다. 그것도 굵은 글씨로 강조해서 말이죠.
저는 님이 제시한 논리(근거)가  독도라는 근거로서는 부적합하다고 반박한 것입니다. 안용복이 울진-울릉도 거리보다 울릉도-독도(마쓰시마) 거리를 훨씬 멀리 표현했는데, 사실은 그 반대이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근사치에 들어 오거나 적어도 울릉도-독도, 울진-울릉도 거리가 비슷하다고 했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기술수준이나 측정장비를 감안할 때 이해해 드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님은 이것을 근거로 제시하니 당연히 제가 반박할 수 밖에요.
저는 마쓰시마가 오키섬의 부속 섬이라고 단정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님의 논리를 따라가면 마쓰시마가 독도보다는 오키섬의 부속 섬이라 보는게 맞다고 논리를 전개할 뿐이죠.
제 답은 간단합니다. <님이 제시한 증거는 마쓰시마가 독도라는 근거로서 부적합하다>

저는 기본적으로 안용복의 진술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안용복의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사실과 다른 것이 많으며, 자체에도 모순이 있기 때문이죠. 안용복의 진술을 근거로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안용복의 진술이 믿을만 하고, 거기에 나오는 마쓰시마는 독도라고 증명해야지, 제가 안용복의 진술의 신빙성과 마쓰시마가 독도라는 증명을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안용복이 말하는 마쓰시마가 독도가 아니라고 보는 것은 안용복의 진술 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안용복이 왜인을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면, "왜선도 많이 정박해 있음으므...",  "우리들은 본디 송도(마쓰시마)에 사는데...", "본소로 돌아갈 것이다.", "왜인들이 가마솥을 걸어놓고 기름을 다리고..."라는 말들이 나옵니다. 님은 송도를 독도로 보고 왜인들이 상주한 것이 아니라 임시 거처로 생각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본디 송도에 사는데"라는 표현에서 "본디"를 상기해 보시면 그들이 송도에 임시로 살았다고 볼 수 없고, 뒤의 "본소"를 님은 일본으로 해석하지만, 문맥상 "송도"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가마솥을 걸어놓고 기름을 다릴" 정도이면 저 작업을 땔깜도 없고 물도 없는 독도에서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또 맨 앞의 문장에서 "왜선도 많이 정박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저 정도의 인원이 독도에 모두 살 수 있다고 보기에는 독도가 물, 땔감이 부족하고 집을 지을 재료도 부족할 뿐아니라 집을 지을 공간도 많지 않습니다.
위에서 살폈듯이 안용복의 진술에 나타난 "송도(마쯔시마)"는 지금의 독도로 보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릅니다.


1. 안용복이 말한 마쓰시마는 어디일까?

님은 안용복이 말한 울릉도-마쓰시마(송도)의 거리가 실제보다 멀다는 이유를 들어, 마쓰시마는 독도라는 근거로서 부적합하다고 말했습니다. 전문 항해사가 아닌 안용복의 말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거리만을 놓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진술 내용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일단 안용복이 말한 거리를 포함해, 2차 도일시 일본 오키에서 안용복 일행을 조사/심문한 문서 <원록9병자년 조선주착안 일권지각서>  관련 글을 링크합니다. (수박겉핥기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cms1530/10015417351)

이 글에서 인용합니다. 
*당자 3월 18일 조선국에서 아침을 먹은 후에 배를 타고 떠나서, 그날 저녁 죽도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었다고 합니다.
*5월 15일 竹嶋를 출선하여 동일 松嶋에 도착했고, 동 16일 松嶋를 떠나 18일 아침에 隱岐嶋 內의 西村 해안에 도착, 동 20일 大久村 나루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竹嶋와 조선 사이는 30리,  竹嶋와 松嶋 사이는 50리라고 합니다.

