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님이 바오밥님에게 쪽글로 말씀하신  '기록의 일관성'에 대하여 쪽글로 달까 하다가 독도에 대하여 계속 탐구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하여 참조하시라고 본글로 씁니다.


 

우선, 조선왕조실록의 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한문본으로 1893권, 한글로 번역한 것은 320쪽 정도의 책 413권이나 되는 방대한 역사 기록이다. 한사람이 하루에 100쪽씩 읽어도 4년 3개월이 걸리고, 200자 원고지로 적어서 쌓으면, 그 높이가 63빌딩의 세 배나 되는 엄청난 분량. 번역하는 데만 학자 3천여 명이 동원돼 2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는 조선조 5백년의 역사 기록.



 

저렇게 많은 이유는 이미 아시겠지만 매일같이 기록되었던 사초 때문입니다. 그 사초가 임금의 발언만 있겠습니까? 승정원, 사간원 등등에서 쏟아져 오는 사초들........을 정리하여 기록하다 보니 저렇게 된 것입니다. 그 사초 때문에 정조 때 섭정을 한 홍국영 친구가 젊은 시절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홍국영은 겨우 화를 면하게 된 것으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한사람이 하루에 100쪽씩 읽어도 4년 3개월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물론, 책을 꺼내면 각 책에는 인덱스가 되어 있겠지요. 그리고 당시에는 한자=공용어이니까 읽는데 우리가 지금 한글 읽는 것처럼 쑥쑥 읽어내려가고 필요한 부분을 찾는 것이니 쭈욱 페이지를 넘기다가 필요한 것 같은 페이지에서 잠시 검토하고 아니면 다시 쭈욱 페이지를 넘기고 그런 식으로 4년 3개월씩 걸리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런데 성종 때 만들어서 연산군 때 증편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은 조선 성종 때의 지리서이다. 성종 때 명(明)의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1462년)가 수입되자 왕이 노사신·양성지·강희맹 등에 그것을 참고하여 세종 때의 《신찬팔도지리지》를 대본으로 지리서를 편찬케 하였다. 그들은 성종 12년(1481년)에 50권을 완성하였고, 성종 17년에 다시 증산(增刪)ㆍ수정하여 35권을 간행하였다. 그 후 연산군 5년에 개수(改修)를 거쳐 중종(中宗) 25년(1530년)에 이행(李荇) 등의 증보판이 나오니 이것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라고 한다. 전55권 55책."(위키페디아 인용)


 

물론, 지리지 등으로 따로 분류되어 있고  인덱스도 되어 있겠지만 자료 조사의 한계(뭐, 조수는 몇 명 있겠지요) 접근 범위의 한계 등 저 방대한 자료들을 '현재에서 과거로 참조한다'는 것은, 현재 컴퓨터처럼 검색기능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지도 제작시 울릉도와 독도만 그렸겠습니까? 한반도 전체를 그려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참조해야할 자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겁니다.




자료 검색에 대한 참조할만한 역사적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1,2차 예송논쟁입니다.


 

그 뒤 효종의 죽음으로 효종의 계모이자 인조의 계비였던 자의대비 조씨(慈懿大妃 趙氏)의 복상 문제가 제기되자 윤휴(尹?) 등 남인은 삼년복(三年服)을 주장하였고 우암은 기년복(朞年服)을 주장하였다. 이를 예송(禮訟) 논쟁이라 한다.


 
송시열은 중국의 주례에 따라 부모상에 자녀는 3년복, 자녀 중 장남의 상에는 부모가 3년복을 입고 차남 이하는 1년복을 입는다는 것을 참고하여 기년설(만 1년설)을 주장하였으며,[14] 윤휴가 이의를 제기하자 의례 참최장의 주석을 찾아서 서자는 장자가 될 수 없고 본부인 소생 둘째 아들 이하는 모두 서자로 간주한다는 자료를 증거로 제시하였다.(1차 예송논쟁:위키페디아 인용)


 

단지, 상복을 입는데 1년이냐 3년이냐의 논쟁....... 그 것을 자료로 찾고 또한 당대 대단한 학자들이 논쟁을 벌렸다는 것은 당시 자료들의 인용이 쉽지 않다는 것을 추측하게 합니다.