* 3월 18일, 안용복은 육지에서 아침을 먹은 뒤 배를 타고 그날 저녁 울릉도에 도착했습니다.
* 5월 15일, 안용복은 울릉도를 떠나 같은 날 마쓰시마(송도)에 도착했습니다.
* 다음날인 5월 16일, 안용복은 마쓰시마를 떠났고 18일 아침에 오키섬에 도착했습니다.
* 안용복은 이와 같이 진술한 뒤, 문제의 "울릉도와 조선은 30리, 울릉도와 마쓰시마는 50리"라는 진술을 했습니다.

정리해 보자면,
"육지-울릉도" "울릉도-마쓰시마"는 둘다 배로 하룻길이었고, "마쓰시마-오키섬"은 배로 대략 이틀 거리였습니다.
이걸 전제로 안용복은 조선과 울릉도, 울릉도와 마쓰시마 사이의 거리를 짐작해 말한 것입니다. 후자가 먼저인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울릉도와 마쓰시마 사이의 거리를 50리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오키섬 부속도서 운운하거나 독도가 아닌 다른 섬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정황상 안용복이 말한 마쓰시마가 죽도에 가까운지, 독도에 가까운지, 오키섬에 가까운지를 판단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안용복이 이미 2차 도일 전에도 하루쯤 뱃길 거리에 있는 큰섬(우산도)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도 참고하기 바랍니다.   


(덧붙여 말해 보자면, 
1)이로 미루어볼 때 만약 저 당시 마쓰시마와 오키섬 사이의 거리를 물었다면, 안용복은 아마 조선과 울릉도 또는 울릉도와 마쓰시마 사이의 거리에 두 배를 더해 60-100리쯤 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2) 안용복의 진술을 다른 말로 바꿔 보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조선에서 울릉도는 배로 하루 걸리고, 울릉도에서 마쓰시마는 배로 하루 걸리지만 울릉도보다 조금 더 멉니다. 마쓰시마에서 오키섬까지는 배로 이틀쯤 걸립니다."

3) 왜 30리와 50리라는 차이가 났는지 짐작해 보자면, 먼저 안용복이 울릉도로 온 것은 마쓰시마로 떠나기 두 달 전쯤입니다. 시기상 차이가 있어 기억이 흐려질 수도 있고, 또 울릉도로 올 때는 순풍을 타서 일찍 왔는데 마쓰시마로 갈 때는 순풍의 도움을 받지 못해 노를 많이 저어 가느라 멀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시간이 꽤 많이 걸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실제보다 차이가 많이 났을 수도 있겠죠.)
 

2. 안용복이 왜인을 만난 마쓰시마는 죽도일까, 독도일까?

님은 여전히 <숙종실록>에 기록된 안용복의 진술을 들어, 마쓰시마는 독도일 리 없으며 죽도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안용복의 진술을 사실로 간주하고 님의 주장을 한번 검토해 봅시다.

1) "울릉도에 정박해 있던 많은 왜선들은 마쓰시마에 계속 정박해 있었을 것이며, 그 배에 탄 많은 왜인들은 마쓰시마에서 살았을(장기거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쓰시마는 죽도일 것이다."

님이 말하는 것은 결국 이런 말입니다. 왜인들의 말이 곧 "사실"은 아니라고(즉, 그들이 마쓰시마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해서 그들이 실제로 마쓰시마에 오랫동안 장기 거주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씀드렸음에도, 그리고 도해면허를 받아서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체류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해도, 님은 같은 말을 되풀이하시며 독도는 장기거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 그들이 살았던 곳은 독도가 아니라 분명 죽도일 것이라고 주장하시는군요. 
 
그런데 죽도는 사방이 100미터 가까운 절벽으로 둘러싸인 섬입니다. 원래는 배를 댈 만한 곳도 마땅히 없는 섬이었고, 섬으로 올라가기도 힘들 뿐더러 물건을 가지고 섬에 올라가기는 더더욱 힘든 곳입니다. 밑에 링크한 죽도 선착장 사진 한번 보세요(위에서 네 번째 사진). 저 선착장도 나중에 우리 정부가 만든 것입니다. 저런 곳에서 많은 왜선들이 정박하고 많은 왜인들이 살 수 있었을까요? 더군다나 죽도 역시 식수가 나오지 않는 곳입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가마솥을 걸고 기름을 다리고 있었을까요.

죽도 선착장 사진:  http://blog.daum.net/yoonbinahn/7998624

왜인들이 사는데 부족한 것이 없는 울릉도와 죽도를 놔두고 하필 식수도 땔감도, 집을 지을 수도 없는 독도에다 本所를 마련하겠습니까? 울릉도와 독도는 당시에는 하루 이상이 걸리는 거리이고, 험난하여 자주 왕래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님이라면 독도를 본거지로 생활을 하겠습니까? 빈 땅인 울릉도와 죽도를 두고 말이죠.

위 글에서 님은 죽도는 독도와 달리 (식수를 포함하여) 사는 데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보십니까?


2) 죽도보다는 독도

이번에는 독도의 선착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http://blog.naver.com/dokdokorea55?Redirect=Log&logNo=20161576810

죽도에 비해 훨씬 나은 환경입니다. 배도 댈 수 있고, 여러 사람이 한동안 머물 수도 있고, 해변가에서 여러 사람이 가마솥을 걸고 불을 피울 수도 있는 곳이죠.


(이하 내용은 중요한 건 아니고,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여담 성격의 이야기입니다.)
님은 땔감이 없었을 거라고 하지만, 일본인들이 송도라고 부른 이유는 해송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식물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땔감을 구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본토에서 일부 가져왔을 수도 있습니다.

식수 말씀하셨는데, 어차피 일본인들이 일본에서 출항하면 울릉도까지 오는 데 이삼일이 걸립니다. 식수는 일본에서 웬만큼 가져왔을 수 있고, 일부는 울릉도에서 조달했을 수도 있습니다.

님은 일본인들이 오래 살았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자꾸 마쓰시마는 독도일 리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도해면허를 받아서 고기 잡으러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머물렀겠습니까. 정 그렇게 주장하시려거든 당시 도해면허를 받은 어부들이 그렇게 오래 머물렀다는 근거를 가져와 보세요. (참고로, 박병섭의 논문에 따르면, 막부로부터 도해면허를 받아 울릉도로 일년에 한번씩 도해하여 어업을 한 오야/무라카와 두 가문은 1692년 이래 거의 수확이 없었고, 1695년에는 조선인들이 와 있어 역시 거의 수확이 없이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들이 얼마나 많이 머물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안용복의 진술에 따르면, 울릉도에서 내쫓은 뒤 이튿날 새벽에 배를 띄웠다고 했습니다. 죽도라면 코앞인데, 왜선들이 죽도로 몰려가는 걸(그럴 수도 없습니다만)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굳이 이튿날 새벽에야 배를 띄워 쫓아갔겠습니까. 죽도면 금방 갈 수 있는데요.

그리고, 님은 울릉도에 정박해 있던 많은(얼마나 많았는지는 모르나) 왜선들이 마쓰시마에 고스란히 갔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건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일부는 일본으로 곧장 떠나고 일부만 마쓰시마에 남았을 수도 있습니다. 안용복은 이 진술을 하면서 월경을 한 15명을 처벌해 달라고 말했다 하는데, 그렇다면 마쓰시마에 있었다는 왜인은 최대 15명이었을 겁니다. 안용복의 2차 도일 때 배를 타고 간 사람이 모두 11명이었고 그 전에 울릉도로 건너올 때 탄 배에 15명도 탔었다고 하니, 이 정도 인원이라면 한 배에 다 탈 수 있습니다. 울릉도에 있던 왜선들이 다 돌아가고 한 척만 마쓰시마에 남아 있었을 수 있다는 거죠. 


안용복이 말한 마쓰시마는 독도일 리가 없다고(죽도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님의 두 가지 근거를 다뤘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1. 안용복은 일본이 마쓰시마라 칭하는 섬이 독도임을 잘 알고 있었다.
2. 안용복이 말한 마쓰시마는 죽도일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