 

이런 자료의 일관성은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른 나라의 역사 기록을 '통째로 읽은 적도 없고' 또한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그런데 자료의 일관성은 독도 논쟁과 직접 연결되는 SCAPIN이라는 용어의 혼란을 지적한 것에도 엿볼 수 있습니다.


 

SCANPIN에 대한 우리나라 각 분야의 학자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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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논할 때 자주 언급되는 자료 중에 SCAPIN-677, SCAPIN-1033, SCAPIN-1778 등 일련의 ‘SCAPIN’ 문서가 있다. 특히 SCAPIN-677은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사령관이 일본 제국 정부(Imperial Japanese Government)에 내린 지령으로 일본으로부터 일정 외곽 지역의 통치 및 행정상의 분리?(Governmental and Administrative Separation of Certain Outlying Areas from Japan)라는 제목의 각서(Memorandum) 형태로 전달된 것이다. 이 지령 제3항의 일본 영토에 대한 정의에서 일본에서 제외되는 인접 소도(小島)의 하나로 독도[Liancourt Rocks (Take Island)]가 명기되어 있기 때문에 독도의 영유권을 논할 때는 반드시 언급되는 중요한 문서이다. 그런데 ‘SCAPIN’의 한국어 번역이 필자마다 각인각색이다. ‘SCAPIN’에서 ‘SC(Supreme Commander)’가 ‘최고사령관’, ‘총사령부’, ‘최고사령관 총사령부’로, ‘AP(Allied Powers)’가 ‘연합국’, ‘연합국군’, ‘연합군’으로, 본문에서 자세히 설명할 ‘IN’이 ‘지령’, ‘훈령’, ‘각서’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세 가지 용어가 3 x 3 x 3의 경우의 수(Number of cases)로 조합되어 ‘SCAPIN’이 27개의 형태로 번역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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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핀(SCAPIN)이란 무엇인가? (현대송 국민대학교 연구교수, Dokdo Research Journal 2010. Winter .vol 12)에서 발췌


 

우리 외교에서 중요한 용어일 수 있는 SCAPIN. 이 용어만도 27가지로 번역되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건 단순히 '학자들이 부주의한 탓'만은 아닐겁니다.


 

재미있는 또다른 예가 '다중이'라는 코메디 용어의 '다중인격'이라는 병명은 '해리성 정체 장애 증후군'으로 불리워지기도 하고 최근에는 후자가 더 많이 불려지는데 그 이유는 '다중인격'이라는 용어는 이 병을 처음 발견한 영국에서 붙인 용어인데 그 이후로 놀랄만한 연구결과를 보인 미국에서 영국의 용어를 젖혀두고 새로운 용어를 붙였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헤게머니' 싸움이겠지요.


 

아마도 이런 자료의 일관성은 자료 참조의 원칙적인 불가능 이외에 설사 자료를 참조했다고 해도 좀 새롭게 보이고 싶었겠지요. 더우기 무주지인 울릉도 그리고 독도의 경우에는 더욱 더요. 당시 기록했던 조상들이 독도가 '국가간 분쟁의 총아'로 떠올려질지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오히려 이런 것을 약점으로 일본이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물론, 일본이 억지주장을 한다고 판단해서 우리의 것이 맞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주, 결론적인 이야기를 말씀드리면 '논할 수 없는 것'을 '논하자는게' 일본의 입장이고 이 독도 논쟁은 한마디로 악마의 논쟁과 비슷합니다.


 

당연히 '기록의 일관성'은 시대를 떠나 그 '사건'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척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록들의 일관성'이 없다고 '어떤 명제가 틀렸다'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바로 제가 위에 든 예들입니다. 기록들 중 하나만 다른 것이 실제 맞는 기록일 수 있고 기록들 중 하나만 다른 것이 실제 틀린 기록일 수 있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자료의 일관성을 찾아 진실을 밝히는 것은 우리 그리고 우리 후손들의 몫이 되겠지요.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